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이재용, 대형 M&A 족쇄 풀렸다…하만 ‘영업익 1조’ 의미 [수(數)크릿]
‘오너 안목’ 증명한 하만 성장세…부침 겪다 꽃피운 전장
M&A로 특색 드러냈던 JY, 사법 리스크로 7년간 경영 차질
‘19개 혐의 모두 무죄’ 이재용 행보에 쏠린 눈…“하만이 힌트”
수는 현상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단어입니다. 유행·변화·상태·특성 등 다소 모호한 개념에도 숫자가 붙으면 명확해지곤 하죠. 의사결정권자들이 수치를 자주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업 역시 성과·전략 따위를 수의 단위로 얘기합니다. 수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고도화된 정보통신기술(ICT)을 만나 높은 정밀성은 물론 다양성도 갖춰가고 있습니다. 최근 나온 다양한 수치 중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꼽아 연재합니다. 수(數)에 감춰진 비밀(Secret), 매주 수요일 오전 뵙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영업이익 1조1700억원.
상징적인 숫자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가 2016년 11월 인수한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의 2023년 성적표인데요. 하만의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기간 매출은 14조39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8.1%를 써냈고요.
하만이 사업 성장을 일궈내자, 시장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인물로 향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하만의 인수는 사실상 이 회장의 결단으로 진행된 ‘역대급 빅딜’이었기 때문이죠. 하만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자, 재계에선 ‘이 회장의 탁월한 안목이 증명된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 5일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하만의 이번 성적표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 회장의 경영에 오랜 시간 걸림돌로 작용한 ‘사법 리스크’ 완화로 그가 그리는 ‘뉴 삼성’ 구상 역시 궤도에 오르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만 이후 멈췄던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 시계의 초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죠. 하만을 통해 사업 안목을 입증한 이 회장이 어느 분야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릴지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세부적으론 19개에 달하는데, 법원은 1심 선고 공판을 통해 이를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회장의 1심 무죄 선고는 검찰 기소 후 약 3년 5개월 만에 이뤄졌는데요. 이 기간 106회 공판이 열렸고, 이 회장은 이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습니다. 대통령 해외순방 등 주요 일정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재판에 참석한 셈이죠. 재계에선 이를 두고 “글로벌 경영 최전선에 있는 이 회장이 서초구에 발이 묶인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1심에서 모든 혐의가 무죄로 선고된 만큼 일단은 삼성에 유리한 형국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사법 족쇄’를 풀어낸 이 회장의 향후 행보에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래서 이 회장이 과거 인수 절차를 진두지휘했던 하만의 사례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는 접근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삼성의 품에서 사업 성장을 일군 하만의 이번 성적표가 현시점에서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9조원 쏟아붓고도 ‘아픈 손가락’
삼성전자가 하만을 점찍은 데엔 이 회장의 판단이 깔려있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당시 부회장)은 하만 인수 발표 한 달 전인 2016년 10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이사에 올랐습니다. 등기이사 선임 직전 하만 M&A 담판을 짓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을 정도로 공을 들였죠.
삼성전자는 2015년 12월 사내에 전담팀을 꾸리는 등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을 일찍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는데요. 하만은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은 물론 내비게이션·인포테인먼트(차량 내부의 정보전달장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기업이죠. 전문 음향 장비 역량도 지녀 스마트폰·가전 분야에서 시너지 창출 역시 기대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하만 인수 당시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 역량이 단숨에 세계 수준으로 높아졌단 평가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는 데 사용한 금액은 80억 달러,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9조3400억원에 달합니다. 삼성전자 창립 이래 가장 큰 M&A 사례죠. 국내 산업을 통틀어도 ‘역대급 규모’입니다. SK하이닉스가 2020년 인텔 낸드 사업부를 약 10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기록이 깨지긴 했지만, 하만 인수는 오랜 시간 ‘국내 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라고 불려 왔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사용했지만 전장 사업에 대한 성장 가능성은 당시에도 높게 평가됐습니다. 하만은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신의 한 수’란 평가를 받으며 삼성전자 품에 안기게 됩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상반기 하만의 자회사도 모두 종속기업으로 편입, 본격적인 시너지 창출에 나섭니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출발한 삼성전자 내 하만 사업은 시작부터 부침을 겪습니다. 삼성전자에 편입된 직후 되레 수익성이 악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2016년 하만의 매출은 약 8조원, 영업이익은 약 68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품에 안긴 후인 2017년 연간 매출은 7조1026억원, 영업이익은 574억원을 기록합니다. M&A에 따른 분기별 인수 대금이 영향을 미쳤다곤 하더라도 0.8%에 불과한 영업이익률은 시장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엔 한참 부족한 수치였습니다.
기업은 숫자로 말합니다. ‘아픈 손가락’이나 ‘미운 오리 새끼’란 수식어가 하만 앞에 붙은 이유입니다. 이 회장이 선택한 기업이라 삼성 안팎에서 에두른 단어로 표현되긴 했지만, 하만 인수를 뼈아픈 실책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습니다. ‘전장 사업은 사업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든지 ‘뛰어난 음향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란 식의 해명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힘이 실리지 않았죠.
더욱이 2020년 하만이 ‘최악의 해’를 보내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만은 2020년 ▲1분기 매출 2조1000억원, 영업손실 1900억원 ▲2분기 매출 1조5400억원, 영업손실 900억원을 써냈는데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곤 하더라도 2분기 연속 적자 행보는 이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연간 기준으론 555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영업이익률은 0.6%로 뚝 떨어졌습니다. 인수 직전 하만의 영업이익률이 8% 안팎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회장을 향한 의심의 시각도 일면 타당해 보였죠.
JY 행보에 쏠린 눈…대형 M&A 시사
‘아픈 손가락’이란 시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21년을 기점으로 합니다. 당시 6000억원에 육박한 영업이익을 올렸고, 영업이익률 역시 6.0%를 기록하며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는 ‘반도체 불황’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 의미가 큽니다. 하만은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의 17.8%를 담당했고, 매출의 5.5%를 책임질 정도로 핵심 사업 반열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의 전체 수익성이 악화할 때 버팀목 역할을 해 ‘든든한 막내의 효도’란 평가를 받았죠.
하만은 현재 ▲디지털 콕핏(디지털화한 자동화 운전 공간) ▲차량용 오디오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디지털 콕핏의 경우,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72.9%의 가동률(생산능력 대비 생산실적·생산능력 개수 8149, 실제 생산 개수 5944)을 나타낼 정도로 호황입니다.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창출도 본격화되는 모양새인데요. 양사는 지난 1월 열린 CES 2024에서 인수 후 처음으로 함께 개발한 전장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뒤로 삼성전자는 다양한 M&A를 추진하곤 했습니다. 하만 인수로 방점을 찍기 전에도 ▲2014년 8월 미국 사물인터넷(IoT) 개발사 ‘스마트싱스’ 인수 ▲2015년 3월 미국 사이니지 기업 에스코일렉트로닉스 인수 등이 있었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10개가 넘는 M&A 거래가 추진됐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M&A 소식은 하만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로 세계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다양한 신기술이 쏟아졌음에도 적극적인 M&A가 이뤄지지 않았죠. 대형 M&A를 결정권을 쥔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복역할 위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M&A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리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이 회장은 이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있던 2019년 10월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임기가 만료된 뒤로 현재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죠.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하면서도 등기이사 복귀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현재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 총수 중 유일한 미등기임원이기도 합니다. 이 회장이 이사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형 M&A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던 셈입니다.
실제로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2017년 2월 구속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354일간 수감 생활을 했고요. 이후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선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복역하다 그해 8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8월 사면됐습니다. 총 구속 기간만 565일에 달하죠. 국정농단으로 유죄를 받은 뒤 사면되면서 이 회장에 남은 사법 리스크는 ‘승계 작업’ 자체에 대한 불법성 여부였습니다. 최근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법 리스크가 대두되지 않았던 2016년까지 이 회장이 보여준 경영 방식을 고려하면, 이번 1심 선고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형 M&A 추진을 자연스런 수순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2021년 8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초대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하만의 사업 안착으로 결국 안목을 증명해 낸 이 회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이 회장은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다음 날 이런 대외 시각을 증명하듯 중동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설 연휴에 맞춰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고 임직원을 격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법 족쇄를 끊어낸 이 회장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 조만간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도 지난 1월 CES 2024 간담회에서 “삼성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대형 M&A는 착실히 하고 있어 올해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회장뿐 아니라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 모두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인식한단 방증입니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23년 3분기 기준 93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대형 M&A를 추진하기 위한 실탄도 넉넉하고 상황도 마련된 셈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영업이익 1조1700억원.
상징적인 숫자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가 2016년 11월 인수한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의 2023년 성적표인데요. 하만의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기간 매출은 14조39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8.1%를 써냈고요.
하만이 사업 성장을 일궈내자, 시장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인물로 향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하만의 인수는 사실상 이 회장의 결단으로 진행된 ‘역대급 빅딜’이었기 때문이죠. 하만의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자, 재계에선 ‘이 회장의 탁월한 안목이 증명된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 5일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하만의 이번 성적표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 회장의 경영에 오랜 시간 걸림돌로 작용한 ‘사법 리스크’ 완화로 그가 그리는 ‘뉴 삼성’ 구상 역시 궤도에 오르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만 이후 멈췄던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 시계의 초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죠. 하만을 통해 사업 안목을 입증한 이 회장이 어느 분야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릴지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세부적으론 19개에 달하는데, 법원은 1심 선고 공판을 통해 이를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회장의 1심 무죄 선고는 검찰 기소 후 약 3년 5개월 만에 이뤄졌는데요. 이 기간 106회 공판이 열렸고, 이 회장은 이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습니다. 대통령 해외순방 등 주요 일정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재판에 참석한 셈이죠. 재계에선 이를 두고 “글로벌 경영 최전선에 있는 이 회장이 서초구에 발이 묶인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항소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1심에서 모든 혐의가 무죄로 선고된 만큼 일단은 삼성에 유리한 형국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사법 족쇄’를 풀어낸 이 회장의 향후 행보에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래서 이 회장이 과거 인수 절차를 진두지휘했던 하만의 사례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는 접근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삼성의 품에서 사업 성장을 일군 하만의 이번 성적표가 현시점에서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9조원 쏟아붓고도 ‘아픈 손가락’
삼성전자가 하만을 점찍은 데엔 이 회장의 판단이 깔려있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당시 부회장)은 하만 인수 발표 한 달 전인 2016년 10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이사에 올랐습니다. 등기이사 선임 직전 하만 M&A 담판을 짓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을 정도로 공을 들였죠.
삼성전자는 2015년 12월 사내에 전담팀을 꾸리는 등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을 일찍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는데요. 하만은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은 물론 내비게이션·인포테인먼트(차량 내부의 정보전달장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기업이죠. 전문 음향 장비 역량도 지녀 스마트폰·가전 분야에서 시너지 창출 역시 기대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하만 인수 당시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 역량이 단숨에 세계 수준으로 높아졌단 평가가 나왔습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는 데 사용한 금액은 80억 달러,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9조3400억원에 달합니다. 삼성전자 창립 이래 가장 큰 M&A 사례죠. 국내 산업을 통틀어도 ‘역대급 규모’입니다. SK하이닉스가 2020년 인텔 낸드 사업부를 약 10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기록이 깨지긴 했지만, 하만 인수는 오랜 시간 ‘국내 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라고 불려 왔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사용했지만 전장 사업에 대한 성장 가능성은 당시에도 높게 평가됐습니다. 하만은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신의 한 수’란 평가를 받으며 삼성전자 품에 안기게 됩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상반기 하만의 자회사도 모두 종속기업으로 편입, 본격적인 시너지 창출에 나섭니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출발한 삼성전자 내 하만 사업은 시작부터 부침을 겪습니다. 삼성전자에 편입된 직후 되레 수익성이 악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2016년 하만의 매출은 약 8조원, 영업이익은 약 6800억원 수준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품에 안긴 후인 2017년 연간 매출은 7조1026억원, 영업이익은 574억원을 기록합니다. M&A에 따른 분기별 인수 대금이 영향을 미쳤다곤 하더라도 0.8%에 불과한 영업이익률은 시장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엔 한참 부족한 수치였습니다.
기업은 숫자로 말합니다. ‘아픈 손가락’이나 ‘미운 오리 새끼’란 수식어가 하만 앞에 붙은 이유입니다. 이 회장이 선택한 기업이라 삼성 안팎에서 에두른 단어로 표현되긴 했지만, 하만 인수를 뼈아픈 실책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습니다. ‘전장 사업은 사업 성장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든지 ‘뛰어난 음향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란 식의 해명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기에 힘이 실리지 않았죠.
더욱이 2020년 하만이 ‘최악의 해’를 보내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하만은 2020년 ▲1분기 매출 2조1000억원, 영업손실 1900억원 ▲2분기 매출 1조5400억원, 영업손실 900억원을 써냈는데요.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았다곤 하더라도 2분기 연속 적자 행보는 이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연간 기준으론 555억원의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영업이익률은 0.6%로 뚝 떨어졌습니다. 인수 직전 하만의 영업이익률이 8% 안팎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회장을 향한 의심의 시각도 일면 타당해 보였죠.
JY 행보에 쏠린 눈…대형 M&A 시사
‘아픈 손가락’이란 시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21년을 기점으로 합니다. 당시 6000억원에 육박한 영업이익을 올렸고, 영업이익률 역시 6.0%를 기록하며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는 ‘반도체 불황’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 의미가 큽니다. 하만은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의 17.8%를 담당했고, 매출의 5.5%를 책임질 정도로 핵심 사업 반열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의 전체 수익성이 악화할 때 버팀목 역할을 해 ‘든든한 막내의 효도’란 평가를 받았죠.
하만은 현재 ▲디지털 콕핏(디지털화한 자동화 운전 공간) ▲차량용 오디오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디지털 콕핏의 경우,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72.9%의 가동률(생산능력 대비 생산실적·생산능력 개수 8149, 실제 생산 개수 5944)을 나타낼 정도로 호황입니다.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창출도 본격화되는 모양새인데요. 양사는 지난 1월 열린 CES 2024에서 인수 후 처음으로 함께 개발한 전장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뒤로 삼성전자는 다양한 M&A를 추진하곤 했습니다. 하만 인수로 방점을 찍기 전에도 ▲2014년 8월 미국 사물인터넷(IoT) 개발사 ‘스마트싱스’ 인수 ▲2015년 3월 미국 사이니지 기업 에스코일렉트로닉스 인수 등이 있었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10개가 넘는 M&A 거래가 추진됐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M&A 소식은 하만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로 세계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다양한 신기술이 쏟아졌음에도 적극적인 M&A가 이뤄지지 않았죠. 대형 M&A를 결정권을 쥔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복역할 위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M&A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리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이 회장은 이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있던 2019년 10월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습니다. 임기가 만료된 뒤로 현재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죠.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하면서도 등기이사 복귀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현재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 총수 중 유일한 미등기임원이기도 합니다. 이 회장이 이사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형 M&A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던 셈입니다.
실제로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2017년 2월 구속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354일간 수감 생활을 했고요. 이후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선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복역하다 그해 8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8월 사면됐습니다. 총 구속 기간만 565일에 달하죠. 국정농단으로 유죄를 받은 뒤 사면되면서 이 회장에 남은 사법 리스크는 ‘승계 작업’ 자체에 대한 불법성 여부였습니다. 최근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법 리스크가 대두되지 않았던 2016년까지 이 회장이 보여준 경영 방식을 고려하면, 이번 1심 선고에 따라 삼성전자의 대형 M&A 추진을 자연스런 수순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2021년 8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초대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하만의 사업 안착으로 결국 안목을 증명해 낸 이 회장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이 회장은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다음 날 이런 대외 시각을 증명하듯 중동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설 연휴에 맞춰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고 임직원을 격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법 족쇄를 끊어낸 이 회장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요?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 조만간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도 지난 1월 CES 2024 간담회에서 “삼성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대형 M&A는 착실히 하고 있어 올해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회장뿐 아니라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 모두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인식한단 방증입니다.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23년 3분기 기준 93조1000억원에 달합니다. 대형 M&A를 추진하기 위한 실탄도 넉넉하고 상황도 마련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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