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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수성에 ‘진심’인 가장 비싸고 목 좋은 ‘디지털 부동산’ [한세희 테크&라이프]

구글이 1년간 낸 스마트폰 기본 검색 엔진 자릿값 34조원
검색 창구 사들인 구글, 시장 경쟁 저해?…반독점 소송 진행 중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애플 아이폰에 기본 탑재된 ‘사파리’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구글 검색 결과가 나온다. 구글이 사파리의 기본(디폴트) 검색 엔진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공짜로 구글을 자사 브라우저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올려준 것은 아니다. 구글이 사파리 등 주요 인터넷 브라우저의 디폴트 검색 엔진 자리를 차지하려 적잖은 돈을 낸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으나, 정확한 금액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다.

구글이 디폴트 검색 엔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쓰는 비용이 얼마 전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 재판 과정에서 이 데이터가 공개된 것이다. 구글은 디폴트 검색 엔진 자리를 얻기 위해 애플·삼성·파이어폭스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나 인터넷 브라우저 개발사, 이동통신사 등에 2021년에만 263억 달러를 지불했다. 이 중 가장 큰 몫은 물론 애플로 갔을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아이폰·아이패드 등에 쓰이는 사파리의 디폴트 엔진 자리를 위해 2021년 18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이폰 브라우저 주소창은 디지털 세계에서 가장 값진 부동산이다.

263억 달러라면 현재 환율 기준, 약 34조2000억원이다. 지난 3분기 구글의 검색 사업 매출은 440억 달러였다. 2022년 연간 검색 매출은 1650억 달러였고, 영업이익은 900억 달러 수준이었다. 구글은 연간 매출의 거의 16%, 이익의 29%를 디폴트 자리를 지키는데 도로 쏟아붓는 것이다. 34조원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한국 기업들이 수주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프라 구축 사업 총규모이고, 대한민국 연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과 비슷한 금액이다.

구글이 누리는 ‘디폴트’의 힘

구글이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소비자가 검색을 접하는 창구를 모두 사들여 버림으로써 인터넷 검색 시장의 경쟁을 저해했다는 것이 이번 반독점 소송의 핵심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계(OS)를 쓰는 스마트폰으로 양분돼 있다. 안드로이드 폰에는 당연히 구글 앱, 구글이 기본 검색 엔진인 크롬 브라우저 앱이 탑재된 채 출시되며, 바탕화면에도 구글 검색창 위젯이 떠 있다. 그런데 아이폰도 검색은 구글을 디폴트로 쓰고 있으니, 결국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구글 검색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검색 기업이 구글에 도전했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의 네이버나 러시아의 얀덱스 정도가 예외라 할 수 있다.

구글은 이에 대해 ‘소비자가 다른 검색 엔진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며, 스마트폰이나 브라우저는 디폴트 검색 엔진을 변경하는 쉬운 방법을 제공한다’라고 맞선다. 다시 말해, 구글이 가장 좋은 검색 엔진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고, 스마트폰 제조사는 고객 편의를 위해 구글을 기본 엔진으로 유지한다는 주장이다.

제품 간 전환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인터넷 시장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선도 기업의 전형적 방어 논리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서비스 ‘빙’보다 구글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는 것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책임경영자(CEO)도 인정하는 바다. 그는 지난달 구글과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물론 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력이나 서비스가 뒤처진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검색을 구글이 독점하니 빙에선 검색이 일어나지 않고, 검색량이 적으니 데이터도 부족해 검색 품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구글은 풍부한 검색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 품질을 높일 뿐 아니라 인공지능 성능까지 올리는 선순환을 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파리 디폴트 브라우저에 빙이 들어간다면 “게임 체인저가 되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연간 150억 달러의 손실까지 감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글이 제시하는 경제적 이익이 워낙 커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 [사진 연합뉴스]

‘검색 디폴트’ 구글은 검색 시장 경쟁을 가로막고 있나?

이는 검색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빙이나 ‘덕덕고’ 같은 다른 검색 엔진이 소비자를 만날 기회를 차단하는 것뿐 아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선 애플이 자체 검색 서비스 강화나 빙 인수를 검토했으나, 구글이 디폴트 엔진 자리에 지불하는 막대한 수익을 잃을까 봐 포기했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아이폰과 맥북에 있는 자체 검색 기능 ‘스포트라이트’가 이 모양(?)인 이유다. 몇 해 전 구글이 삼성전자에 자체 모바일 앱 개발을 못 하게 회유 또는 압박했던 일도 떠오른다.

세계에 18억대 이상 깔린 애플 iOS 기기에 구글이 아닌 다른 검색 엔진이 탑재된다면 검색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고객 데이터 확보와 AI 향상을 위해 검색에서 손실을 볼 각오가 되어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고객 접점을 더 가질 수 있다면 경쟁이 더 활발해졌을 수도 있다.

빙은 성능이 별로라 쓰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도 충분히 타당하다. 구글이 가장 좋은 검색 엔진임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구글이 현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의도적으로 시장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기술력과 편리한 서비스를 앞세워 ‘디폴트’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인터넷 시장에선 특히 중요하다. 과거 네이버·다음·이스트소프트 등이 툴바나 압축 소프트웨어 같은 유틸리티를 앞세워 브라우저 첫 화면을 차지하려는 경쟁을 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으레 브라우저 첫 화면을 자사 포털로 바꾼다는 것에 동의한다는데 체크가 되어 있는 대화상자가 눈에 안 띄게 살짝 나온다. 지금도 카카오톡 PC 버전을 설치하면 첫 화면을 ‘다음’으로 바꾼다는 대화상자가 나온다.

다만, 업계를 지배하는 몇몇 대기업들끼리 디폴트 자리를 돈 주고 사고팔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번 재판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말을 들으면, 그리고 과거 윈도우에 통합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때문에 크롬이 불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구글이 주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자주,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그 방법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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