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 제련소 프로젝트가 미국이 추진하는 ‘팍스 실리카’(Pax Silica) 구상과 맞물린 사례로 거론되며 주목받고 있다.

고려아연이 지난 15일 제련소 건립 계획을 공개한 뒤 미국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프로젝트의 의미를 언급하면서, 이번 협력이 동맹국과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9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인 제이콥 헬버그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대담에서 “미국의 재산업화를 통해 경쟁 우위를 지켜야 한다”며 “고려아연과의 프로젝트는 그 노력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헬버그 차관은 공급망 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인사청문회 당시 상원에서 전략을 요청했고,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NSS)에서 그에 대한 답이 제시됐다”며 “국무부는 그 전략을 실행하는 데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팍스 실리카’와 관련해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협력해 미래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틀”이라고 언급한 뒤, 고려아연 프로젝트 출범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전쟁부가 이 협력의 핵심 축이었고, 정부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범정부적 접근’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헬버그 차관은 또 “동맹국 사이에서 경제 안보가 국가 생존의 필수 전제 조건이라는 공감대가 있다”며 “각국 정부의 다양한 투자 수단을 결집해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기업·혁신 생태계가 진정한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가 공급망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공동 방위를 제공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근본적 목적”이라며 “국방 당국은 ‘가용한 모든 도구’를 사용해, 특히 전시 상황에도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의 미국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 속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계획은 팍스 실리카 구상과 접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해당 제련소에서 아연·연·동 등 기초금속과 함께 안티모니·갈륨·게르마늄·인듐 등 핵심광물 13종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갈륨은 AI·통신·전력반도체의 재료로 쓰이고, 게르마늄은 광통신·적외선·태양전지 등에 활용된다. 안티모니는 탄약·합금 등 군수 분야 수요가 크다. 다양한 첨단 산업의 원료 공급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를 두고 미국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앞서 일제히 환영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러트닉(Lutnick) 미 상무부 장관은 공동 보도자료 메시지에서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이라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통해 핵심광물을 대량으로 미국에서 생산함으로써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단호하게 강화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 언론들도 이번 투자 발표의 함의를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 15일 발표 이후 “핵심광물이 미국 국가안보와 산업정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고려아연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앞선 기사에서 “서울에 본사를 둔 고려아연이 ‘국가안보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라는 평가를 전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