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발행 한도 초과 경고등…채권시장 블랙홀 우려
[머나먼 한전 정상화의 길]③
총 부채 사상 첫 200조 돌파…재정 건전성 ‘빨간불’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한전채 추가 발행으로 이어져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기업 자금조달 악재’ 재현 가능성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송재민 기자] 국제유가 상승으로 한국전력공사의 적자가 계속 쌓이는 가운데 한전채 발행 한도 역시 연일 초과 경고등을 울리고 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적립금이 줄어들자 내년부터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내년초 한전채 추가 발행을 위해선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재개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전력(015760)의 총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6월말 연결 기준 총부채가 201조4000억원으로 나타나며 재정 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올해도 한국전력의 영업 손실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적자를 일부 해소한다고 해도 내년 초 한전채 추가 발행을 위한 재개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전 부채 반년 만 8조원 늘었다
한국전력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말 연결 기준 한국전력의 총부채는 지난해 말 192조8000억원에서 반년 만에 8조원가량 늘어났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최근 들어 크게 급증하는 형국이다. 지난 2020년 말까지 한국전력의 부채는 132조5000억원 수준에 머물렀지만 다음해인 2021년 말엔 145조8000억원, 2022년 말엔 192조8000억원으로 늘었다가 이번에 200조원대로 올라선 것이다.
한국전력의 총부채가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전기요금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부터 5차례에 걸쳐 이어진 전기요금 인상과 올해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한국전력의 전기 판매 수익 구조는 점차 정상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전력의 재무구조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로 분석된다.
앞서 한국전력은 중장기 재무계획에서 올해 6조4000억원가량의 적자를 예상하기도 했다. 이에 4분기에 해당하는 이달부터 킬로와트 시(kWh)당 최소 10원 이상의 전기요금이 인상돼야 한전법 재개정을 막을 수 있단 주장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을 kWh당 1원씩 인상할 때 연간 최대 5500억원의 수익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계산에 따르면 전기요금을 kWh당 10원 인상 시 연간 5조5000억원의 적자 해소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의 재무위기 해소와 정상화를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내용이 쟁점이 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단계적인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나설 예정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전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 중 정부 정책에 연계해 연료비 잔여 인상 요인 등을 반영한 단계적 요금 조정을 제시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자본금과 적립금 한계는 현재 20조9200억원에서 15조원으로 축소된다.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는 한전채 발행의 기준이 되므로 이 경우 내년도 한전채 한도는 90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15일 기준 한전채 잔액이 81조4000억원까지 찼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내년 초 한전채 추가 발행을 위한 한전법 재개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적정 수준의 전기료 인상이 이달 중으로 단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한전법 개정을 피하려면 kWh당 최소 10원 이상은 전기요금 인상을 감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올 한 해 인상 수준인 kWh당 51.6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한전채 발행한도 높여야” VS“채권시장 블랙홀 우려”
한국전력의 적자가 지속될 경우 부도 등으로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전채 발행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존 한전법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전년도 기준 자본금과 적립금 한계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올해 발행할 수 있는 한전채는 약 102조원이며 지난 9월말 기준 한전채 발행 잔액은 68조4500억원이지만 올해 발생할 영업손실을 감안하면 한전채 발행한도는 약 75조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우량채권으로 꼽히는 신용등급 AAA(트리플A) 한전채의 발행량이 늘어나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신용등급은 물론 금리가 높은 한전채로 채권시장 자금이 몰리면서 채권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심화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채권시장 내에서 우량채가 증가하면 기업 자금조달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한전채의 기준금리는 5%대로 악화한 회사채 투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한전채 발행규모는 총 31조8000억원, 표면금리는 최고 6%에 달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낮은 일반 기업들이나 수신 기능이 없는 금융사들은 자금 조달 길이 막혀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기업들의 자금조달 악재가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커져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전력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전채 발행 규모를 늘릴 경우 일반 회사채로 갈 자금까지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며 “최근 은행채 발행도 늘면서 채권 시장에서 수급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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