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국은 왜 ‘아아’의 천국이 되었을까?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 韓 아이스 아메리카노, K커피로 ‘주목’
무더운 날씨·업무 강도·저렴한 가격 등 영향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커피 메뉴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겨울철 자료를 포함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비율은 90%에 달하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사이에서도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이 화제다.

한국인 라이프스타일 된 '아아'
한국은 커피 생두 수입량 세계 7위, 원두 물동량 세계 4위에 달할 정도로 커피 소비가 많은 나라지만, 다른 커피 소비 국가와 다른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서유럽과 같은 커피 강국에서는 카페라테·카푸치노·플랫화이트와 같은 밀크커피의 수요가 많은 반면 한국은 차 문화에 영향을 받아 구수한 아메리카노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서구권에서는 밀크커피와 크루아상 등을 통해 한 끼 식사를 대체하고, 우유를 따뜻하게 만드는 스팀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상대적으로 짧은 커피 문화를 가진 한국은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서 표준화된 커피 추출 기술을 교육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아메리카노 문화는 빠르게 확산했고, 이는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 요소가 됐다. 최근에는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늘어나면서 좋은 커피를 기반으로 다양한 아메리카노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피 수요국은 여름철에도 서늘하거나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데 반해 한반도의 여름은 단순히 더운 것을 넘어 습하고 무겁다. 서울을 기준으로 여름철 평균 기온은 30도를 넘고, 습도는 80%를 웃돈다. 6월부터 9월 초까지 장마와 열대야가 이어지며 체감 온도가 35도를 넘는 날이 잦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최근 몇십 년간 한국이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의 자료를 살펴보면 무더위를 상징하는 열대야의 기록이 1990년도에 비해 2020년도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한국에서 아이스 음료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출근길·점심 직후·오후 회의 전 등 ‘리셋’이 필요한 순간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더위와 졸음을 날려주는 생존 도구의 역할도 한다.
▲얼음의 청량감 ▲에스프레소의 쌉싸름함 ▲대용량 테이크아웃 잔으로 무장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현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높은 가성비·효율적 ‘각성제’로 인기
한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은 커피 소비 증가 추세와 함께 진행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카푸치노, 점심 이후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한국은 이른 아침부터 빠르게 카페인을 섭취해서 힘을 내야 하는 치열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근무 시간이 길고 업무 강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각성을 유도할 수 있는 음료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매우 효율적이다.
브루잉 커피보다 짧은 제조 시간, 라테나 마키아토보다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다. 테이크아웃 문화와 결합한 에스프레소 기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동하며 마시는 음료’로 정착했고 ▲사무실 책상 ▲택배 차량 ▲학교 도서관 등 거의 모든 공간에서 부담 없이 소비되고 있다.
한국 커피 산업이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빠르게 대중화된 이후, 최근에는 메가커피·컴포즈커피·빽다방 같은 저가 커피 브랜드가 급격히 부상 중이다. 이들은 가장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표 메뉴로 설정하고, 1500~2000원의 가격에 600ml 이상의 커피를 제공하면서 아메리카노 대중화를 가속했다.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 확산과 경제 불안 속에서 집 근처 저가 매장에서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소비자도 증가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가성비 좋은 각성제’로 소비자에게 꾸준히 선택받고 있다. 디저트 소비는 줄이되 커피 소비는 유지하는 구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소비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적인 기후와 문화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의 출발점이었다면, 최근에는 스페셜티 커피 산업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상황이다. 양질의 스페셜티 커피로 추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의 커머디티 커피에 비해 과일 향미와 산미, 청량감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된다.
국내 대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인 ▲커피리브레 ▲모모스 ▲프릳츠 커피는 여름철에 맞는 적절한 커피를 로스팅해서 뛰어난 산미와 입체적인 단맛, 청량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보인다. 케냐 등 단일 품종 싱글 오리진 원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샴페인을 연상시키는 산미로 소믈리에나 미식가 사이에서도 호평받는다.
이제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은 단지 기후적 요인만이 아니라 ▲빠른 생활 리듬 ▲가성비 전략 ▲품질 지향까지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타일은 이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지역에서 K-커피로 주목받으며 글로벌 커피 문화에 신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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