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귀여우면 끝!”...마음의 빗장을 여는 ‘귀여움의 힘’ [스페셜리스트 뷰]
- 귀여움이 소비를 지배하는 시대
단순 유행을 넘어 지속적인 소비 관계 형성

귀여움이 소비 생활은 물론 언어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귀엽다’는 말의 사용 빈도가 늘었다. ‘예쁘다’의 하위 호환 격으로 쓰이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괜찮다’ 이상의 일반적이고 무난한 칭찬 표현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로는 예쁘고 멋진 것을 능가하는 최상급 평가 언어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아직도, 소비생활은 물론 언어적, 사회문화적으로도 귀여움이 지배하는 영토를 넓혀 가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세상의 트렌드와 다소 비켜나 있거나 이 시대를 관통하는 궁극의 소비 감성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렇다면 약간 조급한 마음을 갖고 바짝 다가앉기를 권한다.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뭔가를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혹자는 ‘귀여움’ 하면 ‘베이비 스키마’를 먼저 떠올린다. 베이비 스키마 이론은 큰 머리, 큰 눈, 통통한 뺨, 짧고 두꺼운 팔다리, 통통한 체형 등 유아의 신체적 특징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생김새는 귀엽거나 껴안고 싶은 것으로 인식되어 다른 개체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행동을 유발한다는 이론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귀엽다고 느끼는 대상은 다양하다. 우선 작고 천진한 아기나 아이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있겠고, 작년 초 열풍을 일으켰던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 역시 귀여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뺏었다.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포켓몬이나 산리오 캐릭터들은 물론, 다소 허술한 그림체와 스토리로 인기를 얻은 먼작귀나 망그러진곰, 최고심, 듀 가나디 같은 캐릭터들도 그렇다. 공고한 팬덤을 가진 아이돌이나 배우에게도 귀엽다는 감정은 적용된다.
여기까지 나열한 것은 모두 형태와 실체가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귀엽다는 감정은 대상 뿐 아니라 상황에 의해서도 촉발된다. 특히 Z세대 간이 설문을 통해 파악한 이들이 생각하는 귀여움이란 의도된 행동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포착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악의 없는 작은 실수를 했을 때, 평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의 허술한 면을 봤을 때, 본심이나 진심을 숨기지 못하고 들켜버렸을 때 등이 해당하는데, 말하자면 솔직한 감정이 투명하게 드러나거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이런 순간들, ‘귀여움 모먼트(cute moments)’의 핵심은 바로 솔직함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다. 결국 귀여움이란 완벽하지 않은 순간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소비의 언어와 함께 증가하는 ‘귀여움’의 감성
중요한 건 저 귀엽고 무해한 것들이 지갑을 열어젖힌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괴로워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게 아니라 기꺼이. 인기 캐릭터들은 특히 최근에 유통가를 중심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콜라보 상품의 매진과 팝업의 집객을 보장하는 최고의 마케팅 수단으로 대접받고 있다. 아이돌 팬덤은 마음의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것은 물론 최애의 앨범, 티켓, 굿즈를 매진시키는 강력한 구매력으로 마음을 증명한다. 귀여운 것은 마음만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마치 햇볕처럼 지갑을 순순히 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귀여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했던 건 2022년 가을이었다. 다음 해 소비트렌드 전망을 위한 분석을 진행하던 때였는데, 소셜빅데이터를 분석하던 팀원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며 보여주었다. ‘사다, 결제하다, 구매하다, 구입하다, 사고싶다, 지르다, 쟁이다..’ 등 사람들이 다양하게 사용하는 소비의 언어와 함께 언급된 감성어들 중 ‘귀엽다’의 언급량이 2020년 이후 두드러지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뭔가를 사거나 선택하는 소비의 과정에서 말하는 감성어들은 특별하지 않다. 게다가 사람들의 생각이나 언어 습관은 어지간해서는 급격히 변하지 않기에 연관어 순위 Top 5 이내로 색다른 키워드가 진출하는 일도 흔치 않다. 그런데 2022년 소비의 언어와 함께 다니는 감성연관어 순위에서는 ‘귀엽다’가 4위로 나타났다. 소비나 구매 상황에서 습관처럼 빈번하게 사용되는 감성어들이지만, ‘귀엽다’가 무려 ‘괜찮다’를 제치고 Top 5 안에 이름을 올렸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뭔가를 사거나 원하는 소비와 욕망의 메커니즘에 ‘귀엽다’는 감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해 사람들이 귀여워서 산 것들을 살펴보니, 포켓몬빵, 노티드 도넛, 크록스 지비츠참 등이 최상위권에 나타났다. 특히 포켓몬빵과 함께 노티드는 캐릭터, IP 마케팅 전성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고, 요즘은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 콜라보 상품들, 귀여운 굿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초가 되었다.
‘귀여우면 끝’, 이제 거의 왠만한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관용구가 되었다. 예쁘다는 말은 어느 정도 객관성을 띠는, 팩트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귀엽다는 말은 팩트와 관계가 없다. 누군가는 귀엽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귀여움이라는 감성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다. 작년 초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까지 귀여움의 정점에 있었던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여태 그리워하는데, 누군가는 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젓지 않는가? 좋아하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예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귀엽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귀여우면 끝’이라는 얘기는 ‘이미 마음을 줘버렸으니 끝’이라는 뜻이다.

귀여움은 순간적으로 가볍게, 마음을 무장해제 하고 지갑을 여는 것도 사실이지만, 스토리텔링과 감정 이입을 통해 지속적 관계를 시작하는 데 마중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 귀여움은 가까이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갖고 싶게 하는 마음, 즉, ‘접근 동기’를 높여주는 감성이라는 점이 이론적으로 입증돼 있다. 쇼핑몰에서 아기나 강아지 사진을 인터뷰 테이블에 놓으면 사람들이 더 기꺼이 설문에 응하는 경향이 있으며, 개와 함께 있으면 도움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귀여움은 하필 지금, 대체 왜?
흉폭한 성격을 지닌 곰이라는 동물은 테디베어를 통해 무방비하고 귀여운 존재로 거듭났고,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편안하고 안전한 감각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전쟁의 공포와 경제 불황의 고통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시기, 어린이들이 꼭 끌어안고 잠을 청하고 군대에 징집된 사람들이 집을 떠올리며 간직했던 곰인형은 잃어버린 일상의 평온함을 귀여운 생김새와 포근한 촉감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최근 귀여움의 인기가 급격히 상승한 배경에서 비슷한 맥락을 발견한다. 팬데믹 시기 경험한 일상의 무너짐, 그리고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급격한 기술 변화,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초래되는 불안함이 귀여움의 부상을 부채질했다. 불확실성만큼 사람을 초조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특히 어린 시절 풍성한 문화 경험은 당시 즐겼던 콘텐츠나 캐릭터 IP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고, 노스탤지어는 사람들이 과거의 경험을 재현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여 과거와 연관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게 만든다.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캐릭터와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Z세대와 알파세대는 어떨까? 이들의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에서 캐릭터나 콘텐츠 IP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 지금 시간을 보내는 것, 지금 추억을 쌓는 것들이 20년 후, 30년 후에도 이들의 지갑을 열게 될 것이다.

필자는 20여년 간 리서치와 브랜딩, 마켓 인사이트(MI) 등 마케팅 직무를 두루 경험했으며 지금은 광고대행사 대홍기획에서 AP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장과 소비자를 분석해 왔으며, 알파부터 베이비부머까지 전 세대의 소비욕망을 분석한 도서 '세대욕망'(공저, 2024)과 소비를 불러 일으키는 귀여움 감성을 다룬 도서 '귀여워서 삽니다'(2025)를 썼다. 관찰과 직관, 데이터를 활용해 현상의 인과와 영향 그리고 패턴을 추적하고 밝혀내는 일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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