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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와 도화살 [전형일의 세상만사]

동서양 대표 과일 사과·복숭아
무심코 먹는 과일 속 수많은 사회적 함의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전형일 칼럼니스트] 사과(apple)는 서양을, 복숭아(桃)는 동양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기독교에서 인류의 ‘원죄(原罪)’는 사과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남자의 튀어나온 목젖을 ‘아담의 사과’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금단의 열매 효과’도 금지된 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사과는 신들의 나라에서만 열리는 과일로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이를 소재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서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가 신들에게 매일 제공한 것이 사과였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영화가 ‘반지의 제왕’이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파리스의 심판’ 도구, 영웅 헤라클레스가 받은 12과제 중 하나가 황금사과였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깨닫게 한 것, 명궁 빌헬름 텔의 아들 머리 위 과녁으로 사용한 것, 백설 공주가 마녀로부터 받은 과일도 사과였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는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은 모두 110점에 달하는 사과를 그렸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동성애가 알려지자,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 혁신의 기업인 애플사(社)의 사명과 로고 자체가 사과다. 영국의 록 그룹 비틀스가 설립한 레코드사도 애플(Apple Corps.)이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이처럼 서양에서 사과는 모든 분야에서 등장하지만 고대 영어에서 애플은 사과와 더불어, 보통 명사로 과일이나 열매를 의미했다. 그래서 낯선 과일에 접미사로 애플을 붙였다. 대표적인 것이 파인애플로 솔방울(pine) 열매(apple)다. 오이(cucumber)는 그 전에 땅 열매(earth apple)로, 멜론은 조롱박 열매(gourd apple)로 불렸다.

실제로 성경에 선악과(善惡果)를 사과라고 명시한 구절은 없다. 이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이 실낙원(失樂園)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해석한 이후 정설로 굳어졌다.

사과는 중앙아시아, 터키 동부 지역이 원산지다. 우리나라에는 17세기 후반 이후에 재배종 사과가 전해져 그때까지 먹었던 능금을 밀어냈다. 능금과 사과는 종자가 전혀 다르다.(‘과일로 읽는 세계사’)

‘도(桃)’는 설문해자에서 과일‧열매라고 풀이하고 있다. 호두(胡桃)나 자두(紫桃)가 대표적이다. 桃를 파자하면 나무 목(木)에 조짐 조(兆)다. 兆는 거북이 등에 나타난 점괘를 본떠 만든 글자이다. 복숭아꽃은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으로 어떻게 피는지와 그 양에 따라 그해 과일의 풍년과 흉년이 점쳐졌다. 이에 따라 옛사람들은 복숭아가 하늘의 뜻을 알려주는 신비의 과일로 생각했다.

중국 동진 시대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는 무릉(武陵)의 어부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마을(桃源)을 다녀온 이야기다. 이후 무릉도원은 이상향이 됐다.

도원결의(桃園結義).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는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손오공이 불사신이 된 것도,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서왕모의 반도원(蟠桃園)에서 불사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다. 장수를 기원하는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는 궁중 장식화였으며, 조선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도화원기’를 참고했다.

복숭아는 벽사(辟邪)의 의미도 있다. 가지로는 귀신을 쫓았다. 그래서 놀부 마누라가 제사상에 조상신을 못 오게 복숭아를 놓았다. 복숭아로 사람도 죽였다. 고사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다. 반대로 동의보감에 따르면 복숭아나무는 약재로 쓰였다.

또한 복숭아는 모양과 색깔 때문에 성적(性的) 상징물이 됐다. 대표적인 것이 도화살(桃花煞)이다. 신라 진지왕은 20대 후반, 왕이 된 뒤 불과 4년 만에 쫓겨났다. 이에 대해 삼국유사는 정란황음(政亂荒淫) 때문으로 기록하고 있다.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했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도화녀라는 여염집 여자와의 염문이었다. 복사꽃처럼 예쁜 도화녀를 잊지 못해 진지왕은 죽은 후 귀신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색정(色情)도 도색(桃色)으로 표현한다. 달밤에 벌레 먹은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는 속설도 있다. 애증(愛憎)을 나타내는 대표적 고사 여도지죄(餘桃之罪)에도 복숭아가 등장한다.

도화살을 흔히 음란과 연결한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의미가 변화하는 게 많다. 도화살도 마찬가지로 남녀 모두 매력과 인기를 나타낸다. 현대에서는 ‘매력 자본’이다.

이처럼 무심코 먹는 과일에 수많은 신화, 역사, 사회적 함의가 있는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야기(story)를 좋아하는 존재이니 그리 이상 할 것도 없다.

복숭아의 원산지는 동북아 일대로 실크로드를 따라 고대 페르시아에 전해졌다. 우리말 복숭아의 어원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15세기 후반 성종 때 간행된 문헌에 이름이 보이니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장이 안 되는 복숭아가 제철을 맞았다. 금 사과와 달리 저렴하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형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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