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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이라 쓰고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 읽는다 [EDITOR’S LETTER]

금융사고에 신뢰 잃은 우리금융…밸류업 청사진 모래성에 불과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지난 8일 여의도 우리투자증권 본사에서 열린 애널리스트 대상 간담회에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우리금융]
[이코노미스트 박관훈 기자] “우리은행 대출 잘 나와요? 이번에 이사할 거 같은데…저희도 우리은행에서 대출받을까요?” 좀 뜬금없는 물음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뒤이어 지인이 공유한 기사 제목을 보고 나서 그의 말에 숨은 뜻을 이해했다. ‘고개숙인 임종룡 회장, 350억원 부정대출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

우리은행이 전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에게 특혜성 부당대출을 내준 혐의가 포착됐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은행이 모회사인 손태승 우리금융 전 회장 친인척을 대상으로 총 616억원의 대출을 실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대출액 중 350억원이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 친인척에 대출을 내주는 과정에서 서류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다. 또 담보가치가 없는 담보물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해줬다. 대출 취급·심사와 사후관리 과정에서는 본점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 전결로 임의 처리했다. 서류 단계부터 사후관리까지, 대출 전 과정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취임 1년여가 지난 시점에 적발된 이번 부당대출로 우리금융은 또다시 내부통제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더불어 지난달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내부통제를 강조한 임 회장의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도 공염불이 됐다.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금융의 경우 내부통제의 허점을 보여준 이번 사건은 치명적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은 우리투자증권 출범 등 비은행으로 확장을 꾀하는 우리금융의 그룹 밸류업 계획에도 찬물을 끼얹은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우리은행의 부당대출이 드러난 시점에 임 회장은 직접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고 그룹 가치 제고를 약속했다. 임 회장은 “총주주환원율을 50%까지 확대하고 본업 경쟁력 강화와 탄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넘어선 재무성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6월 100억원대 횡령에 이어 또다시 거액의 부당대출 사고가 터지면서 우리금융에 외형 확장보다 금융업의 본질인 ‘신뢰 회복’에 먼저 힘쓰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주주환원을 공언하기에 앞서 내부통제 조직의 기강 쇄신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단순히 주가를 높이는 것으로 기업의 밸류업은 완성되지 않는다. 본업 경쟁력 향상은 물론 후진적 지배구조 등을 개선해야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하다. 우리금융의 경우 계속되는 금융사고 등 내부통제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밸류업 계획은 모래 위에 쌓으려는 성(城)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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