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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없는 사회’ 가속화…부작용은 없을까[순화동필]

김충화 한국은행 발권정책부장 기고
현금없는 사회 전 세계적 현상
취약계층 금융소외 등 문제 발생
현금과 디지털 지급수단 공존 모색

현금사용행태 조사결과.

[김충화 한국은행 발권정책부장] 최근 한국은 상거래 시 동전이나 지폐를 사용하기보단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을 주로 사용하는 ‘현금없는 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韓 현금사용 비중 줄고…현금 거부 사례도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38.8%에서 2021년 21.6%로 하락했다. 반면 신용·체크카드 비중은 같은 기간중 37.4%에서 58.3%로 크게 증가했다. 또한 현금사용 비중이 하락하면서 소매업체를 중심으로 현금결제를 거부하는 사례도 빠르게 증가했다. 현금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비중이 2018년 0.5%에서 2021년 6.9%로 확대됐다.

이러한 현금없는 사회로의 진전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미국·스웨덴·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상거래 시 현금사용 비중이 하락하는 추세다. 현금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전 세계적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의 핀테크 업체 FIS에 따르면 주요 40개국의 현금사용액(POS 결제액 기준)은 2018년 11조6000억 달러에서 2022년 7조7000억 달러로 33.6% 감소했다. 전체 POS 결제액 중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동 기간중 27%에서 16%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현금없는 사회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는데 우선 기술 발전을 꼽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가지게 됐다. 인터넷 및 스마트폰의 보급과 핀테크 혁신 등으로 모바일 지급수단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다. 또한 금융시스템의 혁신이 현금없는 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 업무와는 별개로 인터넷 뱅킹·전자지갑·가상화폐 등과 같은 혁신적인 금융서비스의 등장은 현금사용 필요성을 줄이며 디지털 경제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자연재해·전쟁 시엔 ‘현금없는 사회’ 문제
현금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전자결제를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거래할 수 있으며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므로 도난이나 분실로 인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강화되어 자금세탁이나 탈세 등 각종 금융범죄 방지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현금없는 사회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며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현금없는 사회는 디지털 지급수단에 익숙하지 않거나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현금의존도가 높은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금융소외와 소비활동 제약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둘째, 자연재해·전쟁 등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거나 해킹과 같은 사이버공격 등으로 비현금지급수단 결제가 어려울 경우 대체 지급수단 부재로 경제활동이 제약될 수 있다.

셋째, 신용카드 등 비현금지급수단 결제를 위한 시스템(결제 단말기 등) 도입 및 유지에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함에 따라 영세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도 일부 존재한다. 이외에도 소수의 민간 지급결제업체에 의한 독·과점 등도 현금없는 사회의 폐해로 지적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카페에 붙어 있는 ‘현금 없는 매장’안내문. [사진 김윤주 기자]
정책보완·디지털 격차 해소 노력 필요 
최근 주요국들은 현금없는 사회로의 급속한 진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부작용을 예방하고자 국민의 현금 접근성 및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은 2021년에 지급서비스법을 제정해 예금규모 700억 크로나 이상인 대형 상업은행의 현금취급 업무를 의무화했다. 또한 덴마크·프랑스·스페인·미국 일부 지역 등은 취약계층의 소비행위 보장 등을 목적으로 소매점이 일정 조건에서 현금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국민의 현금접근성 유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ATM의 위치·운영시간·장애인 지원 여부 및 기능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인 ‘금융맵’ 서비스를 2021년 11월 개시했다. 이어 시중은행들의 점포폐쇄에 따른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2023년 5월부터 점포폐쇄 결정 전 이용 고객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렴토록 했다. 또한 점포폐쇄 시에는 고객이 대면창구와 유사한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공동점포·창구제휴 등 적절한 대체점포를 제공할 것을 규정했다.

이처럼 국민의 현금사용 불편 문제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는 정책 대응도 중요하지만 지급수단 측면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고령층·장애인·저소득층 등의 취약계층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이 낮거나 이용방법을 익히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지급수단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가운데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간소화, 음성 안내 기능의 제공 등 디지털 지급서비스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노력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현금없는 사회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지만 현금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중요한 요소이며 가까운 장래에 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물리적(physical) 현금을 구 시대의 잔재로 치부하기보다는 디지털(digital) 지급수단과의 조화로운 공존(phygital)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가지 결제방식의 공존은 ▲다양성과 선택권 보장 ▲결제시스템 마비 등 긴급상황 대비 ▲사회적 포용성 유지 ▲디지털 경제의 발전 뒷받침 등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정부·기업·소비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우리 사회가 효율적이면서도 더욱 안전하고 포용적인 곳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충화 한국은행 발권정책부장.

김충화 한국은행 발권정책부장은_카이스트(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서 금융학을 전공했다. 1999년에 한국은행에 입행해 뉴욕사무소 과장, 국제국 차장, 발권국 발권정책팀장 등을 거쳐 현재는 발권정책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우리 화폐를 신뢰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화폐, 깨끗한 화폐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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