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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가 보여준 韓 블록버스터 브랜딩의 성공 사례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1~3 시리즈 모두 흥행…할리우드식 마케팅 통했다
범죄도시 브랜딩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배우 마동석(맨 왼쪽)이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영화 범죄도시4 제작발표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범죄도시 주요 출연진인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배우와 허명행 감독.[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영화는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 예술 장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투자 규모가 큰 만큼 리스크도 적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감독의 연출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흥행을 보장 못 하는 것이 영화산업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계를 들여다보면 어떤 산업보다 팬덤(Fandom·집단 팬)을 만드는 브랜딩이 필요하다. 영화산업을 브랜딩 관점에서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할리우드(Hollywood)고, 프랜차이즈 영화가 바로 그 비즈니스 모델이다. 할리우드에서 배트맨, 스타워즈, 분노의 질주, 그리고 스파이더맨을 필두로 한 마블 슈퍼히어로 시리즈 등 셀 수 없는 프랜차이즈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한국영화 중에서도 이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식 영화 브랜딩을 시도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다.

최근 세 번의 시리즈를 통해 300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던 ‘범죄도시’가 네 번째 시리즈 개봉(4월 24일)을 앞뒀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 받아, 유럽에서 극찬을 받은 ‘범죄도시’는 이미 사전 예매율에서 역대급 흥행을 예고 중이다. 세계 164개국에서 이뤄진 선판매로 인해 손익분기점 허들도 낮아져 글로벌 흥행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단순·무식 ‘마석도 펀치’에 관객은 열광

‘범죄도시’ 첫 편이 나온 것은 2017년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주연인 배우 마동석이 평소 알고 지내던 금천경찰서 한 형사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다. 가리봉동 조선족 타운을 관할하면서 조선족 폭력조직을 소탕했던 이야기는 마석도라는 근육질의 권투선수 출신에, 다소 촌스런 정의감을 가진, 단순, 무식, 통쾌한 괴물형사 케릭터로 재탄생하며 당시 제작비 50억원의 저예산 영화 임에도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사상 역대 흥행 3위(688만명)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었다. 

‘범죄도시’의 프랜차이즈 계획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마동석은 1편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보완하고 직접 구성한 ‘팀고릴라’라는 창작집단을 투입해 형사들의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 50여개를 만들어냈다. 이 중에서 뽑은 7개의 각본을 사전 기획하며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설계되기 시작했다. 

대개 ‘본편 만한 속편은 없다’라는 얘기가 있지만 후속편은 1269만명이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냈다. 3편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극복하고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뻔한 스토리와 단순한 주인공 캐릭터, 배경과 방식만 다를 뿐, 매회 더 나쁜 빌런(villain·악당)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 영화의 스토리적 한계, 비슷한 B급 유머코드 등 이 영화의 단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팬덤을 만드는 이 영화의 브랜딩 비결은 불공정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라는 시대정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석도는 복잡하고 피곤한 상황을 단순, 무식하지만, 통쾌하게 한방의 주먹으로 해결한다. 

빌런들의 폭력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보통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유일한 영웅 마석도는 거룩하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나쁜 놈들을 때려잡고 선량한 사람들을 지킨다. 그래서 마석도라는 브랜드가 가진 이념은 단순하고 쉽다. “나쁜 놈들은 잡아야 돼!”, “법이 사람들을 못 지키면 우리라도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복잡한 세상 속 단순한 마석도의 이념에 열광하는 이유다.

특히 1편의 성공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시도였지만, 2편부터는 할리우드식 프랜차이즈 마케팅이 큰 힘을 발휘했다. 

팀고릴라는 50개가 넘는 각본을 구성한 뒤 이 중에서 뽑은 7개의 시리즈를 사전 기획했다. 여기에 2~3개 정도의 ‘스핀오프’ 영화까지 염두하고 있다는 마동석의 발언을 참고하면 ‘분노의 질주’나 배트맨시리즈에 버금가는 밑그림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철저한 사전기획에 따라 3편과 4편의 촬영은 동시 작업에 들어갔다. 3편이 개봉하기도 전에 4편의 촬영이 완성됐을 정도다. 엄청난 제작비 절감은 물론이고, 50세를 넘긴 주인공 마동석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전성기의 액션을 보여주겠다는 발상이다. 

또한 아주 촘촘하지는 않지만, 전체 시리즈를 연결시키는 세계관도 만들었다. 전편을 보지 않은 관객들도 이해가 어렵지 않은 수준의 세계관은, 전편의 팬덤을 다음 편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미끼 역할을 한다. 

‘청불’과 ‘15세 관람가’의 경계를 절묘히 넘나드는 기획도 성공 요인이다. 1편이 ‘청불’이였음에도 관객 688만을 돌파하자 제작자인 마동석은 2편부터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제작을 했다. 또한 122분이었던 러닝타임을 105분으로 과감히 줄여 극장 상영 회전률도 높였다. 1편 대비 2편 관객이 2배가량 증가한 배경이다.
영화 범죄도시3에서 주인공 마석도가 악당에게 주먹을 날리는 장면.[사진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새로운 대안 사례 만들까

액션과 유머코드도 범죄도시 성공의 또 다른 이유다. 영화 속 빌런은 분노 유발자다. 영화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마석도의 통쾌한 펀치로 이들 빌런을 응징한다. 시원한 해결책이 없는 답답한 현실 속 관객들에게 던지는 해결책은 단순하다. 펀치 한방이다. 사람들은 그가 통렬하게 날리는 펀치를 통해 쾌감을 느낀다. 실제로 마석도의 펀치에는 더 크고 정교한 효과음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상황에 맞는 자연스런 유머코드는 감초의 역할을 넘어서 15세 관람가 영화가 가지는 폭력성을 상쇄하고, 영화의 잔혹성을 가리며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이를테면 1편에서 빌런 장첸과의 김포공항 화장실 격투신에 앞서 장첸이 “혼자냐?”고 묻자, 마석도가 “아직 싱글이다”고 답하는 장면은 긴장된 순간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SUV’ 자동차를 ‘USB’ 자동차라고 하는가 하면, 3편에서는 야쿠자에게 “아가리토 고자이마쓰”라고 국적 불명의 일본어를 둘러대며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4월 24일 개봉되는 ‘범죄도시4’는 전작에 비해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는 평이다. 어떤 예술장르보다 브랜딩이 필요한 영화산업에서 ‘범죄도시’ 브랜딩의 성공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싸우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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