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가 그리는 로봇 제국, LG가 만든다]④
770TB 제조 데이터 축적…AI 모델보다 현실 데이터가 경쟁력
로봇·AI·전력·공장을 잇는 원 LG, 피지컬 AI 밸류체인 완성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인공지능(AI) 산업의 무게중심이 AI 모델에서 제조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가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느냐'의 경쟁이었다면, 피지컬 AI 시대에는 AI를 얼마나 현실 산업에 구현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 된다. 제조 데이터와 하드웨어, 생산 경험이 새로운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최근 엔비디아(NVIDIA)가 LG그룹과 협력을 확대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엔비디아가 주목한 것은 '제조 데이터'
지난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회동 이후 양사의 협력은 LG전자를 넘어 LG이노텍, LG CNS, LG AI연구원 등 주요 계열사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실무진이 미국 엔비디아 본사를 찾아 제조 AI와 데이터센터, 미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엔비디아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제조 규모가 아니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른 제조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가 협력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성형 AI가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해 언어를 이해했다면 피지컬 AI는 실제 생산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비와 로봇을 제어한다. 작업 순서와 설비 상태, 불량 발생 원인, 작업자 동선 등 실제 공장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많을수록 AI는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LG전자가 최근 공개한 770TB 규모의 제조 데이터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LG전자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 14개국 31개 생산기지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AI 기반 제조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AI 모델 자체보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AI가 공정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려면 현실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AI 모델 자체가 경쟁력이었다면 피지컬 AI 시대에는 실제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이를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제조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제조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들이 앞으로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조 데이터만으로 피지컬 AI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의 판단을 실제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하드웨어와 전력, 소프트웨어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로봇의 액추에이터가 움직이고 각종 센서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며 데이터센터가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AI가 산업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다.
LG의 강점은 개별 기술보다 이를 하나의 산업 밸류체인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LG전자는 로봇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와 냉난방공조(HVAC), 액체냉각 기술을 앞세워 로봇과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하드웨어를 담당한다. GPU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발열과 전력 소비가 커지는 만큼 냉각 기술은 피지컬 AI 시대의 필수 인프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차량용 카메라와 광학모듈, 3차원(ToF) 센서를 통해 로봇과 자율주행 시스템의 '눈' 역할을 수행한다. LG디스플레이는 산업용·서비스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P-OLED를 공급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고에너지밀도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해 로봇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AI는 LG AI연구원이 개발하고, 실제 제조 현장 적용은 LG CNS가 맡는다. LG유플러스는 GPU 기반 AI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지원한다. 제조와 AI, 네트워크, 에너지까지 계열사 역량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LG의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LG도 이러한 계열사 간 시너지를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LG전자와 LG이노텍, LG AI연구원, LG CNS, LG유플러스, LG에너지솔루션이 각각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에너지 분야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계열사들이 하나의 팀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LG만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AI 모델 하나만으로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 제조 데이터와 로봇 하드웨어, AI 플랫폼, 공장 운영 시스템,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를 하나로 연결해 실제 산업 현장에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엔비디아가 AI 플랫폼을 제공하고 LG가 제조와 하드웨어 역량을 더하는 협력 모델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는 반도체 기업이나 AI 플랫폼 기업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라며 "제조 데이터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통합해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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