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만병통치약 ‘커피’, 과하면 독
‘카페인 중독’ 호소 환자…커피는 정말 해로울까
암 예방 등 효능 우수…과도하게 의존하면 안 돼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어릴 때부터 필자가 운영하는 병원에 다닌 20대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평소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 그가 신병교육대에 입소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는 신병교육대에 입소하기 1시간 전, 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
원래도 혈압이 높았던 이 청년은 커피를 마신 뒤 최고 혈압이 153까지 솟았다. 최고 혈압이 150을 넘기면 신병교육대에 입소할 수 없다. 그는 세 번이나 혈압을 측정했고, 결국 149의 혈압 수치를 기록해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이 청년은 “매일 먹던 커피가 그렇게 미웠던 적이 없었다”며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직 매일 커피를 마시는 스스로를 보며 ‘카페인 중독’이 아닐까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무시 못 할 커피 효능, 하지만 위험할 수도
커피를 마시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머리는 맑아지고, 잠은 달아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이 마치 자신이 아데노신인 듯 행동하며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데노신은 흥분 물질인 도파민을 억제해 신경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유도한다.
카페인은 반대의 효과를 낸다. 신경이 각성하면서 뇌에 산소를 많이 공급하고,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조교의 호통 속 긴장했을 청년의 맥박은 커피 때문에 더 급격히 올랐을 것이다.
커피는 평소 적당한 양을 섭취하면 ‘축복’이다. 필자도 병원에 일찍 출근해 눈코 뜰 새 없이 진료하다 점심을 거르게 됐을 때, ‘커피 타임’을 기다리고는 했다. 개원 초기 환자 한 분이 “피곤하실 텐데 커피 한 잔 드세요”라고 건넸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시작이었다.
커피를 마신 후 ‘파블로프의 강아지’가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릴 여유도 느꼈겠지만, 커피는 오전에 쌓였던 피로를 없앴고, 뇌에 혈류를 돌리는 듯한 상쾌함도 줬다.
각성 효과를 제외해도 커피의 효능을 마냥 무시하긴 어렵다. 특히 암 예방 효능은 커피의 이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커피는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성 질환, 위암과 대장암 등 소화기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암도 커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도 보고됐다.
간이 카페인을 해독하는 장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코스타리카 니코야 반도, 그리스 이카리아섬,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 사는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 커피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공동연구팀은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칭호까지는 과장이더라도, 적절한 양의 커피가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의존증 줄이는 것이 관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커피라고 다르지 않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혈류량이 많아졌다’는 말은 곧 ‘혈압이 높아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청년과 같이 고혈압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커피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스테롤은 간에서 대사를 거쳐 콜레스테롤로 전환된다. 원두를 곱게 갈아 고온 고압 상태에서 커피를 뽑는 인스턴트 커피, 에스프레소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드립 커피는 카페스테롤이 필터에 걸러지기에 콜레스테롤 수치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중요하다. 약 먹는 시기가 식전, 식후로 나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간헐적 단식’ 실천자처럼 공복이 잦은 사람은 ‘빈속 커피’에 주의해야 한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는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커피 자체가 산성인 데다가, 카페인은 위벽을 자극하고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위암 예방 등 긍정적인 효과를 노리고 커피를 마셨는데, 오히려 위 건강을 망칠 수 있는 셈이다. 고백하자면 필자가 그랬다. 최근 업무가 부쩍 늘어 점심을 먹지 못했고, 그때마다 ‘공복 커피’를 마셨다. 속쓰림도 함께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는 것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면 의존증을 꼽을 수 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다. 밤잠을 설쳐 고생하다 병원을 찾은 사람 중에는 커피가 불면증 원인인 경우가 왕왕 있다.
내담자가 카페인 의존에서 탈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 커피 섭취량을 한 주마다 한 잔씩, 예를 들어 원래 하루 네 잔을 마셨다면 다음 주에는 석 잔 혹은 두 잔으로 줄이면서 수면제를 함께 처방하는 방식 등으로 ‘커피 중독’에 대응하면 된다.
진짜 문제는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경우다. 잠이 오지 않는 증상을 이겨내려 수면제 처방을 부탁하면서 상담하는 내내 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좋은 수면제라도 내성이 생겨서다. 카페인 내성이 수면제 내성으로, 수면제 내성이 다시 카페인 내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약을 최대한 덜 먹고, 커피를 최대한 덜 마시게끔 유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청년 입에서 ‘카페인 중독’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더 신경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그 청년에게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은 컨디션이 어떤지 물었다. 약간 졸리긴 해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커피 잘 마시는 법’이 있다면 무엇일지 얘기를 더 나눴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랬다. ▲석 잔째부터는 디카페인으로 ▲가능하다면 핸드드립으로 ▲빈속에는 먹지 말기.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커피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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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혈압이 높았던 이 청년은 커피를 마신 뒤 최고 혈압이 153까지 솟았다. 최고 혈압이 150을 넘기면 신병교육대에 입소할 수 없다. 그는 세 번이나 혈압을 측정했고, 결국 149의 혈압 수치를 기록해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이 청년은 “매일 먹던 커피가 그렇게 미웠던 적이 없었다”며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직 매일 커피를 마시는 스스로를 보며 ‘카페인 중독’이 아닐까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무시 못 할 커피 효능, 하지만 위험할 수도
커피를 마시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머리는 맑아지고, 잠은 달아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이 마치 자신이 아데노신인 듯 행동하며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데노신은 흥분 물질인 도파민을 억제해 신경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유도한다.
카페인은 반대의 효과를 낸다. 신경이 각성하면서 뇌에 산소를 많이 공급하고, 심장박동은 빨라진다. 조교의 호통 속 긴장했을 청년의 맥박은 커피 때문에 더 급격히 올랐을 것이다.
커피는 평소 적당한 양을 섭취하면 ‘축복’이다. 필자도 병원에 일찍 출근해 눈코 뜰 새 없이 진료하다 점심을 거르게 됐을 때, ‘커피 타임’을 기다리고는 했다. 개원 초기 환자 한 분이 “피곤하실 텐데 커피 한 잔 드세요”라고 건넸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시작이었다.
커피를 마신 후 ‘파블로프의 강아지’가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릴 여유도 느꼈겠지만, 커피는 오전에 쌓였던 피로를 없앴고, 뇌에 혈류를 돌리는 듯한 상쾌함도 줬다.
각성 효과를 제외해도 커피의 효능을 마냥 무시하긴 어렵다. 특히 암 예방 효능은 커피의 이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커피는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성 질환, 위암과 대장암 등 소화기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간암도 커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도 보고됐다.
간이 카페인을 해독하는 장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코스타리카 니코야 반도, 그리스 이카리아섬,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 사는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 커피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공동연구팀은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칭호까지는 과장이더라도, 적절한 양의 커피가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엔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의존증 줄이는 것이 관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커피라고 다르지 않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혈류량이 많아졌다’는 말은 곧 ‘혈압이 높아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청년과 같이 고혈압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커피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커피에 함유된 카페스테롤은 간에서 대사를 거쳐 콜레스테롤로 전환된다. 원두를 곱게 갈아 고온 고압 상태에서 커피를 뽑는 인스턴트 커피, 에스프레소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드립 커피는 카페스테롤이 필터에 걸러지기에 콜레스테롤 수치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중요하다. 약 먹는 시기가 식전, 식후로 나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간헐적 단식’ 실천자처럼 공복이 잦은 사람은 ‘빈속 커피’에 주의해야 한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는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커피 자체가 산성인 데다가, 카페인은 위벽을 자극하고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위암 예방 등 긍정적인 효과를 노리고 커피를 마셨는데, 오히려 위 건강을 망칠 수 있는 셈이다. 고백하자면 필자가 그랬다. 최근 업무가 부쩍 늘어 점심을 먹지 못했고, 그때마다 ‘공복 커피’를 마셨다. 속쓰림도 함께 찾아왔다.
커피를 마시는 것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면 의존증을 꼽을 수 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다. 밤잠을 설쳐 고생하다 병원을 찾은 사람 중에는 커피가 불면증 원인인 경우가 왕왕 있다.
내담자가 카페인 의존에서 탈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 커피 섭취량을 한 주마다 한 잔씩, 예를 들어 원래 하루 네 잔을 마셨다면 다음 주에는 석 잔 혹은 두 잔으로 줄이면서 수면제를 함께 처방하는 방식 등으로 ‘커피 중독’에 대응하면 된다.
진짜 문제는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경우다. 잠이 오지 않는 증상을 이겨내려 수면제 처방을 부탁하면서 상담하는 내내 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좋은 수면제라도 내성이 생겨서다. 카페인 내성이 수면제 내성으로, 수면제 내성이 다시 카페인 내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약을 최대한 덜 먹고, 커피를 최대한 덜 마시게끔 유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청년 입에서 ‘카페인 중독’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더 신경이 쓰였는지 모르겠다. 그 청년에게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은 컨디션이 어떤지 물었다. 약간 졸리긴 해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커피 잘 마시는 법’이 있다면 무엇일지 얘기를 더 나눴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이랬다. ▲석 잔째부터는 디카페인으로 ▲가능하다면 핸드드립으로 ▲빈속에는 먹지 말기.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현대인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커피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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