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K팝 데몬헌터스’와 ‘킹 오브 킹스’의 교훈[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 넷플릭스 시청률 전 세계 1위 기록한 K팝 데몬헌터스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열광…우리 스스로가 ‘제작과 창작의 중심’이 돼야

[허태윤 칼럼니스트] 최근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한국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소니픽처스가 기획·제작하고 넷플릭스가 공개한 ‘K팝 데몬헌터스’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순수 한국 기술과 제작진이 만든 ‘킹 오브 킹스’다. 이 두 작품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잠재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교훈을 던진다.
K팝 데몬헌터스는 넷플릭스 시청률 전 세계 1위는 물론이고, OST마저 각종 글로벌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다. 2025년7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은 누가 뭐래도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다. 또한 애니메이션 자체 만으로 디즈니와 픽사가 양분하던 애니메이션 시장에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작품의 성공은 글로벌 브랜딩 관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혁신을 보여줬다.
K-팝 브랜딩 혁신: 서사 기반 아이돌 브랜딩
우선 K팝 데몬헌터스는 K팝 아이돌 브랜딩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복시켰다. 서사 중심의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먼저 구축하고, 그 안에서 탄생한 가상 캐릭터를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혁신적 브랜딩을 도입한 것이다. 극 중 가상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강력한 내러티브 컨텍스트 안에서 먼저 존재감을 확보했다. 팬들은 이들의 음악적 재능보다는 스토리 속에서 펼쳐지는 캐릭터의 성장과 갈등, 관계성에 먼저 몰입했고, 이후 자연스럽게 음악적 결과물까지 소비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는 기존의 '아이돌 → 음악 → 팬덤' 구조를 '서사 → 캐릭터 몰입 → 아이돌화 → 음악 → 확장된 팬덤'으로 재편한 것으로, ‘스토리텔링 기반의 IP브랜딩’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확장성 측면에서 데몬헌터스는 실제 아이돌이 겪는 나이, 군 입대, 스캔들 등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아직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외전, 시리즈화나 다른 장르의 콘텐츠로의 끊임없이 확장이 가능한, 누가 봐도 무한한 확장성을 품고 있다.
특수성을 통한 보편성 획득
이 작품이 보여준 두 번째 브랜딩 인사이트는 한국 문화의 특수성을 보편적 가치로 전환시킨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이다. 영화의 곳곳에는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보여 주는 깨알 같은 장치들이 등장한다. 남산타워, 잠실, 삼성역, 서울 성곽길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매력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다.
수저 아래 티슈를 까는 K-식사 매너, 멜로망스 '사랑인가 봐' BGM과 함께 슬로우모션에 빠지는 K-드라마 클리셰 등은 한국 시청자에게는 공감과 웃음을, 해외 시청자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심지어 영화에는 우리 민화 작호도(鵲虎圖)에 등장하는 더피(Derp)라는 이름의 호랑이와 수지(서씨:Sussie)라는 까치 캐릭터가 조연으로 톡톡히 역할을 한다. 이는 과거 로컬의 특수성을 글로벌 수용자의 보편성에 맞춰 순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팬덤의 능동적 참여 유도: IP 가치의 재정의
세번째로 잘 만들어진 서사와 진정성이 있다면 가상의 아티스트도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실존하지 않지만 전 세계 팬들이 실제 아이돌처럼 사랑하고 있다. 이는 IP의 가치가 더 이상 콘텐츠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팬덤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는가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했다. 그들은 SNS를 통해 한국 문화 디테일의 창작 의도를 공유하고, 캐릭터 소품에 담긴 세계관을 설명하며 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 알려주면서 팬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팬들은 이제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세계관을 해석하고 확장하는 능동적인 창작자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 것이다.
'쿵푸팬더'의 경고
그러나 이러한 성공 뒤에 숨은 구조적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K팝 데몬헌터스'의 성공은 할리우드가 중국 문화를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떠올리게 한다. '쿵푸팬더'는 중국의 무술, 철학, 음식, 정서를 정교하게 담아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왜 우리가 먼저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성찰의 목소리가 컸다.
중국의 소재와 문화를 반영했음에도 실질적인 열매는 모두 할리우드가 가져갔고, 오히려 중국이 자국 문화를 제대로 상품화하지 못한다는 현실만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멕시코 문화 소재 애니메이션 '코코'에 대해서도 같은 논쟁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2023년 기준 약 9,299억 원 규모인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일본(26조 원)이나 미국(32조 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K팝 데몬헌터스'는 우리 문화를 주제로 했지만, 소니 픽처스가 제작했고 넷플릭스가 유통시켰으며 IP 역시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 작품에서 한국은 '문화적 배경'이자 '스타일'로서 활용됐을 뿐, 제작의 주체도, 창작의 중심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글로벌 애니메이션 생태계의 하위 생산자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는 우리의 민화 더피와 수지캐릭터 굿즈가 큰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해외에서 우리 문화를 알아준다'는 자부심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영원히 문화의 '소재 제공자'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
'킹 오브 킹스'가 보여준 희망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쟁력이 마냥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북미에서 개봉한 순수 한국 기술과 제작진이 만든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개봉 직후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며 첫 주에 약 1,905만 달러(약 272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성경 기반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보유했던 1998년 '이집트의 왕자'의 기록(1,452만 달러)을 뛰어넘는 성과이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한국 영화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다.
'킹 오브 킹스'의 성공은 명확한 전략에 기반한다. 바로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이다. 처음부터 시장을 글로벌로 타겟팅하고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의 정서를 깊이 고민하며 투자 규모를 키웠다. 이는 'K팝 데몬헌터스'와 함께 한국 콘텐츠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다.
K-콘텐츠, 미래를 위한 제언
우리의 콘텐츠 경쟁력은 이미 여러가지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결국 자본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문화 수출 50조 원, 문화시장 규모 300조 원 시대"를 공언했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K팝 데몬헌터스'와 같은 글로벌 흥행 작품이 한국의 IP로 자리매김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목표는 공허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K-문화 IP를 한국이 직접 개발하고 소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돼야 한다.
우리 5000년 역사상 이토록 세계가 우리 문화에 열광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 중요한 시점인 이유다. 우리가 가진 뛰어난 이야기와 문화적 요소들을 단순히 글로벌 제작사나 배급사에게 '소재'로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제작과 창작의 중심'이 되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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