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과징금보다 공정위 조사가 더 무섭다”…기업이 떠는 이유
- [공정위는 공정한가]③
현장조사부터 심의까지 수년…대형 담합 대응 비용만 10억원 이상
조사 범위·과징금 규모 예측 어려워…신속하고 투명한 절차 필요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면 기업은 법무·컴플라이언스 조직을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꾸린다. 사업부서는 과거 거래 자료를 찾아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관련 임직원은 조사 대응에 매달린다. 처리 기간이 길어지면 사건이 끝날 때까지 신규 투자와 사업 결정에도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한다.
공정위 조사권 강화…기업 부담 경감방안도 마련해야
특히 공정위는 올해 인력을 404명 늘리고 중점조사기획단을 신설하는 등 조사 역량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조사 불응 기업에 총매출액의 1%에 해당하는 과징금과 일평균 매출액의 5%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정위의 조사권이 강해지는 만큼 기업의 절차적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 조사는 통상 현장조사와 자료 제출, 임직원 진술 조사, 심사보고서 작성과 위원회 심의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기업은 조사 초기부터 과거 계약서와 거래 내역, 이메일, 메신저 기록 등을 확보해 제출해야 한다.
조사 대상 기간이 길거나 거래 구조가 복잡할수록 부담은 커진다. 자료가 여러 사업부에 흩어져 있거나 당시 담당자가 퇴직했다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조사 대상이 디지털 자료로 확대되면서 제출 문서도 늘었다.
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는 한 기업 법무팀 변호사는 “공정위가 불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조사 건수가 늘면서 자료를 준비하고 조사에 대응하는 실무자의 업무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를 선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대형 담합이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는 전문 로펌과 관련 전문가가 투입된다. 시장의 범위와 경쟁 제한 효과, 관련 매출액을 둘러싼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대형 담합 사건은 외부 로펌과 경제분석 비용 등을 합쳐 조사 대응에만 10억원 이상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특히 현장조사와 심사보고서 대응 단계에 인력과 비용이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현장조사부터 심의와 처분까지 통상 1년이상 소요된다. 복잡한 사건은 2~3년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면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이 기간 기업은 법률비용뿐 아니라 경영상 불확실성도 감수해야 한다. 조사 대상 사업과 관련된 투자나 인수합병, 신규 서비스 출시를 결정할 때 향후 제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내부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조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관련 매출액의 범위와 과징금 부과율, 가중·감경 기준에 따라 최종 과징금이 크게 달라진다. 비슷한 행위라도 시장 상황과 거래 구조에 대한 판단에 따라 제재 수위가 달라지는데 따른 불만도 나온다.
공정위는 조사와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사건 처리 건수는 전년보다 17.1% 늘었고 평균 처리 기간은 24.6% 단축됐다. 공정위는 경제분석국을 신설해 시장획정과 경쟁 제한 효과, 부당이익 등에 대한 분석 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조사 범위와 자료 제출 기준, 예상 처리 일정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조사 착수부터 최종 처분까지 대응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야 불필요한 비용과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 착수만으로 주가·IPO에 악재
공정위 조사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기업가치에도 부담이 된다. 상장사는 주가와 투자심리가 흔들릴 수 있고,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비상장사는 기업가치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상장이 지연되는 등의 악재가 뒤따르기도 한다.
공정위의 설탕 담합 제재 이후 제당 3사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 공정위는 지난 2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에 설탕 가격 담합을 이유로 총 4083억1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제재 발표 이후 CJ제일제당 주가는 2월 12일부터 6월 29일까지 17.0% 떨어졌다. 최근 1년간 주가 하락률은 CJ제일제당 24.8%, 대한제당 21.0%, 삼양사 17.9%에 달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IPO를 추진하던 지난 4월 공정위 현장조사를 받았다. 제재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단계였지만 규제 불확실성이 상장 일정과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투자자와 상장 주관사가 조사 결과에 따른 위험을 기업가치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조사 착수 사실을 직접 공개해 기업에 피해를 준다는 지적에 선을 그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사안 가운데 국민 생활과 밀접한 내용 등을 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사 사실은 업계나 로펌 등을 통해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공개 경로와 관계없이 최종 판단 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무혐의 결정이 나더라도 조사 대응에 들어간 비용과 떨어진 기업가치, 미뤄진 사업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공정위의 조사권 강화가 기업에 부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신속하고 정교한 조사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관건은 강해진 조사권에 맞춰 절차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도 함께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조사 대상과 자료 제출 범위, 처리 기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사에 앞서 위법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착수한 뒤에는 필요한 범위에서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 조사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필요하지만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조사 대상과 자료 요구 범위를 명확히 하고 처리 기간을 줄여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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