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무죄’로 완화된 ‘사법 리스크’…검찰 항소와 ‘뉴삼성’에 쏠린 눈
이재용 ‘부당 합병’ 의혹 혐의, 피고인 13명 모두 1심서 ‘무죄 선고’
3년 5개월간 법정 공방…리스크 완화에 ‘삼성 대형 투자’ 기대감 솔솔
검찰 항소 가능성에 재계 촉각…이 회장 변호인 측 “아직 말할 때 아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둘러싸고 오랜 시간 제기된 ‘사법 리스크’가 완화됐다.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제기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에 나선다면 법정 다툼이 지속되겠지만, 일단 무죄 선고가 나오면서 삼성 측에 유리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2심이 진행되더라도 주요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가 정리된 상태라 전개 속도는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1심 무죄 선고는 검찰 기소 후 약 3년 5개월 만에 이뤄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이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합병은 시장에서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전망하던 시나리오 중 하나로 미전실이 지배구조 재편을 위해 검토하던 다른 여러 방안 중 하나”라며 “합병 추진 결과 관련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 이익 의사가 도외시된 바 없고 성장 정책 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영진과 미전실 협의를 통해 이 사건 합병을 실질적으로 검토해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합리적인 사업적 목적이 존재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고 하더라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무죄 선고 직후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항소 여부에 대해선 “지금으로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공판 출석 때와 마찬가지로 무죄 선고 후에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다만 재판장이 판결문을 50분간 낭독 후 마지막에 “주문,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고 밝힌 뒤에야 줄곧 유지하던 무표정을 풀고 옅은 미소를 띠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이 회장을 둘러싸고 줄곧 제기됐던 경영권 승계의 부당성은 일단 입증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승계작업 자체는 인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진행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에 위법성이 있어 이 과정에 획득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전실이 계획한 이른바 ‘프로젝트-G(거버넌스)’ 역시 경영권 승계 문건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그간 논란이 된 프로젝트-G 문건에 대해서 “기업 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효율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이기도 하다”며 “이 문건은 미전실 자금 파트에서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종합 검토한 보고서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2021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복역하다 그해 8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8월 사면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치권에 86억원 규모의 뇌물을 주며 부정한 거래를 했다는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반면 이날 무죄 선고 사건은 승계 작업 자체가 불법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점을 다뤘다.
검찰은 이 회장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썼다고 봤다.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을 실행,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증대 기회 상실의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는 점도 혐의의 중심에 뒀다. 또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제기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을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에 대해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닌 점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계에선 이번 무죄 선고에 따라 이 회장의 운신 폭이 넓어질 것이란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이재용식 뉴삼성’ 구축에 속도가 붙으리란 견해다. 특히 이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대형 인수합병(M&A) 추진에 대한 기대가 높다. 삼성은 2017년 약 9조원을 투자해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뒤로 이렇다 할 대형 M&A를 추진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서도 삼성이 M&A에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는 배경으로 늘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꼽혀왔다. 이에 대한 부담이 완화된 만큼 대규모 투자 결정 등의 소식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2021년 8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초대형 투자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이목은 검찰의 항소 여부에 쏠리는 모양새다. 검찰이 일주일 내 항소를 결정하면 이재용 회장은 앞으로도 재판정에 계속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심 선고가 있기까지 약 3년 5개월간 106회 공판이 열렸다. 이 회장은 이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다. 대통령 해외순방 등 주요 일정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재판에 참석한 셈이다. 재판 일정 탓에 조부인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의 36주기 추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검찰 수사 기록만 19만쪽에 달한다. 서초구에 발이 묶인 채 삼성의 글로벌 경영을 이끌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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