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AI보다 중요한 건 ‘안경빨’…스마트 글라스의 진짜 승부처 [스마트폰 끝내러 온 AI 안경]②
- 빅테크, 성능 경쟁 넘어 ‘얼굴 위 플랫폼’ 선점 경쟁
기술은 숨기고 스타일은 살리고…성패 가를 디자인 전쟁
10여 년 전 상업적으로 실패한 구글 글라스를 돌아보며 사미르 사맛 구글 안드로이드 생태계 부문 사장이 꺼낸 말이다. 기술을 앞세우고 디자인을 뒤로 미루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 글라스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생성형 AI와 증강현실(AR)을 결합한 차세대 웨어러블 기기를 잇달아 선보이며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재 시장의 최전선 승부처는 AI 성능이 아니다. 디자인과 착용감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을 탑재하더라도 무겁고 투박하거나 얼굴 위에서 어색해 보인다면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기술과 패션의 동거
스마트폰은 주머니나 가방 속에 넣어둘 수 있지만 스마트 글라스는 다르다. 사용자의 얼굴 위에 올라가 인상과 스타일을 결정한다. 과거 구글 글라스가 대중화에 실패한 배경에도 지나치게 기술 중심적인 외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 이유다. 기술을 드러내기보다 기존 패션 안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실제 스마트 글라스 시장은 정보기술(IT) 기업과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의 협업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메타는 일찌감치 글로벌 안경 기업 에실로룩소티카의 레이밴·오클리와 손잡고 스마트 글라스를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포지셔닝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AI 기기’가 아니라 ‘레이밴 선글라스에 유용한 기능이 더해진 제품’으로 받아들인다. 구매를 이끄는 것은 기술보다 브랜드 감성과 디자인이라는 의미다.
후발 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하반기 출시 예정인 AI 스마트 글라스의 디자인 파트너로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미국 워비파커를 선택했다. 기술을 안경테 안으로 최대한 숨겨 일반 패션 안경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의 심미성을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단순히 기능을 담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스타일 자체를 소비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양사의 신제품은 지난 5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의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I/O 2026’에서 공개됐다. 업계에서는 기존 스마트 글라스가 지녔던 전자기기 특유의 투박함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젠틀몬스터 협업 모델은 최신 트렌드의 선글라스나 뿔테 안경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외관을 갖췄다. 워비파커 모델 역시 일상 착용에 적합한 클래식 디자인을 채택해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했다. 돌출형 센서와 카메라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매끈한 실루엣을 구현해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무게·발열 잡아라
메타와 삼성·구글 연합이 안경 브랜드와 손잡은 이유는 명확하다. 얼굴에 착용하는 기기는 결국 패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하루 종일 착용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핏(Fit)을 구현하기 위해 전문 아이웨어 업체의 설계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물론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마트 글라스를 일상 기기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혁신도 필수적이다. 과거 AR 글라스가 대중화에 실패한 결정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무게였다.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연산 칩셋 등을 과도하게 탑재하면서 제품 무게가 70~90g 수준까지 늘어났고, 이는 코 받침 압박과 목 피로, 두통 등으로 이어졌다. 반면 최근 주목받는 제품들은 30~40g 수준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며 일반 안경에 가까운 착용감을 구현하고 있다.
업계가 더 주목하는 요소는 단순한 무게보다 ‘무게 중심’과 ‘발열 관리’다. 배터리와 카메라가 전면부에 집중되면 안경이 앞으로 쏠리면서 착용 피로가 급격히 높아진다. 이에 제조사들은 힌지(안경다리가 접히는 부분)와 템플(안경다리) 끝부분으로 무게를 분산하는 인체공학적 설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초경량화와 저전력 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구글 연합과 메타가 공통으로 채택한 퀄컴의 ‘스냅드래곤 AR1’ 칩셋이 대표적이다. 전력 소비를 낮춰 배터리 크기와 무게를 줄이면서도 장시간 착용 시 발생하는 발열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용자 경험(UX)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음성 인식과 터치 인터페이스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장갑을 착용하거나 운동 중에도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물리 버튼과 액션 버튼을 적절히 배치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쓰고 싶은 안경’ 돼야 산다
결국 스마트 글라스 시장의 승부는 ‘얼마나 많은 기술을 담았는가’보다 ‘기술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숨겼는가’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 젠틀몬스터와 같은 브랜드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기업이 만든 전자기기를 소비자가 갖고 싶어 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경이 멋진데 AI 기능까지 된다”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 시장 확대의 출발점이다.
스마트 글라스는 기술로 시작해 패션으로 성공하는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패션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뒤 기술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장에 가깝다. AI가 핵심 경쟁력인 것은 맞지만, 소비자가 먼저 선택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안경 자체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소비자가 먼저 안경을 쓰고 싶어 해야 AI 기능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안경은 이른바 ‘안경빨’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사용자의 인상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패션 아이템인 만큼, 성능 경쟁에 앞서 스타일과 착용 가치를 입증한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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