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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 포기보단 범죄 감내…텔레그램 창업자 체포와 ‘뉴 노멀’ [한세희 테크&라이프]

텔레그램 ‘수사 비협조’ 운영 정책에 ‘철통 보안’ 인식 확산
국가 권력의 과잉 행사? 플랫폼 문제 해결 위한 특단 조치?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 [사진 AFP/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가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이뤄지는 아동 성착취물 같은 불법 콘텐츠 공유와 거래를 방치 내지 공모한 혐의 등으로 조사받고 있다.

텔레그램은 흔히 보안이 철저한 메신저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카카오톡과 밴드 등에 대해 이른바 ‘검열’ 논란이 일었을 때, 많은 사람이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는 ‘메신저 이민’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도 정치인이나 기자 등이 많이 사용한다. 두로프를 체포한 프랑스에서도 정치인들은 텔레그램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텔레그램은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에 더 가깝다. 한 그룹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최대 20만 명이고, 규모가 큰 대화방에서도 원활한 대화와 파일 공유가 가능하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하는 사람들의 대화방이 주로 텔레그램에 몰려 있다.

텔레그램은 철통 보안?

‘보안이 강하다’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오가는 대화가 모두 암호화돼 메시지를 수신하는 사람만 자신의 단말기에서 해독해 볼 수 있고, 서버에는 암호화된 데이터만 남아 경찰이 압수수색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볼 수 없는 메신저라면 보안이 강하고 프라이버시를 잘 보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종단 간(end-to-end) 암호화라고 한다. 수신자만 해독할 수 있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송하기 때문에 해커가 중간에 가로채거나, 사법기관이 영장을 갖고 서버를 압수수색해도 메시지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텔레그램은 제한적으로만 이런 보안 기능을 제공한다. 종단 간 암호화되는 대화를 하려면 ‘비밀 대화’ 기능을 따로 켜야 한다. 일대일 대화에만 적용되고, 단체 대화에서는 쓸 수 없다. 텔레그램에서 우리가 하는 대화는 대부분 종단 간 암호화되지 않은 일반 대화이다. 비밀 대화 기능을 찾기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카카오톡에도 일반 채팅과 다른 ‘비밀 채팅’이 있다. 텔레그램의 보안은 사실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더욱 강한 종단 간 암호화를 제공하는 메신저로는 왓츠앱·애플 아이메시지·시그널 등이 있다.

‘텔레그램은 보안이 강하다’란 인식을 심은 것은 이들의 보안 기술이 아니라 정책이다. 이 회사는 세계 어디서든 경찰의 수사 요청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여러 나라 데이터센터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해, 한 나라에서 발부한 영장만으로는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사진 AFP/연합뉴스]

권력과 싸우는 기업인

창업자의 행적을 보면 이런 행보가 이해되기도 한다. 두로프는 22살이던 2006년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브이콘탁테’를 창업했다. 이 플랫폼을 1억명이 쓰는 국민 소셜 네트워크로 키워냈다.

하지만 2012년 러시아 반정부 시위 참여자들의 온라인 그룹을 폐쇄하라는 당국의 명령을 거부한 후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당시 친러 대통령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정보도 넘기기 거부했고,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지난 2월 사망했다)의 계정을 막으라는 요구도 듣지 않았다. 갈등 끝에 결국 두로프는 2014년 브이콘탁테를 떠났다. 그러면서 해외로 이주, 그 전 해에 창업한 텔레그램 사업에 집중했다. 브이콘탁테 지분을 판 돈은 텔레그램 사업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에 두는 텔레그램의 방침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활동가뿐 아니라 음란물과 마약을 거래하고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퍼뜨리는 범죄자나 ISIS 같은 테러리스트에게도 활동 공간을 열어줬다. 국내 ‘N번방 사건’이나 최근 일반인 딥페이크 음란 영상 공유도 텔레그램을 무대로 일어났다. 청소년이 마약을 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텔레그램은 손안의 ‘다크 웹’이란 말도 듣는다.

그럼에도 두로프는 “프라이버시 보호는 테러리즘 같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경찰이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들면 곧 테러리스트도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돼 결국 사용자 전체가 위험해진다”고도 했다.

텔레그램의 이런 입장은 여러 나라 사법기관을 당혹스럽게 했다. 글로벌 플랫폼을 개별 국가에서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텔레그램에 대한 불만은 쌓여 갔고, 결국 두로프는 텔레그램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공모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

범죄 예방 vs 프라이버시

텔레그램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운영 기업이 얼마나 책임을 갖고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이유로 플랫폼 기업 경영자를 인신 구속하고 공모를 추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는 정도를 벗어난 국가 권력의 과잉 행사인가? 아니면 커가는 디지털 플랫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뉴 노멀’이 다가온 것일까?

프랑스가 두로프에 공모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플랫폼 규제의 새 장이 열린다. 한국 경찰도 텔레그램에 방조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페이스북·왓츠앱·아이메시지 등 다른 플랫폼에서도 범죄는 일어나니, 이번 일이 선례가 돼 플랫폼 기업 경영자는 상시적 체포 위험에 놓일 수 있다. 텔레그램만큼 정부에 비협조적인 기업은 많지 않지만, 다른 기업에도 자사 플랫폼에서 일어난 범죄가 콘텐츠 관리의 ‘실패’인지 ‘방조’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활발한 참여가 플랫폼 서비스의 핵심인데, 바로 그것 때문에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된다.

독재 국가 정부가 같은 이유로 플랫폼 기업 경영자나 현지 대리인을 체포하거나 사용자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허위 정보 유출’ 혐의로 폐쇄됐다.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로부터의 위험만 쏙 골라내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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