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줍줍 청약’ 막히나…누더기 청약제도에 소비자만 혼란
[복잡한 청약]②
동탄역 롯데캐슬 청약 1가구 모집에 294만4780명 몰려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올해 부동산 시장을 강타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줍줍’이라고 불린 무순위 청약이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자격 요건을 없앴던 무순위 청약에 최근 수십만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리면서 과열되자, 정부는 제도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무순위 청약은 부정 청약 등 이유로 계약이 해지된 물량을 다른 실수요자에게 공급하는 절차다. 추첨제로 진행해 무주택기간이 짧거나 부양가족이 적은 실수요자들도 도전할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무순위 잔여세대 청약 경쟁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공급된 무순위 청약 경쟁률 1위는 올해 7월 청약을 진행한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이었다.
과열된 무순위 청약…기존 취지 변질돼
동탄역 롯데캐슬 청약에는 1가구 모집에 294만4780명이 몰렸다. 사상 최고 경쟁률이다. 이어 지난해 6월 분양한 서울 동작구 ‘흑석 자이’가 82만9801대 1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세종 어진동에 분양한 ‘세종 린 스트라우스’의 경쟁률은 43만7995대 1로 3위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올해 2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33만7818대 1) ▲올해 4월 경기 하남시 감일 푸르지오 마크베르(28만8750대 1) ▲올해 4월 세종 어진동 세종 한신더휴 리저브2(24만7718대 1) ▲올해 6월 경기 성남시 중원구 e편한세상 금빛 그랑메종 3차(19만8007대 1) ▲올해 7월 성남시 수정구 판교밸리자이 1단지(15만4688대 1) ▲올해 7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F20-1블록 더샵 송도프라임뷰(11만1157대 1) ▲올해 1월 경기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DMC 한강자이 더헤리티지(10만6100대 1) 등의 순이었다. 최근 5년간 경쟁률 상위 10위 중 흑석 자이를 제외하면 모두 올해 청약을 진행한 물건이다.
무순위 청약이 올해 들어 더욱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집 값 급등과 청약 자격 완화와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무순위 청약에 나온 물건은 수년 전 분양가로 살 수 있어 당첨만 되면 많은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청약 자격 기준을 완화하면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해석이다.
주택가격이 급등했던 2021년, 무순위 청약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같은해 5월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로 청약 자격을 제한했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과 미분양 물량으로 시장이 얼어붙고 지난해 2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 일반분양에서 미분양이 대거 나오자 정부는 제한을 풀었다. 거주하는 지역과 보유한 주택 수에 관계 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여기에 올해 들어 공사비가 상승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분양하는 무순위 청약에 이목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무순위 청약에 수십만명이 몰리면서 유주택자나 해당 지역 비거주자 대신 실수요 무주택자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연희 의원은 “무순위 청약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목적보다는 ‘로또 분양’ 또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기 위한 투기성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제도 개편에 나서기로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0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무주택자인지 여부, 거주지 여부, 청약 과열 지역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안을 몇 가지 세워 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청약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장상황에 따라 제도를 변경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변화가 너무 잦아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청약제도는 1978년 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서 시작됐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올해 입법예고까지 포함해 지난 1978년 제정된 이후 5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170차례나 바뀌었다. 1년에 3번꼴로 개정된 셈이다.
올해에도 세 차례 개편됐다. 지난 3월 혼인과 출산 가구에 더 큰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한 데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신규 출산 가구에 특별공급 ‘추가 청약 1회’를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오는 12월부터는 전용면적 85㎡ 이하, 공시가격 5억원 이하인 수도권 빌라 1채를 보유한 사람도 청약 시 무주택자로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어려운 청약제도…“전면 개편해야”
개정안은 청약 때 무주택으로 간주하는 비(非)아파트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침체한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국토부는 법제 심사를 거쳐 올해 안에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수도권에서 전용면적 60㎡ 이하, 공시가격이 1억6000만원 이하인 아파트·비아파트가 청약 때 무주택으로 인정받는다. 지방에서는 전용면적 60㎡ 이하, 공시가격 1억원 이하인 아파트·비아파트를 보유해도 무주택으로 인정 받는다. 앞으로는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아파트 기준은 그대로 두고 비아파트 기준을 수도권 85㎡ 이하, 공시가격 5억원 이하로 확대한다. 지방 기준은 85㎡ 이하, 공시가격 3억원 이하로 완화된다.
비아파트에는 빌라로 통칭하는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 단독주택, 도시형생활주택 등이 포함된다. 수도권에서 시세 7억∼8억원대 빌라 1채만 소유하고 있다면 무주택으로 인정받으며 1순위 청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청약제도가 자주 바뀌는 탓에 청약자가 알아야 할 내용이 더 많아졌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5월 발간한 ‘주택청약 FAQ’를 보면 총 241페이지에 거쳐 480개의 방대한 양의 질의응답이 담겨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일반 국민이 이를 모두 숙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주택 청약제도를 전면 개편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잦은 제도 변경으로 청약제도가 까다로워지면서 누구나 부적격 청약자가 될 수 있어 단순하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복잡해진 청약제도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너무나 까다로운 제도 때문에 유료컨설팅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청약제도를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전면 개편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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