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1500억달러 ‘마스가號’…한국 몫 챙길 ‘선장’ 세워야
- [마스가, 그린라이트·레드라이트] ③
산업·금융·외교·국방 얽힌 한미 조선협력
부처 간 이견 조정할 총괄 컨트롤타워 필요
미국은 노후한 조선시설을 현대화하고 숙련인력을 확보해 해군 함정의 건조·정비 지연을 줄이려 한다. 한국 조선업에는 미국 시장에 진입할 기회다. 하지만 미국 조선산업 재건에 투자한다고 해서 한국의 이익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투자 규모가 곧 국익의 크기는 아니다.
1500억달러보다 중요한 ‘계약의 질’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일감의 지속성이다. 조선소 인수와 설비 증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초기 사업을 확보한 뒤 후속 발주가 끊기면 투자 부담은 결국 기업에 남는다. 미국 현지 투자에 앞서 상선과 군수지원함, 함정 MRO 등 분야별 수요를 확인하고 이미 확정된 물량과 앞으로 기대되는 물량도 구분해야 한다.
투자 결정은 실제 수요와 후속 사업 가능성을 확인한 뒤 이뤄져야 한다. 국내 조선 생태계가 얼마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대형 조선사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밸브와 펌프, 전선, 배관, 용접재료, 전장품 등을 공급하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공급망에서 배제된다면 산업 전체에 돌아오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형 조선사의 미국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국내 협력업체가 공급할 수 있는 품목과 미국 현지 조달 요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인증이 필요한 제품에는 시험평가와 현지 납품 경로 확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인증과 법률·금융 비용도 뒷받침해야 한다.
기술 협력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스마트야드와 생산관리, 자동화 기술은 한국 조선업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자산이다. 이를 미국 조선소에 적용한다면 기술 사용 범위와 지식재산권, 공동개발 성과의 귀속을 계약에 분명하게 담아야 한다.
미국 현지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도 설계와 용접, 정비 전문인력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 사업이 커질수록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도 함께 강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1500억달러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길 계약의 질이다.
정부와 기업, 군의 역할도 분명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협력이 가능한 제도적 길을 열어야 한다. 미국 법률은 원칙적으로 군함과 주요 선체 구성품을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제한한다. 한국 기업이 미국 투자를 늘린다고 곧바로 국내 조선소에서 미 전투함을 대량 건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협력의 순서도 현실적으로 짜야 한다. 먼저 국내 조선소가 수행할 수 있는 미 해군 MRO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군수지원함과 보조함, 함정용 기자재와 모듈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전투함 공동건조는 미국 법률과 조달제도, 기술보호 요건을 충족하면서 추진해야 할 장기 과제다.
민간기업은 블록 건조와 공정관리, 자동화·스마트야드 기술을 미국 조선소의 여건에 맞게 적용해 현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 숙련인력을 대체하기보다 현지 인력을 함께 양성하고 납기와 품질을 개선하는 방향이 지속 가능하다. 미국에는 조선산업 기반을 회복할 기회를, 한국 기업에는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은 실제 수요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가교가 돼야 한다. 미 해군이 어떤 함정에 어떤 정비능력을 필요로 하는지, 국내 조선업계가 어느 시설과 기술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맞춰봐야 한다. 함정 정비에는 일반 상선과 다른 품질과 보안 기준이 적용되는 만큼 실제 물량과 요구 기준에 맞춰 투자해야 불필요한 설비투자도 줄일 수 있다.
한미 조선협력을 위한 조직은 하나씩 갖춰지고 있다. 올해 6월에는 한미전략투자공사와 정책금융기관, 주요 조선사가 ‘한미 조선협력투자 협의체’를 구성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워싱턴에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가 문을 열었다.
투자 협의체는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KUSPC는 미국 현지에서 정부와 해군, 조선사와 기자재업체를 연결하고 현장의 수요와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한미 조선협력이 어느 한 부처나 기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소 투자는 산업정책과 금융에, 미 해군 함정 정비는 국방과 보안·품질 기준에 연결된다. 기자재 수출에는 인증과 통제가, 공동건조에는 미국 법률과 조달제도가 걸려 있다.
기업이 미국 현장에서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러 부처의 판단이 동시에 필요할 수 있다. 이때 누가 우선순위를 정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해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한미조선협력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급 위원장에게 총괄 책임을 맡길 필요가 있다. 기존 투자 협의체나 KUSPC를 대신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투자와 산업, 외교, 국방에 걸친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부처 간 결정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할 책임자를 두자는 것이다.
위원회는 어떤 분야를 우선 추진할지, 기업 투자에 어느 수준의 정책금융을 지원할지, 미국 측으로부터 확보해야 할 사업 기회가 무엇인지를 정해야 한다. 공적 보증과 정책금융이 투입된다면 투자액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수주와 국내 기자재업체의 공급망 진입, 미국 현지 사업의 수익성, 기술보호와 국내 인력 기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미국과의 협상도 하나의 전략 아래 움직여야 한다. 미국 정부와 의회, 해군은 각각 관심과 권한이 다르다. 한국 기업의 투자 계획과 미국의 제도 개선, 정비·건조 수요를 따로 협의해서는 전체 협상의 균형을 잡기 어렵다.
한미 조선협력은 미국 조선산업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서 한국 조선업의 미래 시장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기회를 성과로 만들려면 현장의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투자 협의체가 만들어졌고 워싱턴에는 현지 거점도 생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선장’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_해군 대령 출신으로, 32년간의 군 복무 가운데 22년을 잠수함 분야에서 근무한 해양안보·잠수함 전문가다. 나대용함 함장과 해군 핵추진잠수함사업단장, 방위사업청 잠수함사업팀장, 한미연합사 해상작전과장 등을 역임했다. 잠수함 운용뿐 아니라 건조와 획득사업, 사업관리까지 직접 경험해 잠수함·핵추진잠수함을 비롯한 해군 전력과 함정 방산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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