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파업’의 해결법, ‘시민 해킹’에서 찾아야 할 때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프랑스 국영철도 파업 사태 공유 스타트업이 해결
시민 해킹, 사회의 새로운 변화 끌어내기도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의료 파업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료계와 정부, 두 집단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애꿎게도 국민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
이번 의료 파업 사태를 바라보면 머릿속에 ‘시민 해킹’(civic hacking)이라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해법이 떠오른다. 시민 해킹은 시민의 자발적 아이디어와 창의적 방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려는 운동을 지칭한다. 운동의 주체인 ‘시민 해커’(civic hacker)들은 대중에게 중요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 관심을 두지 않거나 적시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앞장서 풀어낸다.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코로나 맵’, 마스크 재고 현황을 알려주는 ‘마스크 맵’ 등은 시민 해킹의 공익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민들이 이해관계 기관보다 앞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한 사례로 꼽힌다.
과거 ‘프로 보노’(pro bono, 재능 기부) 활동의 하나로 간주했던 시민 해킹은 스타트업들이 뛰어들면서 의미 있는 사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거대 집단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활동할 수 있다. 공공 이익에 집중해 문제를 재빠르게 해결할 능력도 있다. 사용자에게서 높은 호응을 얻은 해법은 하나의 산업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는 애당초 경제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시작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공유 경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프랑스 국영철도 파업 해결사는 스타트업
시민운동의 역사가 긴 서구 선진국에서 시민 해킹은 사회 문제 해결을 넘어 사회 구조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프랑스 파업 사태가 하나의 예다.
2018년 프랑스 국영철도(SNCF)는 ‘철도 개혁’에 반발하여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는데, 그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거점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 열차(TGV)가 멈추었으니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불편함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었다. 국영철도의 파업은 프랑스 정부에 항상 부담이었고, 과거 파업의 승리자는 대부분 철도 노조였다.
하지만 2018년 국영철도 파업의 승자는 정부도 노조도 아닌 공유 경제 스타트업이다. 파업으로 교통수단이 멈춰버리자 시민은 대안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적극 이용했다. 도시 간 카풀(carpool)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의 한 스타트업은 유니콘으로 성장했고,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도 앱 스타트업들도 함께 발전했다.
2020년 파리 도시철도(RATP)가 파업을 단행했는데, 이때 진정한 승자 역시 소형 모빌리티 공유 스타트업들이다. 파업 시기 시민들은 공유 자전거·전동 킥보드 등을 적극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파업 협상 테이블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힘겨루기를 했던 노조·기업·정부의 역학 관계를 해체한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한 공유 경제 스타트업들이다. 이후 이들은 시장 경제의 중요한 집단으로 거듭났고 정부 지원·기업과의 협업·노조의 협조에 힘입어 관련 산업을 키워냈다.
프랑스 파업 사태의 해결 과정은 시민 해킹 스타트업이 사회적·재무적 과제를 충분히 달성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사회 문제의 해결이 관련 산업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시했다
시민 해킹 한국 사회 바꿀 수 있어
국내 창업 생태계도 조금씩 시민 해킹을 사업 모델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법률·세무·비자 등 전문 영역의 서비스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은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 집단이 독점했었던 정보가 공개되면서 정보의 투명성은 높아지고 소비자의 접근성은 낮아졌다. 이처럼 과거 오랫동안 변화를 거부했던 거대 집단의 이해관계는 점차 해체되고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영향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스타트업들은 시민 해킹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외교 이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시민 해킹 정신을 정체성으로 내세워 활동하기에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을 유지한다.
향후 시민 해킹 정신으로 시장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제의 해결과 함께 관련 산업 성장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관련 산업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까지 도달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는 여러 이유로 국내 법률·금융·의료 등의 영역에서 활약한 스타트업의 선례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번 의료 파업은 2000년 이후 다섯 번째라고 한다. 이번에는 시민 해커 스타트업이 해결사로 등극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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