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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물가압박, ‘언 발에 오줌 누기’”…식품가 속앓이 들어보니

인상자제·슈링크플레이션 고강도 단속에
오뚜기·풀무원 등 줄줄이 인상 철회
급격한 가격 상승 초래할 가능성↑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통조림 등 식료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제품 가격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가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가하고 있다. 그동안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해달라며 빵, 우유 등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하며 밀착 관리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압박이 계속되자 주요 식음료사들은 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제재가 물가 안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나중에 제품 가격이 한꺼번에 크게 오르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 경제 흐름에 일시적인 제재를 가해 물가 인상을 막는 것은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다.

압박 수위 높이는 정부…식품업계 “강압적 요구”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을 직접 찾아가 가격 안정화를 요청하는 등 물가 안정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8일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이 빙그레 충남공장에 방문했으며, 양주필 식품산업정책관도 CJ프레시웨이 본사에 방문해 식품 가격 동향을 점검했다. 물가 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정부의 뜻을 피력하고자 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가격 인상 계획을 밝혔던 일부 업체들은 연달아 인상을 철회했다. 오뚜기는 12월1일부로 분말 카레와 케첩 등 24종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가 전날 이를 취소했다. 풀무원도 12월1일부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요거톡 초코그래놀라, 요거톡 스타볼, 요거톡 초코 필로우 등 요거트 제품 3종의 가격을 2200원에서 2300원으로 인상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21일 계획을 철회했다.

양사 모두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협조, 민생 안정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업계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정부 압박에 부담을 느껴 눈치 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MB 물가지수를 도입해 정부가 관리할 52개 품목을 두고 가격을 통제했다. 그러나 52개 품목 중 41가지의 물품 가격이 올랐다. 이중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더 상승한 품목은 29가지에 달했다. 정책 3년 시행 이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2% 이상 증가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도 가격 인상 억제 제재를 가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며 “경기가 어려웠을 때 어떻게 국가가 관여했고 정책을 펼쳤는지 사례들을 보면서 개입해야지 지금은 너무 강압적인 요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물가 안정 효과 ‘의문’…“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올지도”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정책으로 인해 식품업계에서는 부작용도 초래되고 있다. 가격은 유지하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재료를 값싼 것으로 대체해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 낱개 상품보다 묶음 상품을 더 비싸게 판매하는 ‘번들플레이션’ 등이다. 

업계는 가격 인상 억제에 마지못해 선택하는 전략이라고 항변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 등이 ‘꼼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량과 개수 모두 표기하고 있다”며 “용량을 줄이는 것을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일 뿐이지, 미국이나 유럽처럼 법제화하면 가이드라인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김 등 식료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의 기업 압박이 실제로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서민들의 고물가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결정한 정책이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생기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정책에 개입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시장경제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며 “언제가 됐든 물가가 상승하게 돼 있는데 결국 한꺼번에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운영에 있어서도 가격을 제때 올리지 못하면 제대로 경쟁력을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며 “가격을 미리 올린 기업은 운 좋게 살아남을 것이고, 끝까지 감내하면 경영상 어려움을 겪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의 역할로 ‘식품 가격 모니터링’을 꼽았다. 서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품목들의 가격 동향을 정부가 계속 모니터링해 발표하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매 가격 인상에 압박을 가하는 건 말초적 정책에 불과하다”며 “식품 주요 품목 몇 가지를 정해 매달 모니터링, 공개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의 손목만 비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가격 인상을 가로막을 게 아니라 시장 경제 질서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게끔 해야한다”며 “정부는 정책적 지원을 통해 기업의 가격 및 공급 요소의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는 데 방점이 찍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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