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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중동 ‘삼환 신화’ 재현…‘디지털 트윈’으로 사우디 진출 시동

[중동에 부는 K-바람]②
변방의 기술, 세계 중심에…사우디 5개 도시 가상에 ‘복붙’
“10년간 R&D 집착한 네이버, 빅테크 누르고 중동서 결실”

네이버가 ‘현실을 가상에 옮기는’ 기술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역량을 바탕으로 1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사업을 수주했다.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네이버의 사우디 성과는 50년 전 삼환기업 신화와 비견될 만하다.”

네이버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1억 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사업 따낸 점을 두고 정보기술(IT) 업계의 평가는 대체로 이랬다. 1970년대 1차 중동 붐의 포문을 연 곳이 삼환기업이라면, 2023년엔 네이버가 축포를 터뜨렸단 시각이다.

중동은 1975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 외환 수입액의 85.3%를 담당했다. 당시 건설 기업을 주축으로 일군 성과다. 삼환기업은 1973년 한국 기업 최초로 사우디 고속도로 구축 사업을 수주하며 중동 붐의 시작을 알렸다.

꼬박 50년이 지났다. 잊혔던 ‘중동 붐’이란 단어가 다시 세간을 뜨겁게 하고 있다. 다시금 움트기 시작한 ‘제2의 중동 붐’을 통해 100조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기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세기 동안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대변하듯, 제2의 중동 붐 수혜 범위는 건설·토목에 그치지 않고 IT·통신·콘텐츠·모빌리티 등으로 넓어졌다.

네이버의 사업 수주는 건설·토목 위주의 중동 붐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삼환기업 성과에 비견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중동 지역에서 한국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존재감을 드러낸 첫 사례가 됐다”며 “미·중 빅테크간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 사우디가 한국 기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네이버 수주 후 모빌리티·콘텐츠·통신 등에서도 사업 논의가 활발해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과거 중동 붐과 진행 양상이 달리 전개될 수 있는 변곡점을 네이버가 만들었단 설명이다. “‘변방의 기술’로 치부되던 국내 IT 역량을 세계 중심에 세운 것”이란 말도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네이버의 중동 진출은 지난 10월 24일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와 계약을 체결하며 본격화됐다. 수주 사업의 핵심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을 가상에 옮기는’ 기술을 말한다. 실제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정밀하게 구현,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는 개념이다. 현실을 가상 공간에서 옮기면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을 통한 분석이 수월해진다. 사업 진행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서비스·기기 등의 성능을 높일 방안을 찾는 식으로 활용된다.

사우디 정부는 네이버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스마트시티 조성에 쓸 계획이다.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메디나·제다·담맘·메카 등 5개 도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네이버가 구축하는 게 이번 사업의 골자다. 네이버는 이르면 내년 초 5개 도시에 대한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에 착수할 계획이다.

사우디 정부가 네이버의 기술을 적극 채택하면서, 사업비만 5000억 달러(약 675조원)로 책정된 대형 도시 계획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도 그 역할이 증대될 수 있단 기대가 나온다. 사우디가 국가 단위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을 추진하며 건설·토목에 이어 IT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단 분석이다. 네이버의 사업 수주 소식이 지난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 일정 중 열린 ‘한국-사우디 건설 협력 50주년 기념식’에서 발표됐다는 점도 이런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 리야드의 네옴전시관에서 열린 한·사우디 건설협력 50주년 기념식에서 네이버와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의 계약 체결을 바라보고 있다. 네이버는 이번 계약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차원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플랫폼 구축 사업 진행한다. 앞줄 왼쪽이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정책 대표. [사진 연합뉴스]

사우디 ‘디지털 인프라’도 韓 기업이 구축

네이버가 사우디 5개 주요 도시를 가상 세계에 구현하는 사업 성격 자체가 확장성을 담보한다는 평가도 있다. 네이버가 만드는 가상 공간이 다른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빅블러’(Big Blur)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를 정밀하게 데이터화, 가상 세계에서 구현하면 IT분야와 건설 산업 간 시너지 창출이 쉬워진다. 네이버는 그래서 이번 수주의 최종 목표를 ‘스마트시티 건설’로 설정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1차 중동 붐을 통해 한국 기업이 건물·도시를 지었다면, 2차 중동 붐에서는 데이터·IT로 가상 세계에 현실과 동일한 도시를 짓게 되는 것”이라며 “건설에 IT가 결합한 한국의 ‘제2차 중동 붐’이 이전 세대보다 더욱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만든 디지털 트윈 플랫폼이 다른 국내 기업의 중동 진출을 돕는 채널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네이버가 5개 도시를 가상에 옮기면, 이 공간에서 건축물에 대한 일조량·바람길 등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다. 집중 호우 침수 지역을 미리 측정해 상하수도 배치 계획을 짜는 일도 가능하다. 이 같은 요인 때문에 이미 한국국토정보공사(LX)와 한국수자원공사가 디지털 트윈 플랫폼 마련에 함께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런 시너지 창출을 위해 5개 도시의 디지털 트윈 공간을 클라우드 기반의 ‘오픈 플랫폼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스타트업이나 전문 기관 등도 자유롭게 가상 공간 활용이 가능하단 뜻이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네이버의 사우디 5개 도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미래형 도시의 기간 시설’이나 ‘디지털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여기기도 한다. 사우디가 구상하는 스마트시티의 수도·가스·도로와 같은 기반 인프라 물론 디지털 SoC에도 한국 기술이 입혀지는 셈이다.

SW 불모지서 ‘10년 내공’ 쌓은 네이버

50년 전 건설 중동 붐을 일으켰던 한국은 현재 ‘IT 강국’으로 불린다. 그러나 IT 강국 위상을 만든 분야는 반도체와 같은 하드웨어 성과에 국한된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반면 소프트웨어(SW) 수출액 비중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2.2~3.0%를 기록했다. 컴퓨터에 설치 후 사용하는 패키지 SW와 게임 SW를 제외한 순수 IT 서비스 관련 수출 비중은 이 기간 단 한 번도 2%를 넘지 못했다. SW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인지도 자체가 낮고, 저평가돼 있다는 방증이다.

네이버 내부에선 한국 기업의 낮은 SW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기술 수출의 성과를 달성한 배경으로 ‘10년 내공’을 꼽는다. 네이버는 2013년 사내 기술 연구조직 ‘네이버랩스’ 출범한 뒤 기술 연구개발(R&D)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네이버의 매출 대비 연간 R&D 투자 금액은 22~25% 수준이다. 지난해에만 2조원 정도를 R&D에 지출했다. 네이버랩스에 출자한 누적 금액만 3600억원 수준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제너럴일렉트릭(GE) 등도 디지털 트윈에 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우디 사업을 수주의 주인공이 네이버가 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네이버랩스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0cm 내외의 오차 범위로 도시 전체를 정밀하게 구현·복제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매핑 로봇과 데이터 처리 인프라 등도 자체 개발했다. 이는 고스란히 사우디 수주의 원동력이 됐다.

네이버랩스와 네이버클라우드 등 기술 자회사의 역량을 결집한 네이버의 제2사옥 ‘1784’도 큰 역할을 했다. AI·클라우드·5G·디지털트윈·로보틱스·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이 고스란히 녹아든 건물을 직접 사우디 인사에 보여주며 IT 역량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통신정보기술부 장관 등 주요 인사가 최근 1년간 1784를 총 9번 찾아 네이버의 기술을 직접 체험했다.

이번 사업 수주를 이끈 인물로는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대표가 꼽힌다. 그는 대통령 순방 경제사절단에 동행, 사우디 정부와 직접 계약을 체결했다. 1784를 ‘로봇 친화’ 콘셉트로 건립하자는 의견을 내 디지털 트윈 기술을 고도화한 결정적 계기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 대표는 사업 수주 직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탄탄한 IT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2의 중동 수출 붐을 이끌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알 호가일 사우디아라비아 자치행정주택부 장관 일행이 지난해 11월 네이버 제2사옥 1784에 적용된 기술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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