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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험터 된 아바이 일터, 캔버스로 거듭난 수백 년 돌담

삶의 현장을 예술 공간으로…‘공존문화지대 프로젝트’의 결실

상도문 돌담마을. 

[글·사진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비린내는 났지만 비루하지 않았다. 고향 등진 죄인이라 척박해도 견뎌야 했다. 게다가 꼬물꼬물 자식들의 퀭한 눈을 보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할복장에서 산더미로 쌓인 오징어의 배를 갈랐다. 속초 아바이마을의 기억이다. 

500년 된 돌담길은 숱한 세월을 견뎌 마을을 지켰다. 돌담은 경계를 나눌 뿐, 이웃을 가르지 않았다. 대문이 없으니 파수꾼도 할 일이 없다. 동네 댕댕이며 냥이들은 속된 말로 ‘개 팔자’다. 한술 더 떠 ‘인싸’ 모델이다. 곳곳에 스톤아트로 존재감을 높인다. 속초 상도문 돌담마을이다.

한반도 어디라도 스토리를 품지 않은 곳이 없듯, 속초에도 사연은 차고 넘친다. 동해 너울보다 더 울렁이고 설악 준령보다 더 아찔한 드라마가 여기 있다. 더불어 입맛도 사로잡은 겉바‘속초’ 생활 테마 여행 속으로~

예술 공간으로 거듭난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생명을 앗아 생활을 잇는다. 배를 갈라 배를 채웠다. 오징어며 명태의 배를 갈라 모래톱 보잘것없는 곳에 자리한 난민은 그렇게 아이들을 키웠다. 전쟁통에 고향 등진 불청객은 속초에 기대어 거친 삶을 지켰다. 청호동 아바이마을이다.

아바이마을의 오징어 할복장이 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공존문화지대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아바이마을 주민들의 삶을 문화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전시물이 가득하다.

더 이상 오징어의 배를 가를 필요가 없다. 배를 가르던 아바이도 하나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 블랙홀에서 예술을 끈으로 기억을 역사로, 예술로 다듬고 있다.

할복장은 비린내 찌든 아바이가 오징어의 생명을 빌려 미력한 이녁의 생활을 이었던 곳이다. 고향 등진 삼팔따라지가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원추형 누옥이나마 고단한 몸 뉠 수 있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었을 거다. 거친 삶이지만 속초가 있어 기대온 일상이 고스란히 청호동 아바이마을 담벼락에 한 땀 한 땀 벽화로도 남아 있다.

기운 다한 아바이·아마이나, 기운 다한 할복장을 틀어잡았다. 갈고리를 걸어야 움직이는 갯배가 속초와 아바이마을을 잇듯, 아바이의 느린 시간과 우리의 잰 시간을 밀고 당기며 눈높이를 맞춘다.

분단과 실향의 역사가 오롯하고, 드라마 ‘가을동화’의 애잔함이 여전한 이곳. 감성 가득한 아바이마을에서 감성을 채웠다면 아바이순대·명태순대·함흥냉면·가자미식해·가리국밥으로 화룡점정 마침표를 찍어보시길.

스톤아트의 현장, 상도문 돌담마을

500년 된 돌담길은 이방인을 경계한다? 이내 가가호호 대문 없음에 경계는 허물어져 연계와 맞닿는다. 이 유서 깊은 집성촌엔 속초 첫 교육기관인 도문서당이 있었다. 설악산 자락에 자리한 속초가 기댄 상도문 돌담마을이다.

상도문 돌담마을의 담벼락은 격의 없다. 동네 유래를 설명한 어르신의 연애담도 나지막한 담벼락 덕이란다. 작은 돌 집어 던져 ‘카톡카톡’, 들꽃 꺾어 이모티콘 ‘카톡카톡’…그렇게 사랑이 꽃피는 마을이더랬다. 전통마을의 좁은 골목이 아닌 널찍한 골목의 여유는 동네 사람들의 넉넉한 웃음을 닮았다.

담벼락 호박넝쿨 사이로 뜬금없는 스톤아트는 우연하게도 담 넘어 댕댕이며 냥이가 오버랩됐다. 우연이 집집 돌담마다 이어지니, 필연이다. 스톤아트 모델은 바로 그들이다. 예술가의 호기는 지나가는 참새마저 돌담마을에 남겼다. 이 참새는 어디서 이 마을을 기억할까!

돌담엔 이 마을 유력자인 조선조 오윤환 선생 등의 필담이 시로, 에세이로 부각돼 꼬리를 문다. 구절구절 눈길을 사로잡으니, 발길은 더뎌진다. 선생은 날 잡고, 나는 시간을 잡는다.

돌담은 ‘인싸’가 분명하다. 내 발길은 물론 제비의 날갯짓도 그들을 향한다. 유독 제비가 많은 이유도 돌담 덕이다. 제비는 그사이에 숨어들고, 알을 낳고, 벌레를 잡아먹는다. 오선지 닮은 전깃줄에 오페라 악보처럼 빼곡히 앉은 그들의 모습에 맞춰, 댕댕이가 제비를 보며 껑껑 울어댄다. 소란스러운 연주회에 나른한 냥이는 파티에 지친 백작 부인마냥 도도히 꿈나라다. 상도문의 늦여름 풍경은 채도 높인 수채화를 빼닮았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쵤영 장소이기도 했으니, 풍광은 두말이 필요 없다

고개를 드니 진경산수다. 돌담이 집집을 경호하듯 설악산의 수려한 봉우리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대청봉에서 발원한 쌍천은 마을의 앞가슴을 풀어헤쳐 젖줄을 만들었다.

돌보고 감싸주니 사람 사는 곳이더라. 이 마을엔 강릉 박씨, 해주 오씨, 강릉 김씨 등이 집성촌을 이뤘다. 500년 역사는 조선 후기 유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 속초지역의 효행을 상징인 박지의 선생이 족적을 남겼다.

유력자만 기억될 곳은 아니다. 기와 수채화로 마을 화사하게 꾸민 민박집 주인 할머니나, 꽃사과나무 그늘에서 시를 읊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에 방문객의 광대승천이다.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살아보기형 생활관광 ‘속초오실’

상도문 돌담마을에서 오는 11월30일까지 살아보기형 생활관광 ‘속초오실’이 운영되고 있다. 문화체육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모를 통해 선정, 지원 중인 전국 13개 체류형 생활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도문인형극·마을이야기꾼투어·막걸리만들기체험·천연염색체험·돌담떡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실줄과 날줄로 엮어있다. 이들과 어우러진 속초오실 체험 2박3일 코스는 2인 기준 16만 원에 선택 추가 시 21만 원이다.

‘오실’ 프로그램의 거점은 마을 중앙에 있는 ‘문화공간 돌담’이다. 옛 정미소 건물을 개조해 카페를 겸하고 있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마을 소개와 프로그램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기본 프로그램에는 없지만 육모정상점은 들러볼 만하다. 육모정은 육각 지붕 모양인 학무정의 다른 이름으로, 영모재, 인지당 등의 편액이 방향을 달리해 붙어 있다. 옛날 마을 가게였던 상점을 개조한 ‘셀프 흑백사진관’은 재미가 넘쳐난다. 옛집 안방을 배경으로 조명과 카메라가 자리 잡았고, 이용자가 포즈를 취한 후 리모컨으로 셔터를 누르는 방식이다. 여행지에서 건진 흑백사진 한 장이 추억의 깊이를 더한다. 인쇄하지 못한 사진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받을 수 있다.

선택 체험으로 로컬 맥주 업체 ‘몽트비어’에서 주조 과정 체험, 속초관광수산시장 방문이 있다. 이음택시(2만6000원)를 신청하면 속초터미널에서 상도문마을까지, 마을에서 2개 체험장까지 2회 이용할 수 있다.

아바이마을의 오징어 할복장은 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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