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엇을 팔 것인가”...김기태 보람상조 대표가 다시 펼친 책 [CEO의 서재]
-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한 ‘서드 스테이지’ 주목
“기업 경쟁력은 상품 아닌 제안 능력”…상조도 ‘라이프 큐레이터’로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책을 파는 서점에서 삶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일본 최대 규모의 서점 ‘츠타야’(TSUTAYA)의 변화를 압축하면 이렇다. 매장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카페와 라운지가 있고 여행·요리·건축 등 생활 주제에 따라 책과 상품을 배치한다. 분야별 컨시어지는 고객의 취향에 맞는 책과 경험을 제안한다. 서점이라는 업종은 그대로지만 ‘무엇을 파는 곳인가’에 대한 정의를 바꾼 셈이다.
김기태 보람상조 대표가 자신의 ‘인생의 책’으로 꼽은 ‘지적자본론’은 츠타야와 T포인트(츠타야 포인트카드)를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 CCC(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창업자의 경영 철학을 담은 책이다. 김 대표는 “분량은 길지 않지만 ‘기업이 고객에게 팔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며 “경영 방향을 고민할 때마다 다시 펼쳐 보는 책”이라고 말했다.
책에서 마스다는 소비사회의 변화를 세 단계로 나눈다. 물건이 부족했던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상품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상품이 넘쳐나기 시작한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는 여러 상품을 모아 고객이 쉽게 선택하도록 하는 판매 채널, 즉 플랫폼의 힘이 중요해졌다.
상품도 플랫폼도 넘쳐나는 지금은 ‘서드 스테이지’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주는 ‘제안’이다. 마스다는 이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기획력과 아이디어를 기업의 핵심 자산인 ‘지적자본’이라고 정의한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생각이 보람그룹이 지향하는 ‘라이프 큐레이터’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상조 역시 상품 구성이나 영업망만으로 경쟁하는 시대를 넘어 고객의 생애 단계마다 필요한 서비스를 제안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장례는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다. 경황이 없는 고객은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김 대표는 이때 선택지를 늘어놓기보다 고객의 상황과 가치관을 먼저 이해하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제안을 내놓는 것이 진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보람그룹이 장례를 넘어 결혼과 여행, 노후 등 생애 전반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혀 온 배경에도 이러한 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김 대표가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꼽은 것은 “앞으로 모든 기업은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디자인은 상품의 겉모양을 꾸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객이 원하는 삶을 상상하고 이를 실제 경험으로 설계해 제안하는 일이다.
김 대표는 “우리 임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고객의 삶의 장면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례 현장의 지도사든 고객 상담 직원이든 상품부터 설명하기에 앞서 고객이 어떤 순간을 맞고 있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츠타야의 대표 공간인 도쿄 다이칸야마 T-SITE 역시 이런 철학을 현실에 구현한 사례다. 책을 출판사의 분류가 아닌 여행·요리·건축 등 삶의 주제로 나누고 전문 컨시어지가 고객에게 맞는 콘텐츠를 추천한다. 카페와 라운지 등을 함께 배치해 책을 구매하는 공간을 넘어 오래 머물며 취향을 발견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책을 판매한다’에서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로 업의 정의를 바꾼 것이다.
김 대표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기존 업종을 버리지 않고도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면 사업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적자본론’을 서비스업 종사자뿐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 전통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의 길을 찾는 경영자에게 추천했다. 김 대표는 “상품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고객은 더 많은 선택지보다 자신에게 맞는 하나의 좋은 제안을 원한다”며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가 아니라 ‘고객의 삶에 어떤 가치를 제안하는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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