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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한우물’ 맥주회사의 소주 시장 도전...성공할까

[소주시장 어떻게 변하나]①
신세계L&B로부터 제주소주 인수 결정
실적 감소 오비맥주, 소맥으로 반등 노려

오비맥주가 제주소주를 인수하며 글로벌 역량 강화에 나선다. 사진은 배하준(벤 베르하르트) 오비맥주 대표. [사진 오비맥주]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국내 맥주회사의 시초이자 시장 1위 기업인 오비맥주가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섰다. 신세계엘앤비(L&B)로부터 제주소주를 인수하면서다. 주류업계는 오비맥주의 향후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90여 년간 맥주 판매만 고집해 온 오비맥주가 깜짝 인수한 제주소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관심이 쏠린다.

90년 맥주 외길 오비의 변심

오비맥주는 9월 11일 신세계L&B로부터 제주소주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류업계는 오비맥주의 소주사업 진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90여 년간 맥주전문회사의 길을 걸어온 오비맥주가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오비맥주의 시초는 1933년 세워진 소화기린맥주다. 당시 귀한 술이었던 맥주는 번화가에만 소량으로 유통됐다. 소화기린맥주는 해방 이후 일본이 한국에서 철수하자 1948년 동양맥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52년에는 정식 민간기업으로 출범했다. 1960년대 생맥주 시판, 홉 재배 등으로 맥주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던 동양맥주는 1995년 오비맥주로 사명을 한 번 더 변경했다. 글로벌 2위 맥주 기업인 인터브루사와 합작 등으로 해외 투자도 유치했다. 현재는 버드와이저·코로나·스텔라 아르투아·호가든 등 500여개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소유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90년 넘게 축적한 양조·포장·제반기술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높여왔다. 현재 오비맥주의 맥주 수출량은 전체 70%에 달한다. 전 세계 30여 개 국가에 카스 등 20여 종의 맥주를 수출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소주를 인수해 글로벌 수출 역량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게 오비맥주의 생각이다. 최근 K-컬쳐, K-푸드 등 K-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은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구자범 오비맥주 수석부사장은 “이번 인수는 오비맥주의 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며 “오비맥주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맥주 경험을 제공하는 데 전념하는 동시에 이번 인수를 통해 카스의 수출 네트워크 확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주류산업을 보면 최근 맥주 수출은 하향세, 소주 수출은 상승세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기준 맥주 수출량은 6만8753톤으로 전년 동기(7만1832톤) 대비 4.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소주 수출량은 4만3999톤으로 전년 동기(4만2651톤) 대비 3.2% 증가했다.

오비맥주 입장에서는 맥주 단일 주종으로만 지속성장을 도모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실제 대표 제품인 카스가 국내 맥주시장에서 여전히 건재한 상황임에도 회사의 경영 실적은 줄고 있다. 오비맥주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5500억원, 234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6%, 35.1%씩 감소한 수치다.
내수 공략 ‘시기상조’ 해외 역량 강화 집중

주류업계는 당장 오비맥주가 국내 소주시장에 힘주기 어렵다고 본다. 내수시장은 이미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등 상위 사업자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소주시장 점유율은 59.8%다. 점유율 18%로 2위를 달리고 있는 롯데칠성음료와의 격차가 큰 편이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 77.8%에 달한다. 여기에 점유율 8%로 시장 3위인 무학을 더하면 3사가 80% 넘는 점유율을 갖는 시장 구조다.

일각에서는 오비맥주가 신세계와 달리 90년 맥주사업을 통해 구축한 전국 영업망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2016년 제주소주를 인수한 신세계그룹의 실패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실한 ‘영업망’을 오비맥주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고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례로 오비맥주가 지난 2021년 새로 만든 브랜드 ‘한맥’은 이병헌, 수지 등 유명배우를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과 제품 리뉴얼에도 시장 안착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aT의 지난해 통계 기준으로 한맥은 가정용 주류시장에서 상위 1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내수시장에서 제주소주의 인지도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신세계그룹이 인수했을 당시 정용진 회장 주도 하에 올레소주를 리뉴얼한 ‘푸른밤’을 내놨지만 결국 단종됐다. 현재 제주소주는 소주 위탁생산(ODM)과 과일소주 수출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제주소주가 신세계L&B로 흡수합병된 이후 사실상 내수시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오비맥주도 당장은 내수시장 진출에 대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수출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점을 명확히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제주소주 활용 계획에 대해 “내수용 제품 제조를 하지 않고 수출용 제품 제조만 하는 공장을 산 것이라 수출 중심으로 봐달라”며 “오비맥주는 제주소주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유흥시장을 공략하기보다는 카스와 제주소주의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는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소주가)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 진출을 점치기에는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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