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계약서·이메일까지 챙겼는데…해외 본사 자문료에 날아든 '세금폭탄' [ECONO TAX]
- 해외 계열사 용역비, 실제 업무·경제적 효과 입증해야
수수료 산출 근거도 중요…증빙 부족하면 세금 추징 위험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세무사회와 함께 국민들의 세금 상식을 넓히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돈이 움직이는 곳엔 세금이 따라붙는다. 투자와 거래, 보상과 승계까지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세금은 달라지고, 때로는 회사의 실적까지 좌우한다. 기업의 의사결정 뒤에 숨은 세금의 셈법을 짚는다.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 해외 본사에 경영자문료를 지급해 온 국내 A기업. 본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수수료도 지급했다. 관련 계약서와 이메일, 수수료 산출내역까지 갖춰뒀으니 세금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세무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실제 어떤 업무를 지원받았고 그 결과 회사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본사에 지급한 돈이 모두 회사의 비용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외 계열사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이 늘면서 경영관리비나 기술지원비, 전산지원비 등 ‘그룹 내 용역거래’의 세무 관리도 중요해지고 있다. 계약서가 있더라도 실제 용역 제공 여부와 사업상 필요성, 수수료의 적정성까지 입증해야 세금 추징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동기 세무사는 “국외특수관계인 간의 용역거래에서는 실제 용역이 제공됐는지, 그 대가가 정상가격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계약서뿐 아니라 용역의 실재성과 경제적 효익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계열사에 지급한 돈, 왜 세금 문제가 될까
다국적기업은 여러 나라에 있는 계열사가 경영관리나 ▲기술 ▲인사 ▲회계 등의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본사가 국내 자회사에 전산시스템을 지원하거나 경영전략을 자문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식이다.
문제는 계열사 간 거래가격을 이용해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해외 본사에 지급할 적정한 자문료가 1억원인데 실제로는 5억원을 지급했다고 가정해 보자. 국내 기업은 비용이 4억원 늘면서 과세 대상 이익이 줄어든다. 반면 해외 본사는 수입이 늘어난다. 해외 본사가 한국보다 세율이 낮은 국가에 있다면 기업 전체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 간 이익을 인위적으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이전가격세제’다. 해외 계열사끼리 거래하더라도 독립된 기업 간에 적용했을 법한 가격인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해외 계열사에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지급했다면 세무당국은 정상가격을 초과한 금액을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금을 다시 계산할 수 있다. 수수료가 적정하더라도 실제 용역 제공 여부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비용 인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업무와 경제적 효과 입증해야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해외 특수관계인과의 용역거래 비용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정하고 있다. 우선 사전 계약에 따라 실제로 용역이 제공돼야 한다. 또 서비스를 받은 기업이 추가 수익을 얻거나 비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매출이 증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업 운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였는지가 중요하다.
중복 용역 여부도 따져야 한다. 국내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회계업무에 해외 본사에도 수수료를 지급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조직 개편이나 구조조정 등 합리적인 사유로 일시적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경우는 예외다.
무엇보다 이를 입증할 자료가 필요하다. 실제 과세 사례에서 한 기업은 해외 계열사와 체결한 용역계약서와 수수료 산출내역, 이메일 등을 제출했다. 하지만 세무당국은 용역으로 얻은 경제적 효익과 업무 수행 시간 등을 확인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해당 비용이 실제 사업활동과 관련됐고 수익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지출인지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계약서와 대금 지급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업무 수행 내역과 결과물, 수수료 산출 근거까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 지원 업무는 ‘원가+5%’ 특례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받았더라도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으면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외 계열사 간 거래 역시 독립된 기업 사이의 통상적인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비용을 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가격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 기업의 거래가격을 비교하거나 서비스 제공에 들어간 원가에 통상적인 이윤을 더하는 방식 등으로 산출한다.
일부 단순 지원 업무에는 수수료를 간편하게 계산할 수 있는 특례도 있다. 인사관리나 일반 행정지원 등 핵심 사업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저부가가치 용역’이 대상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서비스 제공 원가에 5%를 더한 금액을 정상가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본사가 국내 자회사에 인사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1억원을 썼다면 500만원을 더한 1억500만원을 적정 수수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연구개발이나 제조·판매·마케팅, 금융·보험 등은 원칙적으로 제외된다. 이들 업무는 기업의 핵심 사업활동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단순히 원가에 5%를 더하는 방식으로는 실제 서비스의 가치와 위험 부담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반적인 정상가격 산출방법에 따라 적정 수수료를 판단해야 한다.
거래 규모에도 제한이 있다. 해당 연도에 특례를 적용하려는 용역거래 금액 합계가 국내 기업 매출액의 5%와 영업비용의 15% 중 작은 금액을 넘으면 특례를 적용할 수 없다. 예컨대 매출액 100억원, 영업비용 60억원인 기업이라면 한도는 5억원이다. 이를 초과하면 일반적인 정상가격 산출방법에 따라 적정 수수료를 판단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본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계약 단계부터 업무 범위와 대가 산정방식을 명확히 하고 실제 용역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료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 세무사는 “국외특수관계인과의 용역거래는 사업상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고 관련 비용이 정상가격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용역 제공 사실과 경제적 효익, 수수료 산출 근거 등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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