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주식 산다” KRX·NXT, 오후 8시까지 거래…무엇이 다를까
- [‘애프터마켓’ 시대 개막] ①
KRX 상장주식 대부분·NXT 600여 종목…미체결 주문 처리 달라
오후 4~8시 맞대결…호가·유동성이 주문 향방 가른다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퇴근 후 주식시장이 다시 열린다. 한국거래소(KRX)가 오후 8시까지 애프터마켓을 운영하면서 국내 증시는 사실상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거래할 수 있는 12시간 체제로 확대된다.
정규장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직장인은 퇴근 후에도 주식을 사고팔 수 있고, 투자자는 장 마감 이후 발표되는 기업 공시와 해외 경제지표 등 새로운 정보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이미 프리·애프터마켓을 운영 중인 넥스트레이드(NXT)에 KRX가 가세하면서 복수 거래시장 경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두 시장이 오후 4~8시 동시에 운영되는 만큼 거래시간을 넘어 ▲거래 대상 ▲호가 ▲유동성 ▲체결 품질 등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증권사 역시 ▲최선집행(최선의 거래조건 집행) 체계 ▲주문 라우팅 ▲야간 시세·정보 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RX는 9월 14일부터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애프터마켓을 운영한다. 기존 오후 4~6시 시간외단일가매매는 폐지되고 실시간 접속매매로 전환된다.
NXT는 오전 8~8시50분 프리마켓과 오후 3시40분~8시 애프터마켓을 운영하고 있어, 오후 4~8시에는 두 시장이 동시에 투자자의 주문을 받게 된다.
같은 시간 열리는 두 시장…거래 대상·주문 방식은 차이
KRX 애프터마켓은 정규장과 같은 가격·시간 우선 원칙에 따라 실시간으로 체결된다. 기존 시간외단일가의 당일 종가 대비 ±10% 가격 범위 대신 정규장과 같은 가격제한폭이 적용된다. 시장가와 조건부지정가 주문은 허용되지 않으며, 정규장에서 체결되지 않은 주문은 애프터마켓으로 자동 이전되지 않아 새로 주문해야 한다.
NXT도 9월 14일부터 매매제도를 보완한다.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가 도입돼 예상체결가격이 직전 단일가 대비 10% 이상 변동하면 2분간 단일가매매로 전환된다. 기존 접속매매 중심의 운영에 가격 급변을 완화하는 장치가 추가되는 것이다. 투자자는 같은 종목을 거래하더라도 시장별 주문 조건과 VI 발동 여부에 따라 체결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KRX의 애프터마켓 진입으로 NXT가 선점했던 저녁 거래시간의 경쟁 구도도 달라진다. 그동안 투자자가 정규장 이후 실시간으로 주식을 거래하려면 NXT를 이용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두 시장의 호가와 체결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의 최선집행 체계도 중요해진다. 통합주문을 이용하는 투자자의 주문은 시장별 가격과 거래비용, 체결 가능성 등을 고려해 배분된다. 어느 거래소의 호가가 더 유리한지, 충분한 매수·매도 잔량이 있는지에 따라 실제 체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거래소 선택뿐 아니라 증권사의 주문 라우팅 기술과 서비스 품질이 투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두 시장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은 유동성이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더라도 주문이 충분하지 않으면 호가 스프레드가 벌어지고 적은 거래량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거래가 활발한 시장에는 투자자가 몰리고, 유동성이 다시 유동성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KRX와 NXT 모두 거래시간 자체보다 해당 시간대의 거래량과 체결 품질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진 셈이다.
투자자에게는 정규장 참여가 어려웠던 시간적 제약이 완화된다. 오후 5시 기업이 실적 전망을 수정하거나 대규모 계약을 공시하면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매매를 결정할 수 있다. 해외 경제지표와 글로벌 기업의 발표 등 저녁 시간대에 발생하는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만 거래시간 확대가 전체 거래대금 증가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정규장에 집중됐던 주문이 저녁으로 이동하는 효과와, 시간 제약으로 거래하지 못했던 투자자가 새로 유입되는 효과를 구분해야 한다. 전체 투자자금이 동일하다면 거래시간이 길어져도 거래대금 증가보다 시간대별 분산이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시장점유율 역시 하루 전체 거래대금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오후 4~8시 거래대금 비중,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유동성 차이, 공시 발생 종목의 거래 집중도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NXT가 기존 고객과 거래 습관을 유지할지, KRX가 폭넓은 종목 접근성과 기존 시장 인프라를 바탕으로 주문을 흡수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거래 대상 확대는 후속 과제로 남았다. KRX는 애프터마켓에서 ETF와 ETN을 제외했고, NXT도 당초 추진하던 ETF 거래 인가 신청을 연기했다. 이에 따라 두 시장의 경쟁은 당분간 개별주식 중심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향후 ETF 거래가 도입되면 지수형·채권형·해외자산형 상품을 활용한 야간 자산배분이 가능해진다. 다만 해외 기초자산의 현물시장이 닫혀 있는 시간에는 적정가격 산정과 유동성 공급, 괴리율 관리가 중요하다. 상품 확대는 시장 안정성과 참여자 준비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증권사 간 경쟁도 거래시간 연장에 맞춰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야간 시세와 주문 편의성뿐 아니라 ▲공시 알림 ▲해외시장 정보 ▲종목 분석 ▲통합호가 제공 등이 차별화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 투자자가 저녁 시간에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 리테일 고객 확보와 거래 활성화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거래시간 확대 이후 ▲시장별 유동성 ▲체결 품질 ▲신규 투자자 유입 여부가 복수 거래시장 경쟁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시간 경쟁이 투자자의 선택권 확대에 그치지 않고 거래비용 절감과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개장 이후 주요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시간이 늘어난다고 전체 거래대금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정규장 거래가 분산되는지, 직장인 등 새로운 투자 수요가 유입되는지가 핵심”이라며 “KRX와 NXT의 경쟁은 어느 시장이 더 안정적인 유동성과 체결 환경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증권사들도 주문 서비스와 정보 제공 역량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려는 경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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