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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의무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움이 되려면…이스라엘에서 배워야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이스라엘 유니콘 전쟁 중에도 늘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병역 경력 중요

CES 2024가 열린 베네치안 엑스포내 '유레카 파크'의 이스라엘 스타트업 부스. [사진 연합뉴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기간이었던 2024년 이스라엘의 유니콘 수는 10여 개 늘어났다. 벤처 투자액도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다. 유니콘 수와 벤처 투자액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동성과 현황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다. 해당 수치는 전쟁 중에도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경제 전반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부정적인 숫자들이 보인다. 지난해 이스라엘은 4만6000여 개의 회사가 생겨났지만 5만여 개가 폐업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년 동안 연간 폐업 기업의 수는 창업 기업의 수보다 많았다. 해당 숫자는 이스라엘의 경제 상황이 어려움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은 거시 경제 생태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는 양가적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진 특별한 속성에 주목한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로 주변 중동국가들과 정치·군사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방은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했고, 첨단 기술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스타트업 첨단 기술을 탑재한 무기들은 전장에서 두각을 보였고,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2024년 탄생한 이스라엘 유니콘의 대다수는 직간접적으로 국방 산업과 연계되어 있다. 

‘스타트업 네이션’의 힘은 병역제도·국방산업 연계

이스라엘 이력서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데, 그들의 이력서에는 부대 정보와 함께 병역 기간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등 관련 정보가 매우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얼핏 빡빡한 회사 업무처럼 보일 정도이다. 병역 미필 여부, 보직, 복무 기간 정도만을 간략히 기술하는 국내 이력서와 다르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이력서에 병역 사항을 자세히 기술하는 이유는 있다. 그들에게 병역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작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소속 부대와 복무 중 수행 업무는 그들의 후속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원자들은 면접에서 군생활 동안 복무한 부대나 수행 업무에 관련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기업들은 특수 부대, 첩보 부대, 정보 부대에서 복무한 이들을 고급 인력으로 보고 그들을 우선 영입하려고 한다.

병역 제도는 이스라엘을 스타트업 선도 국가로 발돋움 시킨 토대로 평가받는다. 이스라엘은 글로벌 무대에서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이라고 불린다.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가 사울 싱어(Saul Singer)가 그의 저서 ‘스타트업 네이션’에서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2013년 그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유대인 특유의 담대한 도전 정신을 의미하는 후츠파(chutzpah)와 함께 이스라엘 병역 제도와 창업의 연관성을 설명하는데 강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책은 이스라엘 병역 제도가 스타트업 생태계와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예시들로 가득하다. 

그의 강연과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두 개의 군사 집단이 있는데, 바로 탈피오트(Talpiot)와 8200부대이다. 탈피오트는 과학기술 전문 장교 양성 프로그램이다. 소속 장교들은 복무기간 동안 국방 기술 발전과 혁신 임무를 수행한다. 아이언 돔(iron dome)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최신 미사일 대공 방어 체계가 그들의 아이디어였다. 

8200부대는 이스라엘 정보국 산하의 첩보 부대이다. 복무 기간 동안 부대원들은 첨단 통신 보안 기술을 배우고, 사이버 공격이나 정보 보안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화제가 된 무선호출기 폭탄을 준비한 배후로 지목된 부대이기도 하다. 

탈피오트와 8200부대는 이스라엘을 창업 선도국으로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전역자들 일부는 복무 기간 동안 배운 혁신 기술을 활용해서 창업한다. 이스라엘 창업자들의 80% 정도가 탈피오트 출신이라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전역 후에도 탈피넷(Talpinet)이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동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현대 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최근에는 8200부대 출신들이 설립한 창업회사도 실리콘밸리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작년 7월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으로부터 230억 달러, 당시 우리 돈 약 32조 원에 인수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해서 화제가 된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위즈(Wiz)이다.

이제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창업자의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닌 출신 부대를 묻는 질문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 견학 중인 현지 군인들. [사진 연합뉴스]

병역제도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마중물로 

2025년 이스라엘의 경제 성장률은 4%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기업들이 도산하고 생활 경제가 붕괴 할 뻔한 위기를 맞았지만 군 복무 제도가 길러낸 창업자와 스타트업의 활약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2% 미만으로 예상된다. 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보다 낮은 수치이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모두 병역제도를 의무화하고 있는 국가이다. 장기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우리 경제에 병역제도와 국방산업을 기술 혁신과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의 마중물로 활용한 이스라엘 사례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이력서에도 병역 사항이 복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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