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도면 작업 디지털로 혁신하다 [이코노 인터뷰]
이건우 캐럿펀트 대표
문화유산 디지털 기록화 솔루션 개발…두바이·중국·일본 등에서 주목
유물 도면 작성 시간 줄여…틈새시장 공략해 혁신 도전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2022년 5월 개장한 춘천 레고랜드가 들어선 의암호의 섬 중도에는 청동기 고인돌과 고구려 시대의 돌덧널무덤 등의 유적이 나왔지만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레고랜드는 이슈가 됐기에 일반인도 잘 알게 됐지만, 여전히 주위에는 경제 논리에 유물이 나와도 모르는 체하는 현장이 많다고 한다. 매년 동안 정부 기관에 신고된 유물이 1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유물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땅 곳곳에 국보급 유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라며 “역사가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유물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매장문화재보호및조사에관한법률이 건축법보다 상위법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 vs 경제 개발’이라는 딜레마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다.
2017년 8월 고고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 신분으로 창업에 도전해 꾸준히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건우 캐럿펀트(carrotphant) 대표가 주인공이다. 포항공과대(포스텍)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육성 공간 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만난 이 대표는 “건설 현장에서 유물이 나오면 실제로 측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자료 작업이 필수다”면서 “조그마한 유물을 실제로 그리는 데 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실측 도면 작성에 수개월 이상 걸린다. 이 시간을 줄이면 건설 현장의 불만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시간 도면 작업 20분으로 줄여
그가 기자에게 실측 도면 작성 모습을 보여줬다. 정보통신(IT)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발굴된 유물을 자로 재고, 그 모양과 크기 등을 도면에 직접 그리는 방식이다. 모든 작업이 아날로그적으로 이뤄지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전공자만이 이 작업을 할 수 있다. 관련 전공자가 줄면서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유물 실측 도면 작업 관련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고고학을 공부하던 학생 눈에도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아날로그 작업을 디지털 작업으로만 바꿔도 유물 실측 도면 작업에 혁신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고고학 교수님과 학생들이 아무래도 IT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지 않기 때문에 작업 방식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7년 8월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에 뛰어든 이유다. 스타트업 성장의 기본으로 꼽히는 ‘틈새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창업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가 다니던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는 창업 관련 정보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창업 관련 정보를 찾아서 서울과 경주, 포항 등 각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고 창업 관련 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모두 호의적으로 정보를 주고 사람을 소개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면서 캐럿펀트를 창업했다.
창업 후 개발자들과 솔루션 개발에 매달렸다. 아치쓰리디라이너(Arch3D Liner)라는 솔루션을 개발에 성공했다. 휴대용 스캐너로 스캔을 한 후 이 솔루션을 이용하면 유물 한 점의 도면을 만드는 데 20분이면 마무리할 수 있다. 이 대표는 “보통 건설 현장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도면 작업까지 하는 데 1년 여의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면 수개월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솔루션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인증까지 받아 성능도 인정받았다.
비즈니스 모델 확실…국내 시장 넘어 해외 진출하는 게 목표
캐럿펀트는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1개월에 190만원을 내거나 1년에 2200만원 정도의 구독료를 내고 이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는 “구독료가 비싸다고 생각하겠지만 도면을 그리는 업계나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는 1년에 2200만원으로 1억원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물의 실측 도면은 글로벌 표준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진출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얼마 전 우리 구성원들이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 일본 시장에서도 우리 솔루션을 주목하고 있고, 일본 시장 진출에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캐럿펀트는 해외 관련 기관에서 다양한 수상을 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19년 중국 베이징 대학교 IR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됐고, 2022년에는 두바이 문화예술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 심사위원에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발굴팀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2022년 두바이에서 ‘자이텍스’(GITEX)라는 글로벌 정보통신 박람회가 열렸는데 이곳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발표 대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수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금은 크지 않았지만 언제든 두바이에 오갈 수 있는 골드 비자를 받았다”면서 “두바이에 사무실도 2년 동안 무상으로 내준다고 했는데, 비즈니스가 무르익지 않아서 그것은 거절했다”며 웃었다. 대신 두바이가 건설 예정인 ‘미래 박물관’과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디지털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캐럿펀트는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디지털로 혁신했다. 틈새시장을 확실하게 공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대부분의 투자사도 공감한다. 다만 이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했다.
그는 창업 이후 정부 과제나 R&D 등을 통해서 20여 명이 일하는 조직으로 키워냈다. 이 대표는 “일용직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다양한 경진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금으로 임직원 월급을 마련하는 등 초기에는 고생했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 특히 솔루션 개발에 성공하면서 매출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올해 매출 목표는 25억원이다”며 웃었다. 또한 “캐럿펀트는 문화유산 디지털 기록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리더가 될 것이다”면서 “국내 시장 규모는 한계가 있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2“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3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4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5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6“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7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8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9“‘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