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불확실성의 시대, 스타트업이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방법 [순화동필]
- 투자자, 예측이 아닌 증거 통해 투자 결정
실행력·시장성·확장성...투자 유치 성공 키워드

[홍진만 포도테라퓨틱스 대표]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가이자 베스트셀러 ‘린 스타트업’의 저자인 에릭 리스(Eric Ries)는 스타트업을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도록 설계된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처럼 스타트업은 뚜렷한 수요나 고객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며, 시장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불확실성은 창업 후 일정 시점까지 자금이 바닥나는 구간,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로 이어진다. 통계에 따르면, 이 고비를 넘겨 3년 이상 생존하는 스타트업은 10%에 불과하다.
죽음의 계곡을 버텨내기 위해 외부 투자유치는 필수불가결하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전까지,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자금에 의존해 인력과 인프라를 확보하여 운영하며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유치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2023년 국내 스타트업 투자금은 전년 대비 약 53% 감소했고, 투자 건수는 36% 줄었다. 2024년에 투자금 규모는 소폭 회복됐지만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전체의 18.6%에 그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5년 1분기 기준 초기 투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하며 시장의 보수적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존재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확보한 팀이었다. 투자자는 리스크를 감수하지만, 아무 근거 없는 희망에 투자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다음의 질문에 잘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디어가 아닌 실행력 증명해야
투자자는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에 투자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팀이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출시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실행력은 단순한 추진력 이상의 개념이다. ▲기술 구현 능력 ▲일정 준수 ▲문제 해결 역량 ▲자원 동원 능력 ▲팀워크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스타트업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해왔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최소기능제품(MVP)의 개발 여부 ▲초기 사용자 피드백 ▲PoC(개념검증) ▲파일럿 테스트 등의 실적은 실행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다.
실행력은 단기적인 성과 이상의 의미도 갖는다. 투자자들은 종종 “이 팀이라면 뭘 맡겨도 결국 해낼 것 같다”는 생존력을 원한다. 환경이 바뀌고, 전략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도 결국엔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과를 만들어낼 것 같은 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은 숫자 이상의 신뢰를 준다.
과거의 말과 현재의 결과 사이에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이 팀은 자신들이 한 말을 실제로 해낸다”는 증거가 쌓일수록, 투자자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실행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물고기 있는 곳에서 낚시해야...시장성 증명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의 수요가 없다면 사업은 실패한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시장성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의 신선함이나 독창성보다, 누가 왜 이 제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 이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잘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미리 입증해야 한다. ▲잠재 고객 대상 설문조사 ▲인터뷰 ▲프로토타입 기반 유료 테스트 ▲베타버전의 사용자 반응 및 리텐션 지표 등은 이를 입증하는 유효한 수단이다. 투자자는 이런 자료를 통해, 아직 출시 전이라 하더라도 시장에서 실제 구매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전체 시장 규모(TAM)·유효 시장 규모(SAM)·확보 가능 시장 규모(SOM) 분석을 통해 시장 규모를 수치화하고 경쟁사를 분석해 시장 내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런 자료는 단지 보고용이 아니라, “이 시장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이 지점을 노리고 있다”는 전략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아무리 정교한 낚시 도구를 만들어도, 물속에 물고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뛰어난 낚시꾼은 정교한 장비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물고기가 실제로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마찬가지로 시장성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실제 수요가 있는 지점을 발견해내는 능력이다.
특히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한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핵심 자산이 된다. 실제 고객이 존재하고, 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제품이 설계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시장성과 관련된 핵심 신뢰 요건이 된다.
생존 넘어 ‘폭발적 성장’ 가능 여부 보여줘야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사업이다. 그렇기에 투자자들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다. 이 기대 수익은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제품 생산과 마케팅이 본격화되었을 때 급격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투자 이후 급격한 확장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가 투자 유인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증명해야 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J커브형 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인지 여부는 가장 핵심적인 평가 기준 중 하나다. 고객 수 증가에 따라 수익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동시에 비용은 일정 수준 이하로 효율적으로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초기 시장을 신속하게 선점할 수 있는 역량 역시 중요하다. 이는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하고, 후속 투자 유치를 위한 중요한 설득 요소가 된다. 즉, 단순한 ‘확장 가능성’의 언급을 넘어 얼마나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확장 범위의 유연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규모의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은 인구 구조상 내수 시장의 성장에 한계가 뚜렷해 수출 가능성이나 해외 진출을 통한 스케일업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른 지역, 국가 혹은 유사 산업군에서도 자연스럽게 통할 수 있는지 여부가 투자자의 판단 핵심 기준이다.
하지만 빠른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가치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에서 나온다. ▲기술력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 ▲브랜드 ▲고객 라인 구조 ▲규제적 진입장벽 등은 후발주자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요소다. 스타트업은 자신이 가진 경쟁력이 단기적인 ‘속도’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우위에 기반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투자를 만든다
지금의 투자 시장은 여러모로 ‘빙하기’에 가깝다. ▲고금리 ▲경기 침체 ▲투자 회수 환경의 악화 ▲특정 분야로의 쏠림 등으로 초기 스타트업은 더욱 어려운 경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기업은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를 만들고,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며, 확실한 수요와 실행력을 보여주는 팀이다.
투자자는 결국 “이 팀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확신을 원한다. 그 확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 가설이 아니라 실행, 가능성이 아니라 근거로부터 생긴다.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숫자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해내고 있다”는 현실적인 증거를 하나씩 쌓아가는 일이다. 그 증거들이 모여 결국 투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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