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그늘 보였던 CES 2024…성과·실적 보여줘야[순화동필]
미국·중국에 이어 한국기업 참여 부스 많아
CES 참여보다 계약 등 실질 성과 거둬야 할 때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올해도 어김없이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는 흥행했고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CES로 빛났다. 150여 개국에서 온 4100개 넘는 기업들이 자사의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뽐내는 경연장이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한 해 벽두인 1월에 열린다는 시기와 장소의 특성이 합해져 CES는 기업·언론·학계·소비자들로부터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전시회로 각인됐다.
처음 가전제품 전시회로 시작했던 행사가 이제는 모바일·전기차·자율주행·로봇·드론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성과가 총집합의 장이 됐다. CES는 ICT 업계의 트렌드를 확인하는 행사이자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이 세계 최대 전시회에 참가한 한국기업들의 성장과 성취가 놀랍다. 미국(1148개), 중국(1104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한국기업(772개)이 부스를 차렸다. 참가 업체 수만 많은 게 아니라 상도 많이 받았다.
한국 스타트업 512곳 CES에 참여…미국과 일본 제쳐
주최 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을 선정해 주는 ‘혁신상’을 받은 국내기업이 134개로 전체의 42.8%에 달했다. 분야별로 가장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에 주는 ‘최고혁신상’은 총 27개 중 8개를 한국기업이 차지하면서 7개를 차지한 미국을 제치고 한국이 가장 많은 최고혁신상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더 놀라운 것은 국내 스타트업의 점령에 가까운 CES 진출이다. 일본이 44개, 미국이 250개 사를 보냈는데 한국 스타트업은 자그마치 512곳이 참여했다.
외형적 수치만 보면 한국은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첨단 산업의 총아이자 여타의 기술 대국들을 따돌리고 세계 1등이라 자부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부풀어 오른 성과를 오롯이 즐기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매년 CES 현장을 방문하는 필자의 머릿속에 ‘외화내빈’ (外華內貧) 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CES 행사장이 아니라 코엑스, 킨텍스에 온 듯하다는 후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달이 차올라 보름이 되었고 이제 그믐을 향해 줄어들 일만 남은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들이 부스를 차린 유레카 파크에 한국 기업들의 부스가 가장 큰 규모와 비중으로 자리 잡았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곳들이 적지 않았다. 좋은 기술은 설명이 명쾌한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모호한 기술과 기업들도 많았다. 정말 진행이 되는 기술인지, 사업성을 확보했는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 머문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기업들이 자리만 잡고 있는 곳들이 많았다.
실속은 없고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느낌을 더 확고히 하게 해 준 것은 수많은 지자체·공공기관·대학교 전시 부스였다. 다른 나라들이 치열한 국내 선발전을 거쳐 CES에 나오는 데 반해 한국은 자치단체별로 참여하다 보니 자연히 한국인들이 전시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기술과 서비스를 보여주기보다 특정 지자체나 기관의 홍보 부스의 운영이 더 눈에 띄는 등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의 참가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각 자치단체장이 직접 행사장을 방문하다 보니 불필요한 홍보 행사, 의전이 덕지덕지 붙어 정작 알토란 같은 기업들의 시장 개척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 많은 시도 기초자치 단체의 참가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CES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단순히 참여 기업 수가 그 바로미터는 아니다. 단순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스펙 쌓기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다.
자기 지역 기업들이 더 넓은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CES 참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지방정부와 단체장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행사장을 찾는 것도 일정 부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도가 심하다고 느끼게 한다.
‘전시를 위한 전시’에 치중하지 않아야
특히 각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수상 성과나 참여기업 수를 성과의 지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전시를 위한 전시’에 치중되지 않고 의미 있는 상담과 계약,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의 장으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모비스 등 일부 대기업들이 CES 행사를 단순히 기술과 제품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외 기업, 투자자와의 만남의 장으로 적극 활용해 새로운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는 보도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내실 있게 하는 이러한 모습들이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CES에 부스 차리고 홍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CES가 실질적인 계약 체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 언론도 단순히 한국 기업이 많이 참가했다, 상을 몇 개 받았다는 외형을 강조하는 보도에 머물지 않고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CES를 발판으로 도약하고 성장하는 스토리를 조명해야 한다.
언론은 현장의 열기만을 전할 것이 아니라 애프터 서비스를 하면 좋을 것 같다. CES 참가 기업들을 찾아서 6개월에서 1년 주기로 어떤 변화와 어떤 성장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추적 취재 및 보도하면 어떨까. 지자체 차원에서 CES 참가 기업의 애프터 서비스 센터 같은 실질적 성과를 확인하고 지원해 주고 나아가 국가적으로 CES 후에 ‘디지털 전시관’과 이를 토대로 한 사업추진 정책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등 다음 단계의 업그레이드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는 결실의 시대다. 결실을 보려면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우후죽순 CES에 홍보부스를 차리고 미국까지 가서 한국 신문에 시장님, 지사님 홍보하는 기사 한 줄 내기 위해 공무원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만두자.
CES를 넘어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꿈꿀 때다. 또 하나의 한국의 성공 신화를 기록하고, 불필요한 거품은 걷어내고 알짜배기 기업들이 CES 현장에서 새로운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판을 새로 짜보자.
CES가 1조원짜리 ‘유니콘’ 기업들의 요람이 되는 날을 고대한다.
필자는_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 이래 40여 년간 인사 업무를 맡은 전문가다. 2014년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임명되어 국가의 인사 혁신을 주도했다. 현재 성균관대 특임교수와 사람들연구소 이사장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제언 및 연구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일자리연대, 연금연구회 등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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