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 중심 ‘로봇 시장’서 SW 기업 ‘네이버’가 주목받는 까닭 [이코노Y]
로봇, 산업 현장서 일상으로 확산…기술 중심 HW→SW로 이동
로봇 SW 시장, 2032년 108조원 규모 형성…국내선 네이버 두각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하드웨어(HW) 기술 업체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로봇 시장에서 한국 최대 플랫폼 기업 네이버가 주목받고 있다. 배달·서빙 등의 일상 서비스 영역에서 로봇 도입 사례가 늘어가면서 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SW) 역량도 점차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오랜 시간 쌓아온 SW 역량을 로봇 분야에 접목하며 다양한 상용화 사례를 만들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사람과 기기 간 ‘공존’이 로봇 시장의 차세대 발전 방향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로봇 편의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SW 중요도가 높아지는 추세”라며 “산업용 로봇은 HW가 중요하지만, 일상용 로봇에서는 SW의 중요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동 경로를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탐색하고, 구동 강도를 안전하게 설정하는 등 ‘로봇의 행동’을 일상에서 녹여내려면 SW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계서 주목받는 로봇 SW
로봇은 HW·SW·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돼 작동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는 로봇의 특성을 공장과 같은 생산·제조와 같은 분야에서 활용해 왔다. 이 때문에 HW 구현 기술력이 로봇 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됐다.
최근에는 일상 서비스에 로봇이 접목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HW 분야뿐 아니라 SW 역량이 시장 경쟁력의 가늠자가 되는 추세다. 실제로 인공지능(AI)·로봇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드니 브룩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명예교수는 최근 한 포럼 무대에 올라 “모든 로봇은 자신이 학습한 결과를 클라우드에 공유하고 업데이트하면서 더 똑똑해질 것”이라며 “로봇은 초거대 AI와 차세대 통신(NEXT G) 등과 융합해 인류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상배 MIT 기계공학과 교수도 “세계 로봇 연구의 90%가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SW가 로봇 분야에 향후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다.
시장에서도 SW를 중심으로 로봇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세계 로봇 시장이 2020년 250억 달러(약 30조원)을 형성하고 있다고 봤다. 이 시장이 2023년 400억 달러로 커졌고, 2030년에는 1600억 달러(약 21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 이 중에서도 로봇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주목했다. 이 분야 시장이 2023년 135억 달러(약 18조2000억원)에서 2032년 800억 달러(약 108조원) 규모로 높은 성장성을 보일 것으로 분석했다.
로봇 제품·서비스를 시장에 공급해 최근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는 기업들의 면모만 봐도 SW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다. 클라우드·AI·디지털전환 등 SW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빅테크 대다수가 로봇 시장에도 진출해 있는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기업은 로봇에 접목할 수 있는 다양한 SW를 시장에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로 세계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 역시 자회사 콤을 통해 일찍이 클라우드 로보틱스 분야에 진출했다. 클라우드 로봇 공학 시장의 경우 규모가 이미 2021년 46억2000만 달러(약 6조2400억원)로 평가됐다. 2022년부터 매년 25.3%씩 성장해 2031년에는 437억3000만 달러(약 59조1000억원)에 이르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네이버가 ‘로봇 SW’ 역량 키우는 이유
네이버 역시 글로벌 빅테크와 마찬가지로 그간 쌓은 클라우드·AI 등 SW 역량을 기반으로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검색·커머스 등 플랫폼 사업을 영위하며 쌓은 SW 역량을 로봇 분야에도 접목,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겠단 취지다.
네이버는 2013년 인터넷 기업으로는 최초로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을 설립했다. 10년 뒤인 2023년에 두 번째 데이터센터 ‘각 세종’까지 완공했다. 최근 로봇 분야의 핵심으로 꼽히는 클라우드 기술력을 오랜 시간 쌓아왔다는 의미다.
실생활에 적용되는 로봇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자율주행 분야도 일찍이 주목한 분야다. 네이버는 2013년 사내 연구 조직인 네이버랩스를 출범시키고 2017년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킨 바 있다. 네이버랩스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등 네이버 서비스의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법인이다. 네이버 서비스를 PC·모바일을 넘어 ‘일상 공간을 플랫폼으로 전환’해 제공하겠단 목표 아래 ‘로봇’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네이버랩스는 특히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비전 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구축한 상태란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인수한 AI 연구소 네이버랩스유럽을 통해 비전 기술을 축적해 온 결과다.
네이버랩스는 2019년 국제컴퓨터비전학회(CVPR)에서 시각적 위치측정(Visual Localization)의 요소 기술인 ‘R2D2’로 글로벌 IT 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네이버랩스유럽은 3차원(3D)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VFM) ‘크로코’(CroCo)를 개발하는 등 지속해서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CVPR에선 이미지를 3D로 재구성하는 AI 기술 도구 ‘마스터’(MASt3R)를 선보이기도 했다.
네이버랩스는 이런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기술은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2024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European Conference on Computer Vision)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랩스는 이번 ECCV 2024에서 ▲정밀지도 등이 없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정확하게 측위가 가능한지를 겨루는 ‘무(無)지도 환경 속 시각적 재측위’(Map-free visual re-localization)▲이미지 내 물체의 3차원 회전과 위치를 얼마나 정확히 추정하는지 겨루는 ‘BOP’(6차원 객체 위치 추정 벤치마크) 챌린지 등 두 부문에 도전해 모두 1위에 올랐다. ECCV는 이미지·영상 등 컴퓨터 비전 분야에 특화된 최신 AI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새로운 기술 화두를 제시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다. 글로벌 빅테크는 물론 비전 분야 세계 최고 석학들이 참석한 가운데 2년 주기로 개최된다.
SW뿐 아니라 로봇 제작과 같은 HW 분야에서도 다양한 실증 사례를 통해 기술력을 입증한 바 있다. CES 2019에서 퀄컴과 함께 세계 최초로 5G 브레인리스 로봇 기술을 성공적으로 시연한 바 있다. 5G가 상용화되기도 전에 각 객체에 컴퓨터를 탑재하지 않고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작동(브레인리스)하는 로봇을 개발한 셈이다. 네이버는 이를 제2 사옥인 1784에 도입하며 국내 최초의 ‘테크 컨버전스 빌딩’를 구축하기도 했다. 현재 1784에 재직하는 직원들은 100여 대 로봇이 제공하는 배송·서빙 등의 서비스를 자유롭게 누리고 있다.
네이버가 지난 3월 ‘사우디판 CES’로 불리는 글로벌 IT 전시회 ‘리프(LEAP) 2024’에서 공개한 로봇 전용 운영체제(OS) ‘아크 마인드’(ARC mind) 역시 좋은 사례다. 네이버는 세계 최초 웹 플랫폼 기반 로봇 OS를 공개하면서 IT업계의 이목을 사로잡기도 했다. 웹 기술 자체를 기반으로 구동되는 OS라 범용성 높다. 네이버는 2015년 웹 브라우저 ‘웨일’ 출시한 뒤 통해 꾸준히 확보해 온 기술을 집대성해 로봇 분야에 접목했다.
네이버의 이런 기술력을 세계 최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주목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리포트를 통해 ‘휴머노이드 기술 제공자’(enabler)로 네이버를 선정했다. 로봇 기술을 뒷받침하는 반도체·배터리 등의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이 여럿 포함됐다. 휴머노이드 기술 분야에서 선정된 기업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네이버는 이런 성과를 만들기까지 연구개발(R&D)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왔다. 회사의 연간 연구개발비용은 ▲2021년 1조6550억원 ▲2022년 1조8090억원 ▲2023년 1조9926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네이버는 연간 매출의 20~25% 수준을 R&D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3년에는 연간 영업이익(1조4888억원)보다 많은 돈을 R&D 분야에 투입하며 기술 경쟁에 대응했다. 회사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R&D에 투입한 금액은 13조4475억원에 달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선제적인 R&D 투자로 검색·브라우저는 물론 AI·로보틱스·클라우드 등 차별화된 기술 포트폴리오를 갖춰왔다”며 “웹 기술 연구도 2012년부터 지속해 왔는데, 세계적으로 자체 OS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한국·중국 등 손에 꼽는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 자립성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부동산 PF 자기자본 현행 3%서 20%로 높인다
2'김가네' 회장, 성범죄 이어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
3'이것'하면 돈 날린다...전문의도 비추하는 '건강검진' 항목은?
4나라살림 이대로 괜찮아?...연간 적자 91조 넘었다
5"노사 화합의 계기"...삼성전자 노사, 임협 잠정합의안 마련
6프라우드넷, 네이버클라우드와 솔루션 사업협력을 위한 파트너십 계약 체결
7SOOP, 지스타 2024에서 ‘SOOP AI’ 신기술 공개
8"목 빠지게 기다린다"...美 유력지, 아이오닉9·EV9 GT 콕 집었다
9검찰, ‘SG사태’ 라덕연 대표에 징역 40년·벌금 2.3조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