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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수익 없어도 ‘세이노의 가르침’ 펴낸 이유…차보현 대표가 찾은 가치 [이코노 인터뷰]

[세이노 열풍 진단]③ 차보현 펜슬프리즘 대표 인터뷰
가격에 묻어난 저자의 진정성…마음 돌린 ‘단가표’
권당 100원 손해날 수도 있는 구조에도 출판 고집
“위로 줬던 글, 책으로 나온 후 많이 읽혀 뿌듯”

책 ‘세이노의 가르침’의 표지는 검은색-흰색-빨간색 순으로 제작됐다. 처음엔 검은색 표지로 기획됐으나 ‘잉크 마를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가 몰려, 명암을 반전한 흰색으로 다시 인쇄했다고 한다. 붉은색 표지는 70만부 판매 기념으로 제작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펜슬프리즘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차보현 대표가 붉은색 표지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정두용 기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물론 다 그렇진 않지만, 웹소설 작가 중에는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많아요.”

차보현 펜슬프리즘 대표는 이 말을 한숨 쉬듯 어렵게 내뱉었다. 인터뷰가 한참 무르익은 뒤에야 아프게 꺼내놓은 속내이기도 하다. 웹소설 작가에 대한 애정은 그가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왜 책을 출간했나요”라고 물은 까닭

‘세이노’(Say No·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라고 말하라)란 필명을 쓰는 1955년생 자산가. 차 대표는 ‘알음알음 유명했던’ 이 인물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인사가 되는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2000년부터 세상에 던진 숱한 글을 책으로 엮어내면서 ‘세이노’란 필명은 유명세를 탔다. 지난 3월 2일 약 2년이란 준비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 ‘세이노의 가르침’은 저자의 마음을 연 차 대표의 노력이 묻어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은 출간 약 8개월 만에 73만부가 넘게 팔렸다. 등장과 동시에 한국을 강타한 셈이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세이노 목소리에 세상이 귀를 기울인 이유를 분석하고 나섰다. ▲일상에서 곧장 꺼내 쓸 수 있는 지혜를 특유의 직설적 문장으로 전달한다는 점 ▲경기 위축에 자기 계발서가 늘 인기를 끄는 시대적 상황 ▲세이노란 인물에 이미 팬덤이 형성돼 있어 빠르게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독자 중 상당수는 ‘가격에 묻어난 진정성’을 가장 앞에 두곤 한다. 7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의 책을 단돈 7200원에 만날 수 있어, 그의 메시지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는 평도 많다. 비슷한 분량의 책이 2만원 안팎에 팔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출판업계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수익을 노린 도서는 아니구나’란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전자책의 경우 무료로 배포돼 11월 중순 기준 약 66만회가 다운로드 되기도 했다. 세이노가 직접 책에 기술했듯 ‘세상을 상대로 글을 썼을 때 가졌던 대원칙은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나의 글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란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난 판매 방식인 셈이다. “가르치는 데 돈을 받지 않는 게 철칙”이란 말을 고스란히 증명해 낸 가격 책정 덕분에 그의 다른 메시지 역시 힘을 받고 있단 견해도 있다.

궁금했다. 차 대표는 사업가다. 그가 이끄는 펜슬프리즘은 연필(웹소설)·데이원(일반서적)이란 브랜드를 운영하는 출판업체다. 세이노의 철학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글을 팔아 수익을 내는 일은 차 대표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일 터다. 더욱이 ▲좀처럼 자신을 대외에 드러내지 않는 저자와 ▲공수가 많기로 유명한 출판 편집 과정을 ▲기대 수익 없이 진행한다는 점은 쉬이 이해되지 않았다. “초판(1쇄) 3000부를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한 권당 100원이 남든가, 100원을 손해 보는 구조였다”고 말하며 웃는 차 대표의 얼굴을 마주하자, 의문은 더욱 커졌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펜슬프리즘 사무실에 배치된 책 ‘세이노의 가르침’과 자전거 모형. 자전거 모형은 저자 세이노가 수집한 것을 차보현 펜슬프리즘 대표에게 선물로 줬다고 한다. [사진 정두용 기자]

“주변을 위로하기 위해 출간했죠”라고 답한 이유

차 대표와 만나자마자 출간의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한참을 ‘왜’보단 ‘어떻게’를 중심으로 그간의 시간을 설명했다. 책 서문에서도 소개된 일화 정도로만 답변을 갈무리했단 의미다. “2016년께 세이노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내용을 보고 곧 책으로도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콘텐츠가 확실한 글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온라인 카페 ‘세이노의 가르침’ 회원들이 저자가 언론 등에 쓴 글을 정리해 왔고, 이를 기반으로 공동 제본판도 나와 있어 책 출간은 ‘시간 문제’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 책이 나오지 않았고, 혹시 가격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1년 6월 저자에게 ‘제본 가격 수준으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엑셀로 만든 단가분석표를 메일로 보냈다. 그게 출간이 이뤄진 배경의 전부다. 다른 출판사가 세이노에게 이미 접촉했었다는 건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됐다.”

차 대표는 “(저자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제안”이라고 했지만, 이런 선택을 한 건 데이원이 유일했다. ‘글의 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접근한 50개 넘는 출판사 제안을 고사한 세이노의 마음을 차 대표는 ‘미사여구’ 없는 숫자로 돌린 셈이다.

차 대표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도 의문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그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품이 많이 드는 출판 작업을 진행한 ‘진짜 이유’는 질문을 몇 차례 더 던진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차 대표는 다소 슬픈 표정으로 한참을 입을 떼지 못하다 대뜸 ‘웹소설 시장’ 얘기부터 시작했다. “세이노의 글이 도서관에 꽂혀 있는 걸 보고 싶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그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웹소설 시장에 비교적 일찍 뛰어들었다. 종이책 대여점이 유통의 중심이던 시절부터 온라인 플랫폼이 대세가 된 지금까지 웹소설 시장을 경험해 왔다. 지금까지 300명 정도의 웹소설 작가와 호흡을 맞춰왔는데, 시장이 점점 커져서 그런지 예전보다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불안정한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많게는 몇천만원을 벌다가 어떤 때는 치킨값도 들어오지 않는 게 일반화됐다. 웹소설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더 빠르게 선택받거나 더 쉽게 버림받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도 마음을 병들게 했다. 글을 쓰는 시간이 들쭉날쭉 되면서 일상이 무너지고, 쉽게 열패감·열등감에 휩싸일 수 있는 요즘이다. 작업을 디지털로 진행하다 보니 사람 만날 일은 더욱 줄어들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힘든 글이라 다른 곳에서 만족감을 찾는 작가도 많다. 불안정한 환경은 허언증·우울증·성형중독 등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에 남긴 저자 사인. [사진 차보현 펜슬프리즘 대표]

세이노의 글은 단순히 ‘돈을 버는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수성가를 이루면서 얻은 지혜와 그가 생각하는 올바른 삶의 태도에 지면이 더 많이 할애돼 있다. 차 대표는 이 지점이 ‘기댈 언덕’이 되리라고 봤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삶이 무너진 주변 웹소설 작가들에게 일상을 되찾아 주고 싶었던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애정을 쏟아부어도 치유가 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없는 조언을 세이노는 삶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느꼈다. 웹소설 작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안정적인 자산 구축의 중요성’을 쓰게 얘기하면서도 진정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가 일상을 찾는 데 그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수익성은 이 과정에서 그리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했다.”

이는 차 대표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많이 벗어났지만 나 역시 힘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괴로운 생각을 버리기 위해 아등바등한 시간이 충분한 의미가 있었음을 세이노의 글을 보면서 많이 느꼈다. 아쉬웠던 건 ‘조금 더 빨리 세이노의 생각을 접했으면, 시행착오가 줄지 않았을까’다. 그래서 세이노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 도서관에 꽂아두고 싶었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차보현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 그러니까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첵 ‘세이노의 가르침’은 차 대표 스스로와 그의 주변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출간된 책은 곧장 차 대표의 주변을 벗어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고민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

차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책 ‘세이노의 가르침’ 최고의 한 구절로 ‘자기 자신을 사냥하라’를 꼽았다. 저자는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54년 ‘월든’(Walden)에 쓴 문장을 본문에 인용하며 “이 말을 새겨들어라”라고 했다. 차 대표는 “부제인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나 표지에 표현한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는 비유 외에도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아있다”며 “내가 나를 사냥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 사냥감도 사냥꾼도 모두 항상 여기에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팬이기 전에 자신의 팬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도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매우 적겠지만, 이 책 한 권을 읽고 혹여 모든 걸 깨우쳤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나 자신을 사냥하라’는 말처럼 저마다의 해답을 찾는 과정에 힌트를 얻는 정도로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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