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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연인의 달빛 데이트[아트 갤러리]

모용수, ‘사랑합니다’, 캔버스에 오일, 72.7x53cm, 2016. 추정가 800만원
[정은경 EK아트갤러리 대표] 호랑이 같기도 하고 고양이 같기도 한 커플이 다정하게 우산을 나눠 쓰며 달빛 데이트를 즐기고 있습니다. 꽃잎들이 살포시 내려앉은 양산 아래 모퉁이에는 관객을 마주보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사랑의 선물로 그녀에게 꽃 한송이를 건넨 후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기분 좋게 올라온 그들의 꼬리가 익살스럽게 보입니다. 

캔버스에 오일이지만 석채나 자수정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보태고 있어 빨간색과 초록색의 강렬한 보색대비가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습니다. 여느 유화와는 달리 그림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지만 물감의 층을 살짝 걷어내고 석채가루나 자수정 파우더 등을 뿌려 깊이감과 재질감이 도드라집니다. 나뭇잎, 나무의 껍질, 우산, 달, 그림 등등 모든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모용수 작가의 ‘사랑합니다’는 감상자의 관점에 따라 달빛 데이트로도 햇빛 데이트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그림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1793년 ,종이에 수묵채색)이 오버랩됩니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달빛 데이트에는 섹시한 초승달과 에로틱한 에너지로 가득 찬 선비와 기생이 연인으로 등장하지만 모용수 작가의 달빛 데이트에는 에로티시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길쭉하기만 한 나무와 둥근 달, 뜨겁지는 않지만 포근하게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의인화된 호랑이 연인이 등장합니다.

한국미술사에서 꽉 찬 보름달은 만삭의 여인을 상징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사랑한다고 대놓고 고백하고 있는 모용수 작가의 달빛 데이트는 비밀스럽거나 금지된 사랑(신윤복의 월하정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랑을 공표하는 떳떳하고 아름다운 사랑, 부부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미술계에서 호랑이 작가로 명성을 얻은 작가의 일관적인 주제는 사랑이며 ‘사랑합니다’ 연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다정다감해 보이는 한 쌍의 호랑이 커플이며 몽환적이거나 목가적인 배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산책하거나 포옹하고 있습니다.

모용수 작가의 ‘사랑합니다’ 연작은 민화의 현대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민화와 민담에서 호랑이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고 꾀 많은 약한 동물에게 잘도 속아 넘어가는 어수룩한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가 보여주는 사랑은 좀 부족하고 모자랄지라도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현실의 부부애, 가족애를 보여줍니다. 그가 그려내는 사랑이 완결무결하지도 강렬하지도 않기 때문에 오히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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