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전격전’ 외친 메가특구, 주52시간은 속도조절…정부 고심
- 연내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 추진…인허가·환경평가 규제 완화
기업 절반 “R&D 근로시간 유연화 필요”…노동계는 “즉각 철회”
정부는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 파격적인 규제 특례를 통해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투자를 앞당기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요구해온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제 예외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1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청와대는 전날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열고 연내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별법을 통해 각종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단축하고 전력·용수·교통 등 핵심 기반시설 구축도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메가프로젝트 추진과 관련해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주문했다. 충청권 246조원, 영남권 107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올해 착공 또는 증설 단계로 넘기는 등 계획에 머물던 대형 투자를 실제 집행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주52시간제 특례에서는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앞서 정부가 검토한 메가특구 특별법 잠정안에는 R&D 인력에 대해 주52시간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탄력·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됐다.
산업계의 요구도 강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국내 기업 6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메가특구에 필요한 노동규제 특례를 묻자 50.6%가 ‘R&D 직군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유연화’를 꼽았다.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근로시간 문제를 메가특구의 주요 규제 개선 과제로 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반도체업계는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R&D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연구개발은 특정 시기에 업무가 집중되고 프로젝트의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반도체특별법 논의 당시에도 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 특례가 산업계의 주요 요구사항이었지만 노동계 등의 반발로 최종 법안에서는 제외됐다.
메가특구 특별법이 새로운 돌파구로 거론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근로시간 특례를 적용할 경우 대규모 기업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인센티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산업계에서 나왔다.
반면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연내 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자 주52시간제 예외 등 노동규제 특례를 둘러싼 갈등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정당 등으로 구성된 ‘반도체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은 11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메가특구 특별법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문제 삼았다. 공동행동은 “과거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로 폐기됐던 R&D 인력 대상 ‘주52시간 상한제 예외’ 조항을 다시 꺼내왔다”며 반발했다. 특별법 검토안에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고 파견 대상 업종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 데 대해서도 노동권 후퇴라고 비판했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권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수옥 금속노조 앰코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발암물질과 화학약품 등에 노출되는 작업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근로시간 규제 완화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정부는 주52시간 특례와 관련해 일단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메가프로젝트의 성공이 주52시간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주52시간제 예외 역시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문제가 아니며 노동계와 지역사회의 동의를 받을 때 가능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는 정부가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 자체에는 속도를 내면서도 노동규제 완화에는 사실상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주문했지만 주52시간제만큼은 사회적 합의를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내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기업 투자 속도’와 ‘노동시간 규제’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절충점을 찾을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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