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전산화’ 3년만에 재논의…이번엔 도입될까
[공매도 금지, 남은 과제는]①
전산시스템 구축 시 공매도 주문 허용 계획
수 년간 투자자 요구에도 비용·기술 들어 반대
전산시스템 구축 TF 구성해 제도 개선 속도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송재민 기자]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투자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던 전산시스템 구축이 드디어 도입될 수 있을지,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외국계 IB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로 개선 목소리
공매도 전면 중단에 이어 금융당국의 공매도 제도 개선안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3일 금융투자업계와 ‘무차입 공매도 방지 전산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당국은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기관 내부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과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화를 제시했다. 공매도 재개시 증권사가 해당 기관의 내부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 여부를 확인한 경우에만 공매도 주문을 허용하겠단 계획이다.
무차입 공매도란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 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가 유가 증권을 매도하는 거래 형태다. 주식을 먼저 빌린 뒤 파는 형태가 아닌 무차입 공매도는 국내 법상 불법이다. 자본시장법 180조에 따르면 ‘미리 빌려둔 주식을 이용한 공매도’(차입 공매도)를 제외한 모든 공매도는 금지된다. 그러나 외국계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는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가 그간 관행적으로 반복돼 주식시장 공정 가격 형성을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 BNP파리바와 HSBC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이 560억원대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한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BNP파리바 홍콩법인이 지난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진행했고, 홍콩 HSBC도 2021년 8~12월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간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전산화 시스템의 미비’가 꼽힌다. 지금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공매도가 전산화되지 않아 모든 거래 기록을 수기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관끼리 대차거래 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중가에서 불법 거래가 일어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실시간으로 공매도를 감시할 수 없어 오류가 발생해도 사전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 년간 일반 투자자들은 전산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지만 금융당국은 현실적으로 구축이 어렵다는 답만 내놓았다. 지난 2018년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배당 사건과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 사태가 연이어 터지자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주식 잔고·매매 모니터링 시스템’을 약속했다. 2020년에도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계획을 밝혔지만 이듬해 포기를 공식화했다.
당시 은 전 위원장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데다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되면 주식거래 체결이 늦어지고 시스템 과부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올해 초 까지만 해도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공매도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전산 시스템에도 부정적 반응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나라에서 외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서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게 과연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정책인지 정말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로벌 IB의 무차입 공매도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먼저 칼을 빼 들자 금융당국도 입장을 바꾸고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시스템 과부화·천문학적 비용 등 고려해야 할 것 많아
금융당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지만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을 빌리는 목적과 사용하는 플랫폼이 모두 다른데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개선안에 대한 불만을 내비치자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은 지난 27일 공매도 전산시스템에 대해 추가설명을 내놓았다. 이들 기관은 현실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 실시간 무차입 공매도 차단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재검토 후 공론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관기관은 외부적인 실시간 무차입 공매도 차단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밝히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무차입 공매도 차단시스템은 증권사, 또는 거래소 차원에서 투자자의 매도가능잔고를 확인해 잔고가 부족할 경우 투자자의 매도 주문을 거부하는 시스템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첫 번째 조건은, 모든 투자자의 잔고정보를 중앙시스템에 실시간 집적하거나 잔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모두 연결해 증권사 또는 거래소가 투자자의 잔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매도주문 발생 시 동 잔고와 매도주문 수량을 비교해 매도주문 처리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워낙 복잡한 시스템이라 오류가 발생해 시스템이 멈출 위험성도 있고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해외를 포함해 각기 다른 플랫폼들의 협업이 필요한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과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의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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