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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 대신 자립을 선택한 마을 日 히가시카와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일본 지방도시에서 배운다]①
폐교 리모델링, 마을 도서관·커뮤니티 공간(Center Pure) 활용
아이들 탄생과 성장에 온 마을이 함께

히가시카와 센터 퓨어 내부모습,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책을 보고 있다.[사진 김현아 교수]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우리보다 인구감소와 저출생‧고령화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 중 으뜸은 일본이다. 빈집과 지방소멸 역시 일본은 꽤나 오래전부터 정책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최근 대구 경북 통합으로 다시 점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자체 통합은 광역도시간의 통합이지만 일본은 1997년 헤이세이(平成) 대합병부터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기초 지자체 통폐합을 지금까지 추진해 오고 있다. 헤이세이 대합병은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지자체 통폐합 사업이다. 

통폐합으로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도시의 재편에 성공한 도시들도 있겠지만 인구규모가 작은 마을들은 대부분 인근 도시에 통합되어 사실상 사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경우도 많다. 오늘 소개할 히가시카와정(東川町)은 일본 북해도(홋카이도) 중앙에 위치한 인구 8800명 규모의 마을로 헤이세이 대합병의 거센바람에서 통합 대신 자립을 선택하고 오히려 살아남은 지역이다. 이는 우리나라 지방자치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5만 이상)’, ‘읍(인구 2만 이상)’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아주 작은 규모의 마을이다. 

2003년 마츠오카 정장(町長)은 인구 7500명의 히가시카와정을 통합 대신 자립시키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으며 2015년에는 40년 만에 인구 8000명을 회복시키는데 성공한다. 30년간 매년 50명씩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육아세대가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매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90여명에 이른다. 

히가시카와는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상수도가 없는 마을이다. 사실 상수도가 없어 불만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멋진 원수공원이 있다”로 없는 것 대신 있는 것을 보도록 강조했다. 다이세쓰산의 해빙수가 오랫동안 땅속에 스며들어 만들어진 깨끗한 천연지하수를 바로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이주를 결정한 요인을 물어보면 “깨끗한 물 때문”이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풍부한 지하수는 쌀농사에도 영향을 주어 맛있는 쌀과 술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대도시의 삶에 지친 근로자들이 소박하지만 쾌적한 이 마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기 이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인구 8000명이면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정도에 불과하다. 

마을 중앙에는 도서관과 커뮤니티 공간(Center Pure)으로 활용하고 있는 센터가 있는데 폐교(초등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건물 외관이나 내부 디자인 모두 대도시의 것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쾌적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운동장은 매년 개최되는 사진고시엔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일본어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학습공간도 있었다. 교육을 마친 외국인들은 일본에서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매년 학생수가 늘고 있다. 센터 입구에는 여러개의 목조의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마을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의자를 선물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었다. 지역 대학원 세미나에서 제안되었던 아이디어로 시작된 너의 의자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기쁨을 지역 사람 모두가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는 3년간 자신이 사용할 책상과 의자를 선물하는데 의자는 졸업 후 기념으로 학생이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중학교 3년 동안 자신의 목재 의자를 관리하는 방법을 따로 가르친다고 하니, 아이 당사자에게 이만큼 기념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의자프로젝트는 양질의 홋카이도 목자재를 사용하고 뛰어난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사히카와 가구(일본 5대 가구)가 생산품의 30%를 히가시카와에서 제작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의자 프로젝트’는 지역의 가구산업과 젊은 가구 장인을 육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온 마을이 함께하는 것이다. 

히가시카와 센터 운동장 사진전시회 모습 [사진 김현아 교수]

작아서 가능한 것들이 오히려 마을의 강점

이 마을에는 4개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3개는 학생이 30~40명에 불과하다. 인구감소로 학교가 통폐합되는 과정에 380여명을 수용하는 학교를 새롭게 신축했는데 이 학교는 아주 특별하다. 이 학교는 단층이며 복도는 270m로 길다. 교실에는 벽이 없다. 12ha에 달하는 넓은 운동장에는 인공잔디 축구장, 천연잔디 야구장, 다목적 잔디광장, 체험형 논, 체험공원, 과수원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돌봄교실도 바로 인근에 있으며 유명 예술인의 조각작품도 설치돼 있다. 문무과학성으로부터 교육과정 특례교로 인정받아 국제교육을 주축으로 하는 교과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쌀이나 야채를 기르고 수확하여 급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학교 공간이지만 마을 주민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마을 자랑거리들을 살펴보면, 인구가 많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이 마을의 재정자립도는 얼마나 될까, 세수확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주민들이 누리는 삶의 질과 행정서비스의 수준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비결은 따로 있었다. 물론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교부금도 있었지만 히가시카와는 여기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인구감소로 소멸위기를 겪었던 이 마을이 통합대신 자립을 선택하면서 마을 주민들도 정치인도 모두 지역경제 활성화에 사력을 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장은 기업들이 지역행정과 주민들의 삶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투자가 아니라, 기부였고, 오히려 작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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