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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블록딜에 주주는 울분…‘내부자거래 사전공시’ 대안될까

[블록딜 전쟁]②
“사전공시 시행으로 투자자에게 미리 선택권 줄 수 있을 것”

대주주의 블록딜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잘 나가던 주가가 갑자기 왜 이래…대주주는 이미 팔고 떠났다는데요.”

주가가 급등하는 틈을 타 진행된 상장사 대주주의 갑작스러운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인한 손실 피해가 개인투자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의 시행으로 내부자의 지분 변동 정보가 일반 투자자에게 적기에 제공돼 예상치 못한 대규모 주식 매각 등으로 인한 시장 충격이 최소화될지 주목하고 있다.

블록딜은 규모와 할인율, 지분 매각 의도 등에 따라 강도는 다르지만 통상 주가에 악재로 인식된다.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된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어서다. 또 대주주의 지분 매도는 주식시장에서 주가의 ‘고점’ 신호로 해석돼 부정적 요인으로 해석된다.

실제 2차 전지의 핵심소재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코프로머티)는 2대 주주인 블루런벤처스(BRV)의 블록딜 소식이 있을 때마다 주가가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6월 14일 에코프로머티 주가는 전장보다 약 16% 급락했다. BRV가 6월 13일 장 마감 이후 블록딜 방식으로 에코프로머티 보통주 210만 주를 매각해서다. 총 2509억원 규모다. 5월 21일에도 BRV가 2000억원대 블록딜에 나서자 에코프로머티 주가는 12%대 내리며 마감했다. BRV는 2017년 에코프로머티 설립 당시 주요 투자자로 참여해 2개 펀드를 통해 에코프로머티의 지분 24.43%를 보유해 왔다.

HD현대중공업의 주가도 최대주주인 HD한국조선해양의 블록딜 방식 처분에 급락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5월 17일 개장 전 HD현대중공업 주식 266만3000주(3496억5190만원)를 1주당 13만1300원에 처분했다. 전일 종가(14만500원)보다 6.5% 낮은 가격에 처분하면서, 당시 HD현대중공업 주가가 7% 급락해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지난 3월에는 화천기계가 최대주주 매도 소식에 사흘 동안 30%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화천기계는 ‘조국 테마주’로 주목받으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단기간에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대주주 매각 소식에 주가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외에 알테오젠과 엔켐, DS단석, 마녀공장 등 다수의 기업들이 블록딜에 나섰다.

특히 올 들어 대형 상장사를 비롯해 상장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주주의 블록딜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5월에는 삼성가 세 모녀의 블록딜을 포함해 지분 4조8226억원이 처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블록딜 규모는 6870억원에 불과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의 주요주주는 대부분 상속·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매도했다.

일반 투자자 보호·불공정거래 예방 기대

이는 지난 7월 24일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앞서 지분을 미리 처분하려는 수요가 상반기에 몰린 것으로 파악된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임원이나 지분율 10% 이상인 주요주주가 발행 주식 수 1%, 50억원 이상을 거래할 때 가격·수량·기간을 최소 30일 전까지 공시해야 하는 제도다. 소유 상황 변동일 기준 5영업일 이내에 사후 공시했던 것이 ‘사전 공시’로 바뀌는 것이다. 사전 공시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는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는 일반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예방을 위해 시행됐다. 앞서 2021년 말 상장 한 달 만에 주요 경영진이 주식을 팔아치워 일명 ‘먹튀’ 논란을 불러온 카카오페이 사태 이후 제도 보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까지 포함됐다. 당시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를 비롯해 임원 8명이 회사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행사로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해 900억원을 챙겼다. 이후 카카오페이 주가는 열흘 동안 10% 급락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시행으로 내부자의 대규모 주식거래 관련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이 제고돼 불공정거래 예방·투자자 보호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 온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시행으로 대주주의 예상치 못한 블록딜로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일시적인 수급 요인으로 주가가 단기 급등했을 때 대주주가 고점에 물량을 터는 경우도 자주 보는데, 이럴 때도 결국 고점에 물량을 받는 개인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간혹 내부 정보를 알고 대주주나 경영진이 미리 주식을 파는 경우도 있는데(정보 비대칭을 활용한 불공정 거래) 이런 경우도 상당 부분 차단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내부자가 주식을 매도하겠다는 사전 공시와 이미 매도했다는 사후 공시 모두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주가 하락을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시행이 그래도 훨씬 더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본다”며 “사전 공시를 하게 되면 투자자들이 그 정보를 실제로 매각이 이루어지기 전에 알게 되는 거라서 가격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거기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사전적으로 얻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매각이 다 이루어진 이후에 가격이 도대체 왜 떨어지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내다가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렇게 된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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