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까지 팔아 빚 갚았던 첫 번째 사업 실패…성공의 약 됐다”[이코노 인터뷰]
[창업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② 장승래 디버 대표
아이디어보다 고객이 원하는 사업 해야 생존
내년 70억원 규모 시리즈 B 투자 유치 계획
10회에 걸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업도약패키지 지 원사업’을 통해 선정한 스타트업 창업가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창 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은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는 3~7년 사이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 선정된 스타트업 창업가의 생생한 이야기가 후배 창업가들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직장은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이었다. 공채 경쟁률은 수백 대 1을 기록할 정도. 1995년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고, 그 기업에서 시외전화 망 구성에 필요한 무선팀에 합류했다. 유선전화 시절에 무선 통신을 위한 중계소를 설치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1년 중 278일이 출장이었던 시절이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데이콤(현 LG유플러스) 시절 이야기다. 그가 창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데이콤에서 딱 한 번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했을 때이다. 이 제도로 나온 기업이 유명한 인터파크다. 데이콤, 파워콤, LG텔레콤이 LG유플러스로 합병이 됐다. 그렇게 먼 기억 속에서 창업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퀵과 배송 서비스에 디지털을 접목한 디버와 디지털 메일룸 디포스트를 운영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장승래 디버(dver)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장 대표는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보여줄 게 있다”면서 대표 자리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실패했던 사업의 추억이 담겨 있는 우표 세트다.
그는 2009년 LG유플러스에 재직 중에 최초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던 남자 직원이다. 둘째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셋째 아이까지 아내에게 육아를 맡기지 못했다. 회사도 그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허락했다.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돌보면서 한 대학원에서 MBA 과정도 밟았다. 여기에서 그의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MBA 과정에서 만난 동문 중에 우정사업본부에서 우표 팀장을 하던 이가 있었다. “우표가 잘 안 팔린다”는 넋두리를 듣고 장 대표는 “해외에서 불고 있던 한류 바람을 우표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직접 장 대표가 그 사업에 도전했다. 우표를 찾는 팬들의 전화로 우정사업본부가 난리가 났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개인이 도전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우표를 만들려면 비용을 미리 지불해야 했다. 재고 관리가 필수였지만 그런 노하우도 없었다. K-팝 스타의 초상권을 사용하기 위한 지식재산권(IP) 협상에 서툴렀다. IP 사용료도 선결제해야 했기에 자본이 없는 그에겐 지속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BTS 우표까지 선주문 계약을 해냈지만 그는 사업을 접었다. 빚을 갚기 위해 집도 팔아야만 했다. 아이디어와 현실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실패에서 배웠다.
직장에서 열심히 살고 있던 그의 가슴이 다시 뛰게 된 것은 데이콤 시절 봤던 사내 벤처 제도 덕분이다. 2018년 LG유플러스는 처음으로 사내벤처 제도를 시행했고 34개 팀이 지원했다. 그중 4개 팀이 선발됐는데 여기에 그가 만든 팀도 포함됐다. 당시 아이디어는 ‘기존 배송이나 퀵 시장에 테크를 접목한다’ 정도였다. 심사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이 퀵이냐 택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부끄러웠다고 한다.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퀵이나 배송 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회사 일이 끝나면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관련 일을 직접 경험했다.
전화 대신 인터넷으로…고객 불편 해소하니 성장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고서 퀵 시장에 도전했다. 기존 퀵 시장은 고객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많았다. 정보통신(IT) 시대에도 여전히 전화나 문자로만 서비스 이용을 주문해야만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자가용을 이용해 퀵 서비스로 부업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퀵 기사가 많이 이용하는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블로그 등을 이용했다. 퀵 서비스 수수료를 처음에는 무료로 책정했고, 기사들에게 퀵 서비스 비용을 매일 지불했다. 고용·산재보험 등의 안전장치도 마련하면서 디버에서 일하는 퀵 서비스 기사가 어느덧 6만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실시간으로 배송 기사의 위치를 파악하게 했다. 서비스 이용자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했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퀵 기사와 디버 서비스 사용자 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디버는 기업의 우편물과 택배를 디지털로 대신 관리해 주는 디지털 메일룸 디포스트라는 비즈니스로 확장했다. 디포스트도 기업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전화나 문자로 이용하던 서비스에 테크를 접목해 편의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고 공간 설계 및 보안도 디버에서 직접 관리하면서 물품 관리의 안전성도 높였다. 결제 정산 시스템도 기업이 직접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간편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물품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이 디포스트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발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적용했다. 현재는 건물 내에서 로봇이 배송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위워크·하이브·한섬·직방 등이 디포스트를 이용하는 클라이언트가 됐다. 장 대표는 “디버와 디포스트를 이용하는 기업 클라이언트가 전국에 8000여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디버의 성장세는 무척이나 빠르다. 2019년 11월 창업 이후 2023년 9월 30억원의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75억원이나 된다. 캡스톤파트너스·LG유플러스·에스제이투자파트너스·우리금융캐피탈 등이 투자사로 참여했다. 2명이 창업했던 디버의 임직원은 어느새 85명으로 늘었다. 매출 증가율도 매해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10억원 정도이고, 내년에는 17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7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처절한 실패 덕분에 그는 사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고객의 불편을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비즈니스 철학이 디버를 성공의 계단에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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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직장은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이었다. 공채 경쟁률은 수백 대 1을 기록할 정도. 1995년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고, 그 기업에서 시외전화 망 구성에 필요한 무선팀에 합류했다. 유선전화 시절에 무선 통신을 위한 중계소를 설치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1년 중 278일이 출장이었던 시절이었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데이콤(현 LG유플러스) 시절 이야기다. 그가 창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데이콤에서 딱 한 번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했을 때이다. 이 제도로 나온 기업이 유명한 인터파크다. 데이콤, 파워콤, LG텔레콤이 LG유플러스로 합병이 됐다. 그렇게 먼 기억 속에서 창업이라는 것은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퀵과 배송 서비스에 디지털을 접목한 디버와 디지털 메일룸 디포스트를 운영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장승래 디버(dver)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장 대표는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보여줄 게 있다”면서 대표 자리에서 뭔가를 가져왔다. 실패했던 사업의 추억이 담겨 있는 우표 세트다.
그는 2009년 LG유플러스에 재직 중에 최초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던 남자 직원이다. 둘째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셋째 아이까지 아내에게 육아를 맡기지 못했다. 회사도 그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허락했다.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돌보면서 한 대학원에서 MBA 과정도 밟았다. 여기에서 그의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MBA 과정에서 만난 동문 중에 우정사업본부에서 우표 팀장을 하던 이가 있었다. “우표가 잘 안 팔린다”는 넋두리를 듣고 장 대표는 “해외에서 불고 있던 한류 바람을 우표에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직접 장 대표가 그 사업에 도전했다. 우표를 찾는 팬들의 전화로 우정사업본부가 난리가 났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개인이 도전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우표를 만들려면 비용을 미리 지불해야 했다. 재고 관리가 필수였지만 그런 노하우도 없었다. K-팝 스타의 초상권을 사용하기 위한 지식재산권(IP) 협상에 서툴렀다. IP 사용료도 선결제해야 했기에 자본이 없는 그에겐 지속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BTS 우표까지 선주문 계약을 해냈지만 그는 사업을 접었다. 빚을 갚기 위해 집도 팔아야만 했다. 아이디어와 현실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실패에서 배웠다.
직장에서 열심히 살고 있던 그의 가슴이 다시 뛰게 된 것은 데이콤 시절 봤던 사내 벤처 제도 덕분이다. 2018년 LG유플러스는 처음으로 사내벤처 제도를 시행했고 34개 팀이 지원했다. 그중 4개 팀이 선발됐는데 여기에 그가 만든 팀도 포함됐다. 당시 아이디어는 ‘기존 배송이나 퀵 시장에 테크를 접목한다’ 정도였다. 심사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이 퀵이냐 택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부끄러웠다고 한다.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퀵이나 배송 시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회사 일이 끝나면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관련 일을 직접 경험했다.
전화 대신 인터넷으로…고객 불편 해소하니 성장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고서 퀵 시장에 도전했다. 기존 퀵 시장은 고객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많았다. 정보통신(IT) 시대에도 여전히 전화나 문자로만 서비스 이용을 주문해야만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자가용을 이용해 퀵 서비스로 부업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퀵 기사가 많이 이용하는 카페에 글을 올리거나 블로그 등을 이용했다. 퀵 서비스 수수료를 처음에는 무료로 책정했고, 기사들에게 퀵 서비스 비용을 매일 지불했다. 고용·산재보험 등의 안전장치도 마련하면서 디버에서 일하는 퀵 서비스 기사가 어느덧 6만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고 실시간으로 배송 기사의 위치를 파악하게 했다. 서비스 이용자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했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퀵 기사와 디버 서비스 사용자 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디버는 기업의 우편물과 택배를 디지털로 대신 관리해 주는 디지털 메일룸 디포스트라는 비즈니스로 확장했다. 디포스트도 기업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전화나 문자로 이용하던 서비스에 테크를 접목해 편의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고 공간 설계 및 보안도 디버에서 직접 관리하면서 물품 관리의 안전성도 높였다. 결제 정산 시스템도 기업이 직접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간편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 물품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이 디포스트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발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적용했다. 현재는 건물 내에서 로봇이 배송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위워크·하이브·한섬·직방 등이 디포스트를 이용하는 클라이언트가 됐다. 장 대표는 “디버와 디포스트를 이용하는 기업 클라이언트가 전국에 8000여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디버의 성장세는 무척이나 빠르다. 2019년 11월 창업 이후 2023년 9월 30억원의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75억원이나 된다. 캡스톤파트너스·LG유플러스·에스제이투자파트너스·우리금융캐피탈 등이 투자사로 참여했다. 2명이 창업했던 디버의 임직원은 어느새 85명으로 늘었다. 매출 증가율도 매해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10억원 정도이고, 내년에는 17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7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처절한 실패 덕분에 그는 사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고객의 불편을 해결하는 게 먼저’라는 비즈니스 철학이 디버를 성공의 계단에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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