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에 한전채까지…불안감 고조
[겹악재 마주한 회사채 시장]②
9월 은행채 4조6800억 순발행…전달 대비 24%↑
회사채는 하반기 이후 순상환…“발행 요인 부족”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이건엄 기자] 은행채 발행이 하반기부터 급증하면서 회사채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모양새다. 자금흐름이 우량채인 은행채로 몰리면서 회사채 수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 역시 자금조달 수단으로 채권보다는 은행 대출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회사채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은행채는 4조6800억원 순발행 됐다. 이는 전달인 8월 3조7794억원 대비 23.8% 증가한 수준으로 연간 최대 규모다. 지난달 발행된 은행채는 24조7300억원, 상환액은 20조500억원이다. 순발행은 은행채 발행 규모가 상환 규모를 넘어섰다는 뜻으로 시중은행들이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채는 시중은행 및 특수은행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금융채를 뜻한다.
은행채 발행이 확대된 것은 은행들이 레고랜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시한 특판 예적금 상품의 만기 도래 영향이 크다. 예적금 상품에 대한 만기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 발행에 적극 나섰다는 분석이다. 앞서 은행들은 지난해 레고랜드 PF 사태 직후 수신금리를 올려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실제 특판 예적금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던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은행채는 발행보다 상환이 많은 순상환 기조를 보였다. 은행채는 지난 1월 4조7100억원 순상환한 것을 시작으로 ▲2월 4조5100억원 ▲3월 7조410억원 ▲4월 2조6000억원 ▲6월 1조5005억원 ▲7월 4조6711억원 등 순상환을 이어왔다.
여기에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은행들의 대출 규모가 커진 점도 은행채 발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은행채 발행이 순발행을 기록했던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규모는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9월 2조8591억원으로 매달 증가 추세다.
시장에서는 은행채 순발행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이 위축되자 은행채 발행을 제한해왔다. 우량채로 꼽히는 은행채 발행이 늘어날 경우 회사채 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조치다.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 택하는 기업들
이처럼 우량채인 은행채 발행이 급속도로 늘면서 회사채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통화정책신용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일반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3조4000억원의 순상환을 기록했다. 회사채 발행은 지난 4월 9000억원 순상환으로 전환한 이후 순상환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대외 요인 등을 고려했을 때 회사채의 순상환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측면에서 회사채 조달 유인이 악화되고 있고 중장기 자금 수요도 감소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당분간 회사채 순상환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회사채 순상환 기조는 발행 여건 악화보다는 선발행을 통한 차환 자금 확보와 금리 상승으로 인한 회사채 조달 유인 약화,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중장기 자금 수요 감소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더욱 문제는 은행채와 함께 우량채권으로 꼽히는 한전채 역시 발행량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등급이 낮은 회사채부터 금리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연 3%대로 떨어졌던 은행채(1년물) 금리는 지난달 4%대에 재진입했다. 한전채 3년물 금리는 지난 20일 기준 4.61%를 기록했다. 실제 무보증 회사채(BBB) 5년물 금리는 10월 들어 10%를 돌파했다. 이는 지난 7월 초 대비 40bp(1bp=0.01%p) 이상 오른 수치다.
금리 인상이 회사채 발행 요인을 저해하는 요소인 만큼 이미 많은 기업들은 자금조달 수단으로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을 선택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756조3310억원으로 전월 대비 8조8416억원 증가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특판 상품 만기 도래와 가계대출 증가 등 은행들의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은행채 발행이 크게 증가했다”며 “투기등급을 회사채 수요를 중심으로 빠르게 은행채에 흡수되면서 회사채 발행량 감소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동안 2%대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기업 역시 회사채 금리가 5%를 넘보는 현 상황에선 은행 대출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기업들이 경기 침체 여파로 이자 비용 절감 등 적극적인 긴축에 나선 점도 회사채 발행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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