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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검은 황금’ 韓 기술로 닦아다오…기업이 뛰고 정부가 민 ‘중동 붐’

[중동에 부는 K-바람]①
脫석유 간절한 중동 빅3, 기름 없이 경제 대국 만든 한국 주목
107조원 경제 가치 창출 기대…분야 다양해진 ‘제2의 중동 붐’

탄소 배출량 감축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 형성과 신기술의 등장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 경제의 지속성이 떨어졌단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신규 먹거리를 마련에 나선 이른바 ‘중동 빅3’ 국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는 한국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대한민국에 ‘오일 머니’(Oil Money)가 쏟아진다. 중동은 한국 기술을 받기로 했다. 1970년대 한차례 불었던 ‘중동 붐’이 다시 찾아왔다.

중동은 150년 넘게 세계 산업을 움직이게 한 석유의 최대 생산 지역이다. 막대한 부가 중동 지역으로 흘러갔단 의미다. ‘검은 황금’으로 비유되는 석유는 중동 경제의 근간이 됐다. 흔히 ‘중동 빅3’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역시 국가 경제 체제의 뿌리를 석유에 두고 있다. 유럽 에너지 분야 컨설팅업체 에너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연간 원유 총생산량은 사우디가 601메가톤(1Mt=100만톤)으로 세계 2위다. UAE는 202Mt로 7위에 올라 있다. 2010년대 셰일 혁명을 이룬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급격하게 높이면서 2015년 이후로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 전체 생산량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하다.

중동 부국을 만든 ‘검은 황금’의 빛이 150년 만에 퇴색되고 있다. 숱한 산업군에서 석유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지속가능성이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올랐다. 탄소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단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은 석유 경제를 뿌리부터 흔든다. 4차 산업 혁명에 따른 신기술의 등장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결정적 계기가 되리라는 전망도 많다.

사우디·UAE·카타르가 연일 탈(脫)석유를 외치는 이유다. 이들 국가는 석유 중심의 경제 체제로는 더 이상 과거의 부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관광부터 제조까지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의 수장들은 이 중에서도 기술을 핵심으로 꼽았다.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넘게 이어진 경제 구조를 위태롭게 한 영역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셈이다.

중동서 한국 기술 주목한 이유

중동 빅3가 최근 내놓는 메시지는 ‘국가 차원의 변화가 절실하다’로 귀결된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내놓은 ‘비전 2030’이 대표적이다. 국가 경제 체제를 뿌리부터 변화하겠단 대규모 사업 계획들이 들어가 있다. 무려 170㎞를 폭 200m·높이 500m의 유리 장벽으로 연결하는 수직형 주거단지 ‘더 라인’ 따위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간 석유로 쌓은 막대한 부는 이 허황한 계획을 현실로 끌고 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더 라인’을 포함한 4개 도시 계획을 묶은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사우디 정부가 배정한 사업비만 5000억 달러(약 675조원)에 이른다.
네옴시티 주거단지 ‘더 라인’ 상상도와 설명 자료. [네옴 홈페이지 캡처]

중동 빅3가 탈석유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목한 곳은 대한민국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세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경제 규모를 만들어 낸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한강의 기적 이후로도 경제 성장을 이어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 1조6733억 달러(2161조8000억원)를 달성했다. 세계에서 13번째로 높은 수치다. 2020년과 2021년엔 명목 GDP 규모 세계 10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탈석유를 추진하는 중동 빅3가 참고할 사례인 셈이다.

앞서 1970년대 중동 인프라를 닦았던 곳이 한국이란 점도 지금의 ‘중동 붐’을 만들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한국 기업은 사막에 도로를 깔고 하수·항만·가스·주택 등을 구축했다. 1975년 7억5000만 달러에서 시작한 건설수주액은 1980년 82억 달러로 성장했다. 이 기간 외화 수입의 85.3%가 중동에서 나왔다. 파견 인력도 6000명에서 10만명으로 늘었다. 20만명에 달할 때도 있었다. 이때를 기억하는 중동 의사결정권자들이 한국에 높은 신뢰를 보여 지금의 중동 사업 확장에 긍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도 들린다.

최근 다시 일고 있는 ‘중동 붐’ 역시 1970년대를 풍미했던 건설 분야가 주축이다. 분야는 50여 년 전과 같지만, 양상은 확연히 다르다. 당시엔 토목을 중심으로 선진국의 하도급 형태로 수주를 받는 식이었다. 이번 중동 붐은 국내 건설사가 직접 현지 정부의 사업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건설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방산·제조·콘텐츠 등에서 사업 성과가 이미 구체화 됐거나, 구체화할 조짐을 보인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중동 탈석유 꿈의 실현 여부는 한국 기술에 달려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107조원 규모의 거대한 운동장

최근 윤석열 대통령 순방으로 가시화된 중동 붐은 지난해 11월부터 조짐을 보여왔다. 당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끈 수주지원단이 사우디를 방문한 게 중동 붐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주지원단은 정부와 민간이 ‘원팀 코리아’로 네옴시티 프로젝트 사업 수주 등 중동 사업 확장을 전략적으로 타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이들은 사우디 네옴시티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 협업 가능 지점을 눈으로 살피기도 했다.

양국 부처가 공동으로 진행한 ‘혁신 로드쇼’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알리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건설·모빌리티·스마트시티·IT·스마트팜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국내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참여했다. 현지 담당자와 국내 기업 간 실질적 논의의 물꼬가 트인 셈이다. 당시 수주지원단 명단에 오른 기업의 한 임원은 “한국은 미국·일본·인도·중국·독일·프랑스·영국 등 선진국들과 함께 사우디의 ‘비전 2030’의 중점 협력 국가 명단에 지난 2017년 일찍이 오르긴 했지만, 사업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시작된 건 수주지원단 방문 때부터”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영빈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환담 후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 대담 행사장으로 함께 이동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토부가 장을 만들었다면 최근 1년간 판을 키운 건 기업이다. 수주지원단 등을 통해 연을 맺은 현지 기업·정부 관계자들과 사업 논의를 이어왔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표방한 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 방문이 성사되며 성과가 나타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지난 10월 21일부터 4박6일 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사우디·카타르 국빈 방문에는 139개 기업이 ‘경제사절단’으로 함께했다. 이는 지난 4월 이뤄진 미국 경제사절단에 참가한 기업 수(122)보다 많다. 명단도 화려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등 주요 그룹 인사가 함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130명, 카타르 59명 등 190여 명의 국내 경제인이 중동 붐을 만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이를 통해 만들어 낸 경제적 가치는 사우디 156억 달러(약 21조원), 카타르 46억 달러(약 6조원)에 달한다. 윤 대통령 순방을 계기로 63개의 양해각서(MOU)와 계약이 체결됐다. 대표적 사업으로는 ▲자푸라2 가스플랜트 패키지(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 약 26억 달러)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운영(네이버, 약 1억 달러) ▲모듈러 사업 협력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삼성물산) ▲디지털 인프라 구축(KT·현대건설) 등이 꼽힌다.

윤 대통령 사우디·카타르 순방에 앞서 지난해 11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방한 때 양국이 체결한 MOU 규모는 290억 달러 수준이다. 지난 1월 윤 대통령의 UAE 국빈 방문을 계기로 성사된 300억 달러 투자 약속까지 더하면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총 107조원 규모의 사업이 이뤄지고 있고, 네옴시티 등 추가 수주까지 고려하면 ‘제2의 중동 붐’ 시작은 과한 평가가 아니라는 말이 산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제45회 국무회의에서 “중동 빅3와의 정상외교를 마무리했다”며 “우리 기업을 위한 792억불, 약 107조원 규모의 거대한 운동장이 중동 지역에 만들어졌고 이런 대규모 수출과 수주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와 민생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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