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한국 시장 밸류업의 방향성 [스페셜리스트 뷰]

코리아 디스카운트, 단순 저평가가 아니다
자본 재배치·수익성·주주환원 개선해야
해소 가능한 문제이자 기회…기업 노력과 당국 지원 필요

2024년 증시 폐장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코스닥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나라 증시는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초 0.97이었던 KOSPI 상장기업의 합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025년 1월 말 0.88까지 하락했다. 대내외적으로 기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시장가격이 오랜 기간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투자자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 1년간 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밸류업(value-up) 방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변화가 더디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답답함만 복리로 불어나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의 밸류업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저평가 양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 가능성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 어디서 비롯되었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은 어느새 한국 주식시장의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을 설명하는 상징적 용어가 됐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주가가 구조적으로 제값을 받지 못하고 평가절하된다는 인식은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PBR 수준만 봐도 일견 수긍이 간다. 산업적, 시기적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국내 상장기업의 평균 PBR은 미국, 영국, 독일은 물론 대만,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국가 간 PBR을 비교하는 것만으로 저평가 여부를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장부상 자산이 미래의 초과수익(abnormal profit) 창출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낮은 PBR은 오히려 합리적인 평가일 수 있다. 또한, 회사의 이익이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환원될 것이라는 신뢰가 부족하다면 이 역시 낮은 PBR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기업은 해외 주요국 상장기업 대비 수익성이 낮고, 자본의 비효율적 배분과 인색한 배당 정책으로 인해 자본효율성 측면에서도 뒤처지는 모습을 보인다([그래프 1] 참조). 

[그래프 1] 2010~2022년 주요 6개국 상장 비금융 기업의 평균 PBR 및 ROE, 평균 부채자본비율 및 배당성향. [자료 Refinitiv, 자본시장연구원]


그렇다면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장 직관적인 검증 방법은 한국 기업을 디스카운트가 없는 시장, 이를테면 미국의 나스닥 시장에 상장해 보는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저평가된 것이라면 미국 시장으로 이전하는 즉시 PBR 1 미만 상태를 벗어날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실험이 어렵지만 통계적으로 가상의 실험은 가능하다. 

우선,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독일, 대만, 일본 등 6개국 시장을 하나의 통합된 시장으로 가정한 다음 본질가치가 유사한 기업들이 통합된 증시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가치를 형성하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때 펠덤-올슨 모형(Feltham-Ohlson, 1995)의 순증관계(clean surplus relationship) 가정을 활용하면, 장부가치를 ▲순자산 ▲수익성 ▲주주환원의 요소로 확장하여 본질가치를 산출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산업 및 시기별로 글로벌 유사 성과 기업과 비교해 우리나라 기업의 프리미엄 수준을 정량화할 수 있으며 이를 적정 본질가치 대비 시장가치의 초과 비율(abnormal value ratio: 이하 AVR)로 나타낼 수 있다. 만약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만연하다면 AVR 값은 1 미만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한국 상장기업이 미국, 영국, 독일, 대만, 일본 등 해외 시장으로 이전할 경우 더 높은 PBR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주요 6개국 상장 84,729개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 상장기업의 시장가치는 본질가치 대비 평균적으로 저평가 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미국 다음으로 높은 시장가치를 형성하고 있으며, 대만, 일본, 독일, 영국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양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한국 기업은 해외 주요국 증시에 상장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높은 PBR을 부여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래프 2] 패널 A에서 국가별 합산 AVR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 기업은 본질가치 대비 약 0.6% 더 높은 시장가치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2.4%에는 못 미치지만, 대만의 0.5%보다는 높고, 영국, 독일, 일본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둘째, 국내 주식시장을 디스카운트가 만연한 시장으로 인식해 온 부분에 대해서도 보다 객관적인 비교와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프 2] 패널 B의 국가별 AVR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시장일수록 분포의 양 끝단이 두터운 모습을 보인다. 이는 본질가치 대비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한 기업도 많지만 동시에 큰 폭으로 할인된 기업도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시장에서는 기업의 성장성이 강조되는 동시에 장기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가 음(-)인 사양산업에 속해 있거나 주주환원이 저조한 기업에 대해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PBR은 한국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단일 지표로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래프 2] 패널 C를 보면 한국 기업은 만성적으로 낮은 PBR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AVR은 꾸준히 양(+)의 값을 유지한다. 이는 시장가치와 장부가치만을 단순 비교하는 PBR로는 한국 기업의 실질 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순자산뿐만 아니라 수익성과 주주환원 요소를 고려한 본질가치와 비교하면 현재의 낮은 주가 수준은 전반적으로 저하된 수익력과 저조한 주주환원을 감안할 때 적정한 평가(valuation)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프2, 패널 A‧B‧C]2010~2022년 주요 6개국 비금융 상장기업의 본질가치 대비 초과 시장가치 비율(AVR)의 분포. [자료 Refinitiv, Bloomberg, 자본시장연구원]

한국 증시 저평가의 구조적 원인: 수익성과 자본효율성의 한계

한국 주식시장에서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저 PBR 현상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해외 주요국 대비 체계적인 저평가로 해석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이는 오히려 기업의 낮은 본질가치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순자산, 수익성, 주주환원의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한 본질가치로 비교해 보면 한국 상장기업들은 해외 주요국 기업들과 비교해 평균적으로 높은 시장가치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단순한 거버넌스 개선이나 외형적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며 기업의 본질가치를 높이는 근본적인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순자산의 효율적인 재배치 ▲수익성 개선 ▲주주환원의 강화가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기업의 수익성이 현저히 저하된 상황에서는 이를 의미 있게 개선하기 전까지 단기간에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는 장기간 저조한 주식수익률을 기록한 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론적으로 자기자본을 조달하는 비용은 무위험수익률과 시장 및 기업 특성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으로 구성되기에, 무위험수익률은 자본비용의 출발점이자 최소한의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래프 3]을 살펴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기업의 약 65%가 지난 10년 동안 주식수익률이 무위험수익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위험자산은 본질적으로 높은 변동성을 내포하지만, 배당수익률을 반영한 주주의 총수익률이 매우 장기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단기 국채 수익률보다 저조하다는 것은 위험 자본에 투자한 투자자 관점에서 적절한 보상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그래프 3]유가증권ㆍ코스닥시장 상장 12월말 결산 비금융 상장기업 대상 연도별 과거 10년 주식수익률(R)이 과거 10년 무위험수익률(Rf)을 밑도는 장기 주식수익률 저성과 기업 비중. [자료 Dataguide, 한국은행, 자본시장연구원]


물론 수익성이 낮아 본질가치가 저하된 기업은 주식수익률도 저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당수 국내 기업은 견고한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프 4]를 살펴보면, 2024년 말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30%에 해당하는 대규모 기업의 76%는 지난 10년 동안 기록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같은 기간의 주식수익률을 상회했다. 이는 이들 기업이 현저히 낮은 주가수익률을 일정 부분 보전할 정도의 이윤은 유지해 왔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대규모 기업 중 26%는 지난 10년간 ROE가 주식수익률 대비 연평균 10% 이상 높았다. 17%는 연평균 20%를 초과하는 우수한 성과를 기록했다. 이러한 기업들이 현금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과 같은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실행한다면 저조한 주가수익률을 효과적으로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KOSPI 지수 전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시가총액 상위 30%의 기업들이 KOSPI 지수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변화는 시장 전반에 걸쳐 유의미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 4]유가증권ㆍ코스닥시장 상장 12월말 결산 비금융 상장기업 중 연도별 과거 10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과거 10년 주식수익률(R)을 웃도는 초과 ROE 기업 비중. [자료 Dataguide, 한국은행, 자본시장연구원]


한국형 밸류업: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결론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은 그 방식과 지속성에 따라 충분히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우선 장기간 무위험 채권 수익률보다 저조한 주식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들은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구체적인 개선 계획을 공시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문제 진단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긍정적인 점은 대규모 기업일수록 낮은 주가수익률을 보전할 수 있는 견고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주주환원 정책의 적절한 확대를 통해 기업가치의 즉각적인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주가지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지수 상승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상반기 은행주의 재평가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탄탄한 기초체력과 건전한 거버넌스를 갖춘 기업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가격과 본질가치 간 괴리를 빠르게 좁히는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구조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저하된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자본의 효율적 활용과 전략적 재배치를 통해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은 사업의 수명주기와 재투자의 효과성을 면밀히 분석하여 주주의 총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주주환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장기간 해소되지 않고 있는 극심한 저평가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법제적 접근이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당수 자산주가 청산가치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시장 효율성의 왜곡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시장 왜곡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주 권리 보장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특히 기업 간 인수합병(M&A)에 대한 시장 압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합병 대가와 공개매수 가격이 공정하게 산정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저평가된 기업들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아울러 주주 행동주의의 활성화를 통해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경영 간섭이 아닌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 건설적이고 전략적인 관여 활동을 통해 경영진의 실질적 변화와 기업가치의 장기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돼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가 가능한 문제이자 기회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제고하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노력과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한국 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받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외교에 '약자 편'은 없다...젤렌스키 향한 '잔혹한 조롱', 사퇴 압박까지

2예정된 '천국행 열차'?...트럼프 점지한 '비트코인', 7일 운명 갈린다

3“오픈런 필수” 스타벅스 ‘핑크 스탠리’ 온라인 프로모션

4“싸게 팔면 골프채 공급 중단” 대리점 감시한 던롭, 과징금 부과

5 박근혜 "尹 수감, 마음 무거워…집권당, 한마음으로 뭉쳐야"

6‘개강 D-1’ 전국 의대 40곳 중 10곳 수강신청자 ‘0명’

7‘K팝 가수 최초’ 블랙핑크 리사, 오스카 시상식 축하 공연

8“3월 3일은 무슨 날?” 한국인이 열광하는 ‘삼겹살 데이’

9정시 추가모집에도 ‘정원 미달’ 지방대학 40곳

실시간 뉴스

1외교에 '약자 편'은 없다...젤렌스키 향한 '잔혹한 조롱', 사퇴 압박까지

2예정된 '천국행 열차'?...트럼프 점지한 '비트코인', 7일 운명 갈린다

3“오픈런 필수” 스타벅스 ‘핑크 스탠리’ 온라인 프로모션

4“싸게 팔면 골프채 공급 중단” 대리점 감시한 던롭, 과징금 부과

5 박근혜 "尹 수감, 마음 무거워…집권당, 한마음으로 뭉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