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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분쟁에…20년 전 LG‧GS 그룹 ‘아름다운 이별’ 재조명

57년 간 유지된 구씨·허씨 가문의 LG, 2004년에 마침표
분리 이후에도 인적 교류 유지, 선물 건네기도

LG 사옥[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최근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다툼이 격화하는 가운데 과거 LG그룹과 GS그룹의 ‘아름다운 이별’이 재조명되고 있다. 두 개 가문의 공동 창업, 대를 이은 경영이라는 공통점 속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LG그룹의 계열분리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2004년, LG그룹 지주회사인 LG는 4월 13일 이사회를 열고 LG를 ‘제조업 부문’과 ‘유통 중심의 서비스 부문’으로 분리하는 회사 분할을 결의했다.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독립하는 첫발이었다. 이 과정에서 잡음이나 불협화음이 나지 않아 계열분리의 모범사례로 거론된다.

LG그룹은 1947년 구인회‧허만정 공동창업자(1세대)가 시작한 락희화학공업사에서 기원을 찾는다. 구인회 창업자가 문을 연 락희화학공업사에 사돈 관계였던 만석꾼 허만정씨가 출자한 것이다. 허만정씨의 3남 허준구(전 LG건설 명예회장)씨가 영업담당이사에 배치되면서 구(具)씨와 허(許)씨 두 가문은 결합했다. 이 관계는 2세대인 구자경‧허준구 회장, 3세대인 구본무‧허창수 회장까지 57년간 이어졌다.

원만한 관계가 지속된 배경 중 하나로 두 가문 원로들의 화합이 꼽힌다. 1995년 2월 LG 구본무 회장이 취임할 당시 구 회장의 부친인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밝히자, 구씨 가문을 포함한 허씨 가문에서도 원로들이 함께 퇴진했다. 구태회 LG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을 비롯해 허준구 당시 LG전선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이 이때 물러났다. ‘신임 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10년 뒤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리 독립했다. LG그룹은 LG전자·LG화학 등 29개 사가 남게 됐고, LG유통·LG홈쇼핑·LG칼텍스정유 등 8개사가 GS그룹으로 편입됐다. 현재 GS건설, GS칼텍스 등 GS그룹의 핵심 사업들이다. 그룹 측은 “분할된 지주회사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영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주요 주주 간의 경영권을 분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계열 분리는 비단 회사를 떼어내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았다. LG스포츠에서 프로축구단 ‘FC서울’을 분할해 GS그룹 지주사인 GS홀딩스에 귀속시켰고, LG강남 타워도 GS홀딩스로 편입됐다.

두 기업은 인적분할 방식으로 회사를 나눴다. 존속법인인 주식회사 LG의 주주에게 분할 비율에 따라 신설회사인 GS홀딩스의 주식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주)LG와 (주)GS는 65:35 비율로 분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분리 당시 기업 상황을 보면 주식회사 LG는 자본금 8794억원, 자산 3조9949억원, 자기자본 2조7534억원, 부채비율 45% 수준이었다. 새로 출발한 GS홀딩스는 자본금 4735억원, 자산 2조1801억 원, 자기자본 1조5264억 원, 부채비율 43%의 재무구조를 갖게 됐다. GS그룹의 지배주주인 허씨 가문 일가는 분할 직후 (주)LG 주식 대부분을 매각한 뒤 (주)GS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 정리를 마무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이 성장하는 동시에 두 오너 가문에서 기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늘어나면서 경영 분리가 필요했고, LG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계산하며 장기간 계열 분리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 2위의 기업에서 핵심 사업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상호 간 이해와 양보가 없었다면 매끄럽게 분리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내 최초로 국산화 전화기로 시험통화하는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 LG그룹]

계열분리 이후에도 친분 유지…배경엔 양보와 화합 

2005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를 승인했다. GS홀딩스는 “비록 계열분리는 됐지만 양가의 인화와 동업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승해 나가되 GS 차원의 차별화된 사업 선택과 투자 집중화를 기하고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착시켜 세계 최고의 선진 지주회사 체제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GS그룹은 사명 변경을 통해 공식적으로 GS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LG칼텍스정유가 GS칼텍스정유로 회사명을 변경했고, 유통(GS리테일), 홈쇼핑(GS홈쇼핑), 건설 부문(GS건설)도 회사명을 바꿨다.

계열 분리 이후에도 LG와 GS그룹 주요 경영진들은 사적인 교류를 이어가며 친분을 유지했다. 당시 LG그룹을 이끌었던 구본무 회장은 2005년 4월 독립 경영으로 새롭게 출범한 GS그룹 허창수 회장에게 그룹 발전을 기원하는 그림을 선물했다.

같은 해 6월 구평회 E1 명예회장 팔순 축하연에는 GS그룹의 허씨 경영인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GS 측에서는 당시 허창수 GS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정수 GS네오텍 사장, 허명수 GS건설 부사장, 허태수 GS홈쇼핑 부사장과 허완구 승산 회장, 허승효 알토 사장이 참석했다. 구씨 가문 경영인들은 출범 1주년을 맞은 GS그룹의 발전을 기원하며 덕담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LG와 GS그룹 모두 오너 4세대로 이어지면서 수차례 계열분리가 이뤄졌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두 가문의 동업 관계가 무난하게 마무리된 것은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의 ‘2024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결과 발표를 보면 올해 전체 대기업집단 가운데 LG는 4위(177조9000억원) GS는 9위(80조8000억원)에 이름을 올렸다. LG의 자산 총액은 177조9000억원, GS는 8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대기업집단의 자산 총액 3074조3000억원 중 두 기업의 자산 총액은 약 8.5%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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