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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 시문(詩文)에 ‘핫’한 풍광 품고…밀양 영남루, 다시 ‘국보’로 [E-트래블]

문체부 지역 문화 명소·콘텐츠·명인 등 ‘로컬100’으로 선정

60년 만에 국보로 재승격한 밀양 영남루. [사진 강석봉 기자]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밀양시·코레일관광개발·지역문화진흥원과 함께 ‘로컬100 기차여행-밀양편’을 출시하고, ‘로컬100’이 있는 지역을 방문하는 캠페인 ‘로컬100 보러 로컬로 가요(이하 로컬로)’를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21~22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로컬로’ 첫 참가자로서 ‘로컬100’으로 선정된 ‘밀양아리랑대축제’와 ‘통영국제음악제’가 있는 밀양과 통영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문체부는 지역의 문화명소·콘텐츠·명인 등을 ‘로컬100’으로 선정했다. 

밀양 영남루 “내가 국보다”

롤러코스터는 에버랜드에만 있지 않다. 이 뜬금포는 밀양 영남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밀양 영남루는 60년 만에 국보로 재승격했다. 국보에서 보물로 강등됐다가 다시 국보가 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국보와 보물의 격을 잘라 말하기는 힘들다. 유형문화재 중에서도 역사적·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것을 보물이라 한다. 이 중에서도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가치가 크고 희소성 면에서 그 유례가 드문 것을 국보로 지정한다. 보물 중의 보물이 국보인 셈이다.

영남루는 일제 강점기인 193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해방 후인 1955년 국보가 됐다. 이후 1962년 1월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를 보물로 재평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것이 2023년 12월28일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됐다.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한 이유는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조형미와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남루를 이르는 수식어는 차고 넘친다. ‘진주 촉석루’와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누각이기도 하다. 더불어 중국(명나라) 여행서 ‘삼재도회’에는 조선의 누각으로 상운정(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영남루를 ‘콕’ 집어 소개하고 있다. 

영남루는 신라 35대 경덕왕(742년~765년) 때 신라 5대 명사 중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으로 세워졌다. 화재, 전쟁으로 몇 차례 소실됐다가, 1844년 밀양부사 이인재가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불린다.

영남루와 우리나라 일반 누각과의 차이는 보조 누각의 존재 여부다. 일반적인 누각은 본루만 있는 것에 비해서, 영남루는 보조 누각이 양쪽에 날개처럼 있어서 그 아름다움이 다른 어떤 누각보다도 뛰어나다. 영남루는 대루·능파각·침류각·여수각 등 4개의 누각으로 이뤄졌다.

‘힙’한 詩文, ‘핫’한 풍광

주변 경관과의 조화도 뛰어나다. 영남루는 밀양강이 한눈에 보이는 벼랑 위에 서 있다. 기둥마다 조각된 화려한 단층과 문양, 퇴계 이황과 목은 이색 등 옛 문인들의 시판(詩板, 시를 새긴 현판)과 현판(懸板, 절·누각·사당 등의 문 위 처마에 글씨 등을 새겨 걸어 놓은 나무판)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날부터 수많은 명사가 이곳을 찾았다. 조선 선조 때 영남루에 걸린 시판 등이 300여 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당대 영남루가 ‘핫플’이었던 셈이다. 현재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삼우당 문익점 등이 쓴 12개의 시판과 현판이 남아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843년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중석(당시 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썼다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이다. 당대 최고의 명필만이 쓸 수 있다던 현판을 이들 형제가 썼다니, 서예 신동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글씨는 여전히 영남루 중앙 대들보를 지키고 있다. 이를 보면 당시 아이들이 빗자루만한 붓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지난해 12월 21~22일 유인촌(왼쪽부터 네 번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로컬로’ 첫 참가자로서 ‘로컬100’으로 선정된 ‘밀양아리랑대축제’와 ‘통영국제음악제’가 있는 밀양과 통영 현장을 직접 찾았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영남루 시판이 담은 ‘수묵’ 몽환

영남루 시판은 지역 풍광이 세월 잊어 이어지고 있음을 웅변한다. 시판 중 ‘영남루’(하연, 1827년)엔 “영남루는 낙동강 동쪽 하늘에 있어/왕명 받기 전부터 명승지라 들었네/발 걷으면 달 오르고 바람이 들며/난간에 기대면 솔개 날고 물고기 뛴다/한 시내는 일천 뙈기들에 굽이치고/두 골짜기는 일만 글의 숲을 나누었구나/한스럽다 강하의 침석을 깔지 못하니/어찌 홀로 서늘한 곳에 자리 펼치리”란 글이 빼곡하다. 또 다른 ‘영남루’(이원, 1844년)는 “우뚝한 누각 영남 하늘에 높이 올려놓아서/십 리의 빼어난 경치 눈앞에 다 보이네/고요한 낮 여울 소리 베개 버리에 이어지고/해 비끼자 솔 그림자 뜰 가에 떨어진다/농부의 바쁜 봄 일 마을마다 비 내리고/들 객점엔 아침밥 짓느라 곳곳이 연기로다/지난날 선군께서 이곳을 지나셨는데/부끄럽다 소자가 다시 잔치 여는 것이”라 노래한다.

옛사람의 눈이나 오늘 탐방객의 눈이나 절경을 바라보는 감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의 모습에 이들의 감상을 습자지에 새겨 올리면, 바람에 흔들리는 굴뚝 연기며 밀양강 물줄기를 타고 오르는 물고기를 마주할 수 있을듯 하다.

밀양 정신 담긴 밀양향교

밀양향교(예림서원)는 이곳 출신으로 성리학적 정치 질서를 확립한 사림의 영수 ‘정필재’ 김종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이다. 대세 학자도 말년 운 안 좋은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초나라 항우가 의제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빗대 적은 조의제문으로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

이 가슴 아픈 사연은 밀양 사람들에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오늘날 이 한(恨)스러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예림서원에서는 ‘선비풍류’라는 문화 공연이 곧잘 열린다. 새터가을굿놀이, 여성 무용수의 고운 자태가 번뜩이는 밀양검무, 정필재아리랑과 아리랑동동 등이 그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영수 김종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밀양향교에서 문화 공연이 열렸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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