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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의 비결, 초격차 펜싱 [IS 비하인드]

(파리=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상원, 오상욱, 구본길, 도경동, 원우영 코치. 2024.8.1 yatoya@yna.co.kr/2024-08-01 05:06:22/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결승 7라운드. 한국이 30-29, 한 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벤치 멤버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이 교체 투입됐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피스트를 밟은 순간. 도경동은 심판의 '알레(시작)' 음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빠른 스텝과 현란한 손놀림으로 상대를 5번 연속 찔렀다.

바로 이 장면에서 대한민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승기를 잡았다. 결국 기세를 몰아 올림픽 단체전 3연패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주인공이었던 원우영 코치는 "(도경동의 5-0 승리에) 소름이 돋았다. 미치는 줄 알았다"라며 흥분했다.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 도경동으로 구성된 남자 사브르 대표팀(세계 랭킹 1위)은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세계 4위)를 45-41로 무찔렀다. 이로써 2012 런던, 2020 도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6년 리우 대회에서는 종목 로테이션으로 인해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은 8강에서 캐나다를 45-33, 준결승에서 펜싱 종주국이자 올림픽 개최국 프랑스를 45-39로 격파했다. 팽팽하게 진행된 결승전의 '게임 체인저'는 맏형 구본길도, 에이스 오상욱도 아니었다. 8강과 준결승에서 한 번도 피스트를 밟지 못한 도경동이었다. 

한국은 7라운드 주자였던 구본길을 대신해 도경동을 교체로 내보냈다. 도경동은 "원래 8라운드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8라운드 출전 멤버였던) 박상원의 이날 컨디션이 좋았고, 나는 7라운드 상대였던 크리스티안 라브에게 가장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코치님께 '라브를 상대로 5-0도 자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계획보다 일찍 투입해 달라고 조를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결승전을 앞두고 "(출전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던 도경동은 7라운드에서 내리 5득점을 따내 스코어를 35-29로 크게 벌렸다. 도경동은 '후보'가 아닌 '조커'가 되어 상대의 허를 찌른 것이다.

'유럽의 스포츠'라 불리는 펜싱 역사상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아시아 국가는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도쿄 올림픽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 멤버였던 김정환·김준호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했다. 이에 따라 "파리에선 금메달이 어렵지 않겠나"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오상욱이 "멤버가 바뀐 후 국제대회에서 여러 번 박살이 났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원우영 코치도 두 달 전만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브르 대표팀은 세대교체와 전략 연구를 통해 더 강하고 다채로워지고 있었다. 파리 올림픽은 한국이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만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무대였다.

앞서 개인전에서 우승한 오상욱은 한국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단일 대회 2관왕에 올랐다. 구본길은 올림픽 3연패 내내 단체전 대표팀에 있었다. 오상욱과 구본길은 올림픽 금메달만 3개 수집했다. 국제 종합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도경동과 박상원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대표팀의 미래를 더 밝혔다.

한국 펜싱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빠른 발을 앞세운, 이른바 '발 펜싱' 덕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대표팀을 보면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 한국 선수들의 체격이 크게 향상됐고, 기술과 전력까지 업그레이드됐다. 

전 국가대표 코치 출신 고종환 국제펜싱연맹 심판위원은 "결승전을 보면 강점인 발뿐 아니라 손동작이 엄청 빠르더라. 상대 선수보다 반 박자 이상 빨랐다"면서 "심판에 따라 발을 중요하게 보기도 하고, 손을 더 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 선수들이 심판의 성향을 잘 파악해 경기했다"고 평가했다. 

고종환 심판위원은 이어 "사브르는 종목 특성상 심판의 사견이나 감정이 작용한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선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 판정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 펜싱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에페 신아람이 '잃어버린 1초' 탓에 피스트를 떠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린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전략도 주효했다. 도경동은 1일 기준으로 세계 랭킹 75위다. 국내 선수 중 6번째다. 그러나 단체전 기여 가능성 등을 고려해 현장 지도자와 대한펜싱협회는 도경동을 대표팀에 '전략 선발'했다. 이들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 실시한 훈련량도 엄청나다. 선수들은 물론 원우영 코치도 체중이 5㎏이나 빠졌다고 한다.

한국 펜싱이 지금껏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은 총 7개. 이 가운데 사브르 종목에서 금메달 5개를 땄다. 나머지 2개는 남자 플뢰레(김영호·2000년 시드니) 남자 에페(박상영·2016 리우)에서 나왔다.

SK텔레콤이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이듬해부터 국내에서 'SK 그랑프리'를 개최되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참가하는 이벤트다. 다만 국제펜싱연맹이 종목별로 대회를 분산 개최함에 따라, 2015년부터는 한국에선 사브르 종목만 열고 있다. 고종환 국제펜싱연맹 심판위원은 "해외 대회는 남녀 최대 12명씩만 나가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엔 추가로 유망주들이 출전할 수 있어 매년 남녀 20명 이상씩 국제 경험을 쌓았다"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SK텔레콤이 후원한 금엑은 총 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든든한 지원과 선수단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사브르 대표팀은 세계 최강으로 올라섰다. 빠른 발, 손기술, 큰 체격과 세밀한 전략까지 어우러진 결과다.

구본길은 "(3연패 멤버 중) 실력은 이번 멤버가 가장 뛰어났다. 무조건 금메달을 딸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상원은 "(오)상욱이 형의 개인전 금메달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 형이 '너도 딸 건데 왜 그러느냐'며 자신감을 심어줬다"라고 웃었다. 오상욱은 "뉴 어펜져스(펜싱+어벤져스)는 조금 더 힘차고, 패기가 넘친다. 쓰나미 같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원우영 코치는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를 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정말 할 수 있다. 못하란 법이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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