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1000조 시대…은행, 수성 총력전
[WM 확전]③
증권사 추격받는 은행권…패권 다툼 치열
은행, 고객 기반‧데이터 역량 경쟁력 강화

[이코노미스트 박관훈 기자] 은행권이 향후 1000조원 규모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주도권 방어에 나서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증권사로 상당한 자금이 옮겨가면서 위기감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강점을 갖춘 분야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은행권은 온·오프라인 접근성을 높이고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한층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은행 vs. 증권사…퇴직연금 ‘무한경쟁’
은행권이 퇴직연금 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것은 현재 400조원가량인 시장 규모가 약 10년 후 1000조원 시장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규모는 2037년 1000조원, 2055년 1858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은행권 입장에서는 반드시 수성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야 할 시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31일 도입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이후 증권사에 상당한 자금을 빼앗긴 것도 자극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퇴직연금 시장은 은행권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왔다. 특히 기업형 퇴직연금(DB, DC)의 경우 은행의 오랜 고객기반과 기업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관리 규모를 키워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증권사들이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며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국내 14개 증권사의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103조9257억원으로 연간 성장률 19.8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12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198조481억 원에서 225조7684억 원으로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178조7913억원으로 전년 동기(155조3394억원)보다 23조4519억원 늘었다.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신한은행(45조9154억원)이었고, 그 뒤가 ▲국민은행 42조481억원 ▲하나은행 40조2736억원 ▲우리은행 27조989억원 ▲NH농협은행 23조4553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신한은행은 IRP 적립금이 약 3조300억원 증가해 은행권 순증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신한은행의 IRP 적립금은 15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증가율에선 하나은행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나은행은 40조2736억원으로 전년보다 19.5% 적립금이 늘었다. 증가액도 6조5748억원에 달해 금융권 최대 증가율·증가액을 기록했다.

차별화 전략으로 맞선 5대 은행의 ‘반격’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5대 은행들은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포트폴리오 고도화, 비대면 서비스 강화, 연금전문가 배치 등 서비스 재정비로 반전을 노리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의 가장 큰 고민은 퇴직연금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방안”이라며 “고도화된 맞춤형 포트폴리오 개발과 온·오프라인 접점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WM고객그룹 연금사업본부 내에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 협의체’를 신설했다. 연금사업본부장 주관으로 상품, 고객·수익률 관리, 제도·은퇴 노후 등 고객 수익률 제고를 위한 과제를 추진한다. 아울러 인공지능(AI) 상담사가 고객과 상담하는 ‘퇴직연금 고객관리 AI 콜봇’도 도입해 플랫폼 고도화에도 나설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고객 관리와 편의성 증대에 주력하고 있다. 신한SOL뱅크 앱의 ‘나의퇴직연금’ 서비스를 올 초 리뉴얼해 비대면 서비스 편의성을 개선했다. 또 퇴직연금 고객관리센터에 고객 종합 분석을 통한 최적의 퇴직연금 운용 상담 체계를 구축하고 수익률 관리를 위한 자산관리 컨설팅을 지원한다.
또한 신한은행은 2022년 은행권 최초 ‘퇴직연금 고객관리센터’를 오픈하고 은퇴 설계 전문 컨설턴트들이 33만여 고객에게 포트폴리오 중심의 자산 운용 및 수익률 관리를 위한 상담 서비스를 진행했다. 신한은행은 은행권 최다인 190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라인업 구축, 영업점 무서류 IRP 신규 서비스 도입 등을 통해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21년 은행권 최초 퇴직연금 ETF 상품을 판매하고, 2022년 은행권 최초 채권 직접투자 도입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0월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를 중심으로 퇴직연금 시장 공략에 고삐를 죄고 있다. 이어 지난해 말 퇴직연금 등 연금자산 현황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하나더넥스트 연금플래너’를 선보였고, 현재 전국 7곳인 연금 전문 상담센터 ‘연금 더드림 라운지’를 올해 최소 2곳 이상 추가 오픈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총 435개의 실적배당형 상품 라인업을 통해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거점 168개 영업점에 연금전문가(PA)를 배치해 연금 자산관리 및 전문 상담을 지원한다.
NH농협은행은 상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난 2월 기준 ETF 총 105종, 펀드 총 528종까지 확대해 상품 라인업을 강화했다. 또한 최근에는 국내 은행권 퇴직연금 최초 DC‧IRP 고객을 대상으로 한 ‘KIWOOM 미국양자컴퓨팅 ETF’를 출시했다. 해당 상품은 양자컴퓨팅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반영해 아이온큐 등 양자 컴퓨팅 관련 미국 핵심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국내 최초 ETF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 ETF 상품으로 글로벌 신성장산업 투자 상품과 고배당 및 가치주 상품 등 타사업자들과 차별화된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퇴직연금 고객들의 장기적인 자산 성장과 우수한 수익률 달성을 위한 경쟁력있는 상품 소싱 및 출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반전을 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증권사 대비 상대적으로 저조한 수익률 제고가 뒤따라야 한다고 관측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이 각각의 강점을 갖지만 실물 이전 제도 이후 유리해진 업권은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라며 “은행은 지점 접근성 등 증권사에 비해 차별화된 강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고객 성향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고 접근성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단순 수익률 제고뿐만 아니라 고객의 편의를 높이고 영업력을 강화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