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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콜옵션 포기로 신뢰 잃은 SK…후폭풍 어디까지 번지나

사실상 ‘손절’… 드래그앤콜 공식 무너져
기업가치 절반·3년 연속 적자 등 SK 책임론 확대
주요 LP 신뢰 잃어…SK 재무부담 확대 우려

SK그룹이 11번가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에 직면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송재민 기자] 투자자와의 암묵적 약속을 어긴 결과가 추후 재무적투자자(FI)들이 SK그룹에 투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그룹은 사모 자금 의존도가 높아 이번 사건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402340)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11번가 FI 지분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콜옵션은 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로, 이를 포기했다는 것은 SK스퀘어가 FI 지분을 재매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로써 FI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권)을 써서 SK스퀘어의 지분을 포함한 11번가 주식 전체를 강제 매각할 수 있게 된다. 

기업과 투자사 간 계약에서 드래그앤콜(Drag and call) 구조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FI가 일정 기간 후 지분을 매각할 때 드래그얼롱을 부여하되 대주주에게는 콜옵션 권리를 주는 조항을 말한다. 강제성은 없지만 시장에선 암묵적으로 기업이 경영권과 임직원을 포기해 FI가 드래그얼롱을 행사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룰’이 깨지자 SK그룹의 평판 리스크가 부각된 셈이다.

당초 SK스퀘어는 국민연금·새마을금고·사모펀드(PEF)운용사 H&Q코리아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5년 내 상장을 약속했지만 상장 기한이었던 올해 9월을 넘기고 말았다. 5년 전 약 2조7000억원이었던 11번가의 기업가치는 현재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내는 등 실적도 악화했다. 이에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던 SK그룹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FI는 SK스퀘어가 포기한 지분을 포함해 11번가 매각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원매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스퀘어가 큐텐에 11번가를 매각하려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책정된 기업가치가 이미 노출된 상황이다. 기존 기업공개(IPO) 약정 기한을 연장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실적이 언제 반등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5년간 기다린 투자 수익을 확신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또다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SK가 사모 자금 시장 최대 출자자(LP)인 국민연금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단 점이다. SK그룹은 이번 결정으로 11번가에 대한 추가 출자 부담을 줄였지만 향후 경영활동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어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11번가에 직·간접적으로 약 3800억원을 투자했으나 원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SK그룹 계열사 중 상당수는 PEF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왔다. 11번가를 포함해 SK온, SK E&S, SK에코플랜트, SK팜테코 등 10개 기업을 합하면 최근 5년 내에만 9조원이 넘는 투자금이 PEF로부터 SK로 모였다. 이들 PEF의 ‘자금줄’인 LP들의 신뢰를 잃게 되면 추후 유동성 문제가 발생해 SK의 재무부담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시장에선 이번 SK스퀘어의 결정을 계기로 앞으로 드래그앤콜 조항을 넣어 구조를 짜는 투자 형태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현재 저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유치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계약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SK스퀘어 입장에서는 11번가에 대한 추가적인 현금 출자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셈”이라며 “하지만 앞으로 SK는 드래그앤콜 조항으로 투자를 받을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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