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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치료제는 어떻게 ‘비만 해결책’이 됐나

[비만 정복, 새 물결 인다]①
일상 생활 바꿀 획기적 발명될 ‘비만 치료제’
‘비만이 임자를 만났다’…향후 전망도 밝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네이처’와 함께 21세기 과학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저널이다. 이 저널은 물리학·생물학·화학·우주과학 등 과학 전 분야의 논문을 매주 다룬다. 사이언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위대한 연구도 많다. 이른바 ‘아인슈타인 링’으로 불리는 중력 렌즈 연구와 허블의 나선형 은하 연구, 토마스 헌트 모건의 초파리 유전자 연구, 달 탐사를 위한 아폴로 계획과 관련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연구는 우리의 삶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나선형 은하·중력 렌즈 연구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일반인들은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만 치료제’는 다르다.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어 기대감이 크다. 비만 치료제를 몇 달간 투여했을 때 체중의 10~15%가 줄어드는 등 ‘다이어트’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이언스도 2023년을 뒤흔든 과학 성과의 하나로 비만 치료제를 꼽았다. 또한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도 비만 치료제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였다. 행사에서는 비만 치료제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기술에 대한 여러 논의와 투자 유치 등이 이어졌다.

비만 치료제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의 치료제다. GLP-1은 글루카곤과 유사하게 작용하는 펩타이드 호르몬을 말한다. 글루카곤은 혈액 속의 포도당 수치(혈당)를 높이고, 지방을 분해해 포도당의 생성 속도를 조절한다.

반대 역할을 맡은 것은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으로, 췌장에서 분비된다. 그래서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의 분비는 억제하면 혈당을 낮출 수 있다. 이런 이유로 GLP-1 계열의 약물은 애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다. 당뇨병은 혈당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가 지속되는 질환이다.

과학자들이 GLP-1 계열의 약물을 당뇨병 치료제가 아닌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 약물의 식욕 감퇴 효과를 확인한 이후부터다.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나선 과학자들은 1990년대 '생쥐 실험'에서 GLP-1이 포만감을 높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후 GLP-1을 모방한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A)가 나왔고 이 물질은 2000년대 들어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석권한 덴마크 다국적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도 GLP-1 RA이다. 중요한 것은 노보 노디스크가 삭센다를 연구하며 이 약물을 투여한 환자들의 체중이 크게 줄어든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삭센다의 체중 감량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노보 노디스크는 임상에 참여한 환자에게 삭센다를 56주간 투여했는데, 이들 중 92%는 체중이 줄었다. 사실상 삭센다를 투여한 환자 대다수가 다이어트 효과를 봤다.

가짜약(위약)을 투여한 환자들과 비교해도 삭센다를 투여한 환자들의 체중은 크게 줄었다. 삭센다를 투여하고 체중이 5% 이상 줄어든 환자의 비율도 63%에 달했다. 체중을 10% 넘게 줄인 환자의 비율은 33%였다. 비만 환자를 치료할 때는 통상 6개월 동안 체중을 5~10% 줄이는 것이 목표다. 삭센다를 투여하면 운동이나 별다른 행동 교정 없이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는 셈이다.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 [사진 AP=연합뉴스]

당뇨병 치료제에서 비만 치료제로

노보 노디스크는 이런 임상 결과를 확인하고서 삭센다를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GLP-1 계열의 약물을 비만 치료제로 허가한 것은 삭센다가 처음이다. 삭센다가 허가된 것은 2021년이지만, 이미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를 눈여겨본 비만 환자들은 삭센다가 비만 치료제로 허가되기 전 10여 년 동안 허가 외 목적(오프 라벨·Off label)으로 삭센다를 사용했다.

노보 노디스크는 그동안 삭센다의 부작용을 개선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를 새롭게 개발했다. 위고비는 삭센다와 같은 GLP-1 RA이지만, 우리 몸에서 더 느리게 분해돼 일주일에 한 번만 투약하면 된다. 매일 맞아야 하는 삭센다보다 비용과 편의성 측면에서 뛰어나다. 위고비는 삭센다보다 체중 감량 효과도 좋다. 위고비를 68주간 투약한 환자는 체중이 평균 15% 정도 줄어들었다.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는 비만 환자가 더 안전하게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후속 임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식욕억제제로 쓰인 기존의 ‘다이어트 약’보다 밝혀진 부작용이 적어서다. 앞서 암페타민과 펜터민 등 향정신성 약물도 체중 감량에 쓰이며 여러 문제를 낳았다. 이런 약물은 뇌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신호를 조작하는데,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고 식욕을 억누른다.

이때 중추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환각과 환청 등에 시달릴 수 있다. 체중 감량에 사용할 때도 짧은 기간 복용해야 하며, 오래 사용한다면 중독될 수 있다. 사이언스가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를 지난 한해를 들썩인 과학 성과로 꼽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이언스는 지난 한해를 빛낸 과학 성과로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를 소개하는 ‘비만이 임자를 만났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저널은 “비만 환자는 체중 감량에 대한 사회의 압력과 ‘비만인 사람은 의지력이 약하다’라는 믿음과 싸워야 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비만은 전 세계적으로 질병으로 다뤄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비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하지만 비만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이를 질병으로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사이언스는 “우리 역사는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약물을 찾는 데 실패해왔다”면서도 “(GLP-1 계열의 약물은)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GLP-1 계열의 비만 치료제의 전망이 밝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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