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꽉 막힌, 그래서 더 특별한 울진 속살 오지랖 여행기 [E-트래블]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최고급 토종 소나무 100만여 그루 우거져
매화 마을, 전 주민 힘 합해 이현세 만화벽화 마을로 변신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가을 낙엽은 바바리코트의 끝자락을 잡고 애걸하지만, 그와의 결별은 피할 수 없다. 코트 깃은 겨울 한풍에 놀라 어느 틈엔가 곧추세워졌고, 짧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은 추억이 됐다. 그 틈바구니를 된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우울의 더께 쌓인 휑한 마음속에 엉덩이를 들이민 품새가 애초에 자기 집인 양 뻔뻔도 하다. 떨어진 수은주에 화들짝 놀라 야단법석이 따로 없다. 대형 교통편이 없어 오지라 치부된 울진이, 겨울 동안거에 들어서기 직전이다. 새들도 쉬어간다는 그곳, 사람이 못 갈 이유 없다. '오지'말란 적 없는 울진의 속살 탐험 오지랖 여행기다.
왕피천 용소…용트림 흔적일까
왕피천은 골이 깊어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왕피천은 ‘왕이 피신해 온 곳’이다.
산기슭이 동해로 급하게 흘러내리다 보니 왕피천은 유속이 빨라 하천 골짜기가 좁고 가파르다. 일부 구간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오롯이 자연이 만들고 자연이 이어온 계곡이다.
반갑다고 왕피천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산에 내어준 한걸음에 내 맘속 아집까지 탈탈 털렸다. 울진 왕피천 용소를 훔쳐보고 싶어, 약 65㎞의 풀코스가 아닌 용소까지 2㎞ 안팎의 샛길을 택하는 꼼수를 부렸다. 최대한 차를 산에 붙여 굴구지마을 상천관리초소편에서 출발해 30~40분 산을 돌파해 오롯이 용소만을 탐닉할 목적으로 불손한 산행에 나섰다. 워낙 저질 체력이라 꼼수 산 타기에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경사도가 장난이 아닌 산길이다. 딱 버티고 선 그들을 마주하니 눈은 저절로 아래로 깔렸다. 초반부터 주눅이 든 게 분명하다. 뒤로 물러설 수 없어 경사각을 치고 올라가고 아찔하게 내려가는 난코스, 발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아이고~아이고(Go)’.
더는 내어줄 게 없다. 그 짧은 산행에 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했으니,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다. 이미 땀은 흐르는 것을 포기하고 뚝뚝 떨어졌다. 두 발로 걷다가 네발로 기어야 했고, 요동치는 심장은 달궈진 프라이팬 위 소금처럼 이리저리 날뛰었다. 혀만 내놓지 않았을 뿐, 난 오뉴월 개보다 더 추한 꼴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왕피천의 최고 절경 용소를 마주했다. 가문 날이 이어졌지만 계곡은 지상 최고의 절경을 갈아 넣으며 용소의 이름값을 오롯이 지켜냈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금강송 숲
금강송 최대 서식지로 알려진 서면 소광리 일원에 ‘울진 금강송 숲길’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왕실의 전유물이던 최고급 토종 소나무가 100만여 그루 빽빽이 우거져 자란다. 조선 왕실은 120년 이상 된 소나무만 골라 나라님의 관으로 사용했다.
금강송은 금강산에서부터 강원도 강릉과 경북 영양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 품종이다. 모양새는 키가 크고 곁가지가 없다. 금강송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곁가지를 떨구어 낸다. 게다가 스스로 옹이 관리까지 하는 통에 매끈한 각선미를 자랑한다. 목재로 사용하기 좋게 스스로 몸을 만드는 기이한 나무다. 키가 큰 것은 35m에 이른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에서는 이 숲의 상징인 오백 년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가족 탐방로인 이유는 다른 구간보다 난도가 낮아 붙여졌고 그만큼 인기다. 점심 포함 3시간쯤 걸린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예약 탐방 가이드제를 시행하고, 탐방은 무료로 운영한다. 홈페이지 예약으로 선착순 마감하며, 예약은 탐방 3일 전까지다(화요일 휴무). 구간마다 탐방 인원을 하루 80명으로 제한하고, 숲 해설사가 안내한다.
이곳의 금강소나무는 사람들이 정성껏 가꾸고 보존한 덕에 나무 스스로 싹 틔워 자랄 환경이 만들어졌다. 2001년도 경복궁 수리할 때 140그루의 이곳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2004년 낙산사에 불이 났을 때, 그 수리를 위해 5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제공했다. 일반적 관례에 따르면 사찰에는 금강소나무를 주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루당 7000만 원에 제공했다고. 그 가격은 오르고 올라 현재는 1억 원을 호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불어 불영사에 이르는 불영계곡에도 다리맵시 미끈한 금강소나무가 즐비하다.
울진 후정리에 기품 있는 모습의 5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울릉도에서 떠내려와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세 만화벽화 마을로 떠나는 레트로 추억
꼰대들의 아이콘이 마을을 살리는 콘텐츠가 됐다.
1980년대를 휩쓴 이현세 작가의 만화가 벽화처럼 매화마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마을에 생기를 돌게하고 있다. 동맥경화로 꽉 막혔던 마을의 혈맥을 이현세의 대표 작품인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까치와 엄지가 속 시원히 뚫어 놓았다.
이 작품은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OST로 삽입된 ‘난 너에게로’는 가수 정수라가 부르며 가요순위에서 20주 넘게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매화 마을이 이현세 만화벽화 마을로 변신한 건 황춘섭 이장 등 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다.
지난 2015년 허물어져 가는 농협 담벼락에 매화중학교 학생 16명에게 자신들의 꿈을 벽화로 그리는 작업을 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매화마을에 그려진 이현세 작가의 그림은 이 작가의 처남인 안창회 화백이 원본과 똑같이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현재 매화 이현세만화 벽화마을 골목골목 담에는 이현세 작가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남벌’, ‘만화 삼국지’, ‘며느리밥풀꽃’, ‘창천 수호지’ 등 500여 점이 그려져 있다. 3개의 테마로 이현세 최고의 거장을 만날 수 있다.
벽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벌열차카페는 이 동네의 랜드마크다.
남벌열차카페 뒤편에 조성된 공포의 외인구단 3인방인 까치, 마동탁, 엄지의 브론즈상.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다
매화마을 탐방도 재미있다. 약 60년 된 삼일다방에서는 동네 어르신이 짜장면을 드시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8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집이며 70년대 마을 목욕탕도 외지인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 레트로가 세트로 다가온다. 이외에도 매화역사관, 만화도서관 등 돌아볼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랑블루 펜션…길 멈춘 곳, 인연을 만나다
울진의 그랑블루 펜션은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경북 울진군 울진읍 대나리항 바닷가 바로 앞에 있다. 두말이 필요 없는 일출 맛집이다.
한 투숙객 중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려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향하는 모습에선 영화 하나가 눈앞을 스쳤다.
펜션 이름인 ‘그랑블루’를 떠올리면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한 뤽베송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눈앞에 ‘퀵배송’돼 펼쳐졌다. 꼭 30년 전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1만 일이 지난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이 팬들의 가슴 속 남아 있다. 그 조각 중 일부가 이곳 펜션에 녹아있다.
그랑블루 펜션에 투숙한 관광객들이 펜션에서 약 100m
바다가 코 앞이다 보니 잠자리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왕피천 용소…용트림 흔적일까
왕피천은 골이 깊어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왕피천은 ‘왕이 피신해 온 곳’이다.
산기슭이 동해로 급하게 흘러내리다 보니 왕피천은 유속이 빨라 하천 골짜기가 좁고 가파르다. 일부 구간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오롯이 자연이 만들고 자연이 이어온 계곡이다.
반갑다고 왕피천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산에 내어준 한걸음에 내 맘속 아집까지 탈탈 털렸다. 울진 왕피천 용소를 훔쳐보고 싶어, 약 65㎞의 풀코스가 아닌 용소까지 2㎞ 안팎의 샛길을 택하는 꼼수를 부렸다. 최대한 차를 산에 붙여 굴구지마을 상천관리초소편에서 출발해 30~40분 산을 돌파해 오롯이 용소만을 탐닉할 목적으로 불손한 산행에 나섰다. 워낙 저질 체력이라 꼼수 산 타기에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경사도가 장난이 아닌 산길이다. 딱 버티고 선 그들을 마주하니 눈은 저절로 아래로 깔렸다. 초반부터 주눅이 든 게 분명하다. 뒤로 물러설 수 없어 경사각을 치고 올라가고 아찔하게 내려가는 난코스, 발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아이고~아이고(Go)’.
더는 내어줄 게 없다. 그 짧은 산행에 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했으니,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다. 이미 땀은 흐르는 것을 포기하고 뚝뚝 떨어졌다. 두 발로 걷다가 네발로 기어야 했고, 요동치는 심장은 달궈진 프라이팬 위 소금처럼 이리저리 날뛰었다. 혀만 내놓지 않았을 뿐, 난 오뉴월 개보다 더 추한 꼴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왕피천의 최고 절경 용소를 마주했다. 가문 날이 이어졌지만 계곡은 지상 최고의 절경을 갈아 넣으며 용소의 이름값을 오롯이 지켜냈다.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금강송 숲
금강송 최대 서식지로 알려진 서면 소광리 일원에 ‘울진 금강송 숲길’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왕실의 전유물이던 최고급 토종 소나무가 100만여 그루 빽빽이 우거져 자란다. 조선 왕실은 120년 이상 된 소나무만 골라 나라님의 관으로 사용했다.
금강송은 금강산에서부터 강원도 강릉과 경북 영양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 품종이다. 모양새는 키가 크고 곁가지가 없다. 금강송은 성장하면서 스스로 곁가지를 떨구어 낸다. 게다가 스스로 옹이 관리까지 하는 통에 매끈한 각선미를 자랑한다. 목재로 사용하기 좋게 스스로 몸을 만드는 기이한 나무다. 키가 큰 것은 35m에 이른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에서는 이 숲의 상징인 오백 년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가족 탐방로인 이유는 다른 구간보다 난도가 낮아 붙여졌고 그만큼 인기다. 점심 포함 3시간쯤 걸린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예약 탐방 가이드제를 시행하고, 탐방은 무료로 운영한다. 홈페이지 예약으로 선착순 마감하며, 예약은 탐방 3일 전까지다(화요일 휴무). 구간마다 탐방 인원을 하루 80명으로 제한하고, 숲 해설사가 안내한다.
이곳의 금강소나무는 사람들이 정성껏 가꾸고 보존한 덕에 나무 스스로 싹 틔워 자랄 환경이 만들어졌다. 2001년도 경복궁 수리할 때 140그루의 이곳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2004년 낙산사에 불이 났을 때, 그 수리를 위해 5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제공했다. 일반적 관례에 따르면 사찰에는 금강소나무를 주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루당 7000만 원에 제공했다고. 그 가격은 오르고 올라 현재는 1억 원을 호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불어 불영사에 이르는 불영계곡에도 다리맵시 미끈한 금강소나무가 즐비하다.
울진 후정리에 기품 있는 모습의 5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울릉도에서 떠내려와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세 만화벽화 마을로 떠나는 레트로 추억
꼰대들의 아이콘이 마을을 살리는 콘텐츠가 됐다.
1980년대를 휩쓴 이현세 작가의 만화가 벽화처럼 매화마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마을에 생기를 돌게하고 있다. 동맥경화로 꽉 막혔던 마을의 혈맥을 이현세의 대표 작품인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까치와 엄지가 속 시원히 뚫어 놓았다.
이 작품은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OST로 삽입된 ‘난 너에게로’는 가수 정수라가 부르며 가요순위에서 20주 넘게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매화 마을이 이현세 만화벽화 마을로 변신한 건 황춘섭 이장 등 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다.
지난 2015년 허물어져 가는 농협 담벼락에 매화중학교 학생 16명에게 자신들의 꿈을 벽화로 그리는 작업을 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매화마을에 그려진 이현세 작가의 그림은 이 작가의 처남인 안창회 화백이 원본과 똑같이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현재 매화 이현세만화 벽화마을 골목골목 담에는 이현세 작가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남벌’, ‘만화 삼국지’, ‘며느리밥풀꽃’, ‘창천 수호지’ 등 500여 점이 그려져 있다. 3개의 테마로 이현세 최고의 거장을 만날 수 있다.
벽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벌열차카페는 이 동네의 랜드마크다.
남벌열차카페 뒤편에 조성된 공포의 외인구단 3인방인 까치, 마동탁, 엄지의 브론즈상.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다
매화마을 탐방도 재미있다. 약 60년 된 삼일다방에서는 동네 어르신이 짜장면을 드시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8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집이며 70년대 마을 목욕탕도 외지인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 레트로가 세트로 다가온다. 이외에도 매화역사관, 만화도서관 등 돌아볼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랑블루 펜션…길 멈춘 곳, 인연을 만나다
울진의 그랑블루 펜션은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경북 울진군 울진읍 대나리항 바닷가 바로 앞에 있다. 두말이 필요 없는 일출 맛집이다.
한 투숙객 중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려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향하는 모습에선 영화 하나가 눈앞을 스쳤다.
펜션 이름인 ‘그랑블루’를 떠올리면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한 뤽베송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눈앞에 ‘퀵배송’돼 펼쳐졌다. 꼭 30년 전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1만 일이 지난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이 팬들의 가슴 속 남아 있다. 그 조각 중 일부가 이곳 펜션에 녹아있다.
그랑블루 펜션에 투숙한 관광객들이 펜션에서 약 100m
바다가 코 앞이다 보니 잠자리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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