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SK하이닉스에 밀린 삼성의 반격…HBM4 판 뒤집을 ‘비장의 카드’
- [AI 반도체 패권전쟁]①
HBM4에 1c D램·4나노 베이스다이 적용해 성능 경쟁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 묶어 빅테크 맞춤형 수요 공략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이 D램 성능을 넘어 ‘맞춤형 반도체’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HBM3E(5세대)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삼성전자는 HBM4(6세대)를 반격의 기점으로 삼았다.
승부수는 ‘원팀 턴키’ 전략이다. 메모리 설계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한 회사에서 제공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의 강점을 활용해 글로벌 빅테크의 맞춤형 HBM 수요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공정을 한데 묶었을 때 발생하는 수율 문제와 사업부 간 이해관계를 얼마나 빠르게 풀어내느냐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이재용 회장 현장 경영과 초격차 의지
삼성전자의 반격은 이재용 회장의 기술 중심 현장 경영에서 출발한다. 이 회장은 최근 반도체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국내외 주요 사업장을 찾아 선제 투자를 진두지휘 해왔다. 특히 한국 반도체의 태동지인 기흥캠퍼스에 2030년까지 약 20조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전용 단지 ‘NRD-K’와 화성캠퍼스 선단 공정 라인, HBM 후공정의 핵심 거점인 천안·온양 첨단 패키징 라인은 이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전략 요충지다.
이 회장은 현장 경영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로 위기를 돌파하자”며 기술 경쟁력 복원을 주문해 했다. 단기적인 실적 부진이나 업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차세대 10나노급 6세대(1c) D램 공정을 조기에 안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칩과 칩을 돌기 없이 구리로 직접 연결해 신호 손실과 전력 소모를 줄이는 ‘하이브리드 본딩’도 개발 중이다. 여기에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해 차세대 AI 반도체 시장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전영현 부회장 직할 체제로 HBM4 승부
총수의 투자 결단을 성과로 연결할 책임은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았다. 전 부회장은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임하며 조직문화 쇄신과 기술 경쟁력 회복을 이끌고 있다.
최대 승부처는 ‘HBM4’다. HBM4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입출력 통로가 기존 1024개에서 2048개로 두 배 늘어난다. 적층된 D램 아래에서 데이터 이동을 제어하는 ‘베이스다이’에도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된다.
메모리 기술과 시스템반도체 기술의 결합이 본격화하면서 설계와 제조 방식이 달라지는 변곡점인 셈이다. 빅테크마다 요구하는 속도와 전력 효율, 가속기 구조가 다른 만큼 고객 맞춤형 설계 능력도 중요해졌다.
전 부 회장은 경쟁사보다 한 세대 앞선 1c D램 공정을 HBM4 코어다이에 적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기존 1b 공정보다 제조 난도가 높지만 수율을 안정화하면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 발열 제어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HBM4 하단의 베이스다이에는 삼성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을 적용한다. HBM 개발부터 핵심 부품 생산까지 내부에서 맡아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 한 팀으로
삼성전자 턴키 전략의 또 다른 축은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 경험을 쌓은 한 사장은 북미 빅테크와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맞춤형 AI 반도체 수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HBM4 시대에는 엔비디아뿐 아니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영향력이 커진다. 이들 기업이 자체 AI 가속기(ASIC) 개발을 확대하면서 각 가속기의 구조에 최적화한 맞춤형 HBM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HBM 코어다이 설계와 생산, 베이스다이용 파운드리 공정, 2.5D·3D 패키징을 한 회사 안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SK하이닉스가 HBM4 베이스다이 생산을 위해 대만 TSMC와 협력하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관련 공정을 내부에서 연결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고객 대응 속도를 높이고 공정 간 데이터 공유와 최적화를 강화할 수 있는 구조다.
한 사장은 고객사의 칩 설계 초기부터 메모리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 첨단패키징(AVP) 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원팀 턴키’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칩 설계 지원부터 D램 적층과 베이스다이 생산, 최종 패키징까지 하나의 창구에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고객사는 여러 업체와 각각 협의할 필요가 없어 개발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공정 간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데이터 병목도 줄일 수 있다. 특정 파운드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북미 빅테크에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의 투자 결단과 전영현 부회장의 메모리 기술 복원, 한진만 사장의 턴키 전략이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의 반격 기반이 갖춰졌다고 평가한다. 결국 HBM4의 성능과 수율, 고객사 인증이 전략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3E까지는 개별 메모리의 수율과 적층 기술이 승부처였다면 HBM4부터는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삼성전자의 턴키 역량이 실제 성능과 수율로 입증되면 글로벌 빅테크의 물량 배분도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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